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위기 극복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 사업분할 안건을 승인하는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가 노조의 거센 반발 속에 힘겹게 마무리됐지만, 노조가 이에 대해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파업 지침을 내림에 따라 올해 노사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27일 울산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회사를 조선·해양, 전기·전자, 건설장비, 로봇 등 4개 법인으로 나누는 사업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27일 열린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에서 의장인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이 사업분할 승인안 등을 통과시키고 있다.
이날 주주총회는 지난해 11월 15일 이사회에서 처리됐던 현대중공업의 6개사 분사 결정을 최종 승인받은 것으로, 연계가 없는 사업을 한데 묶어두면서 발생했던 비효율을 해소하게 됐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로써 현대중공업은 오는 4월 1일부터 현대중공업(조선·해양·엔진),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현대로보틱스(로봇) 등 4개의 개별회사로 운영된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태양광 사업을 담당하는 현대그린에너지가 현대중공업 계열사로, 선박 통합서비스사업을 담당하는 현대글로벌서비스가 현대로보틱스 계열사로 각각 편입됐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사업이 분리된 각 회사가 전문화된 사업영역에 역량을 집중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전문성을 강화하고 사업의 고도화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며 "회사 분할이 완료되면 존속 현대중공업은 부채비율이 100% 미만으로 낮아지는 등 재무구조가 대폭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이번 분사를 통해 7조원 이상의 차입금 가운데 3조원 이상을 분할되는 회사에 나눠 배정하면 3조9000억원 수준으로 차입금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106%인 현대중공업의 부채비율이 95% 수준으로 떨어지는 셈인데, 회사는 이를 통해 차입 여건이나 신용도가 개선되고 해외 수주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이번 분사가 회사 자구안 이행의 일환인 만큼, 고정비를 감축해 적정이익 규모를 유지하는 등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분할로 2만3000여명에 달하는 현대중공업의 인력 중 20%에 달하는 최대 5000여명이 분사되는 회사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들의 고용은 그대로 존속되나, 소속은 현대중공업에서 각 분할회사로 옮겨진다.
이날 주총 승인을 얻은 4개 기업의 상장은 5월에 진행된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주식은 다음 달 30일부터 5월 9일까지 거래가 정지되며, 재상장되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신설 회사의 주식은 5월 10일부터 거래가 가능해진다.
아울러 현대중공업그룹은 향후 현대로보틱스를 지주사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현대로보틱스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장 자회사 지분 20% 이상을 확보하는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 현대건설기계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고, 분할 과정에서 새롭게 생긴 순환출자 고리를 6개월 내에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에서 회사 측과 노조원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현대중공업의 경영정상화 기대와는 달리 노조는 여전히 사업분할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전면파업 지침까지 내려 노사 간 갈등의 불은 좀처럼 잡히지 않을 전망이다.
주총 당일에도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업분할 원천무효와 2016년 임단협 타결 촉구를 위해 전면파업 지침을 내린 상태로,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파업 참여 촉구 행보가 더욱 거세져 올해 노사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란 견해가 많다.
실제로 이날 주총에서는 '사업분할'을 다루는 현대중공업 주주총회 입장문제를 놓고 한때 노사가 밀고 당기는 몸싸움을 벌였다.
회사는 당초 강당에서 주총을 열기로 했지만, 참석 주주가 많아 행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모니터를 갖춘 체육관까지 개방했다.
그러나 우리사주를 보유한 조합원들이 이미 자리가 찬 주총 본회의장(강당)에 들어가려 하자, 이를 막으려는 사측 진행요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노사간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심해지자 경력을 동원해 이를 막는 등 질서를 유지했다.
회사와 노조는 사업분할을 놓고 각각 '경영합리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여전히 상반된 입장을 보이며 대립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중공업은 분사한 회사의 임금단체협상을 개별회사 단위로 진행할지 여부는 아직 미정이라고 밝혀 노사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단협 등 교섭을 회사 측과 벌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측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터여서 분사 이후에도 노사 대립 관계는 지속될 전망이다.
회사는 지난달 73차 임단협 교섭에서 "올해 말까지 종업원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1년간 전 임직원이 기본급의 20%를 반납하자"고 최종안을 냈다.
임금 부문에서도 고정연장수당 폐지에 따른 임금 조정 10만원과 호봉승급분 2만3000원을 포함해 월평균 임금 12만3000원 인상, 성과급 230% 지급,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화합 격려금 100%+150만원 지급 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노조가 구조조정 중단과 만족할 만한 임단협안을 요구하며 거부한데다, 이번 사업분할 통과까지 겹치면서 노사 관계는 더욱 진통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