[미디어펜=조한진 기자]재계가 "기업 경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법개정안 일부 조항이 임시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관측된다. 상법개정안 중 우선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가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재계는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의 부장용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안전장치와 충분한 시뮬레이션 없이 개정안이 졸속 처리될 경우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22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2월 임시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가운데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가 다음달 1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야 입장의 엇갈리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집중투표제는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는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가 시행될 경우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마음만 먹으면 헤지펀드 등 투기 세력이 개정안을 악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경영활동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시스템과 문제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정안이 처리되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임시국회 개회식에서 참석 의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
다중대표소송제, 악의적 장난 수단 될 수도
주주간의 이해충돌이 다중대표소송제의 문제점으로는 지적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가 시행되면 모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가 소송을 통해 자회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이 개정안은 자회사의 손해가 모회사로 이어질 경우 모회사의 손해를 줄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다중대표소송제는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기업 경영과 미래 경쟁력 제고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한 자회사의 사업을 손해라고 생각할 경우 모회사 주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빈번해 지면 자회사의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조가 고착화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다중대표소송제는 기업 전반의 경영활동과 성장 동력 발굴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헤지펀드가 모회사의 지분 일부를 확보하고 소송 등을 무기로 자회사를 주무를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다중대표소송제가 실시되면 경쟁기업이 상대 회사의 모회사 주식을 일부 확보한 뒤 소송을 남발하는 등 장난을 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며 “이렇게 되면 외국기업들이 우리 기업과의 합작 투자를 꺼리는 등 기업 경쟁력 전반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개정안은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에 대한 평균 지분율이 75%를 넘는 우리나라 지주회사 체제에 큰 위협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이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등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주회사를 선택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특정한 영업부분에 대한 주주의 영향력을 단절시키는데 있다”며 “다중대표소송에 의해 복수의 기업으로 구성된 그룹을 하나의 회사로 간주하는 것은 회사의 법인격을 무시하는 것으로 지주회사제도 자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투표제, 리스크↑ 효용성↓
전자투표제는 소수 주주들의 의결권 강화를 목적으로 의무화가 추진되고 있다. 이미 여러 기업에서 자율적으로 전자투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당초 이 제도를 도입하면 소수주주들의 주주총회 참여가 현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국내기업에서 실제 전자투표로 행사된 주식 비율은 2015년 1.62%, 지난해 1.44%에 불과했다.
개정안이 통과돼 전자투표를 의무화해도 회사가 짊어지는 리스크에 비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우선 전자투표제로 인한 부작용과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현장 투표의 경우 안건을 개진한 뒤 의사를 처리할 수 있지만, 전자투표제의 경우 의견의 철회나 취소가 안 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합리적인 의사진행과 주주총회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이유다. 또한, 공인인증서를 이용한 전자투표 방식의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헤지펀드와 작전 세력이 전자투표제를 악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주주총회 전에 시장에 악성루머를 퍼트리고, 검증되지 않는 정보를 접한 소수주주들이 전자투표제를 통해 주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이 루머가 거짓으로 밝혀져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결국 기업은 물론, 주주들에게도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인수합병 등 주요 안건을 처리하지 못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미래 가치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전자투표제가 의무화 되면 헤지펀드가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 단기수익에 집중하는 헤지펀드는 4차 산업혁명 경쟁력 확보 등 시간이 필요한 투자 등은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기업들의 성장 동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현재와 같이 개별 회사의 요구와 상황에 따라 전자투표제를 실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