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봄인데 봄 같지 않다). 90일간의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수사에 마침표를 찍은 박영수 특검팀은 그 간의 상황을 이 한마디에 담았다.
좋은 시절은 왔으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널리 인용되는 고사성어 춘래불사춘. 아마 특검은 수사가 끝났다는 홀가분함은 춘래(春來)요, 시원한 결과를 내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불사춘(不似春)에 비유한 듯하다. 쉽게 말해 시원섭섭함이다.
그도 그럴 것이 특검은 수사 초기 좌고우면(左顧右眄: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함)하지 않겠다고 자신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눈치만 살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었다. 권력이나 어떤 세력의 눈치도 보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90일간의 긴 장정이 끝났다. 이제 그 결과를 놓고 특검은 스스로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다. 수사를 지휘한 박영수 특검은 최종수사 결과 발표에서 "한정된 수사기간과 비협조로 특검 수사가 절반에 그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달 28일 수사 종료 직후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점에 대해 박 특검은 "검찰에 이관해야 하는 업무량이 과다했다"고 했다.
특검은 그동안 무리한 엮기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 수사과정에서 법보다 ‘정의’를 내세워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경제적 공동체, 뇌물죄 공모라는 결과 도출을 위해 이재용 삼성부회장에 대해 두 번의 구속영장 청구라는 카드를 빼들기도 했다.
박영수 특검의 수사 결과가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던 큰 소리에서 춘래불사춘이라는 미완의 자인으로 끝났지만 더 이상 촛불놀이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아쉽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사진=연합뉴스
특검의 입장은 공소장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순실의 공소장에 ‘대통령과 최순실은 이재용에게 요구해 뇌물을 수수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7번이나 적시했다. 삼성은 뇌물공여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 역시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기 위해 없는 사실을 만들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검의 춘래불사춘은 꽤 많은 의미를 던진다. 미완의 수사에 대한 뒤끝의 찜찜함을 남긴다. 90일간 기업들을 탈탈 털고 대한민국에 온통 검의 칼날 아래 떨게 했음에도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면 본질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어쨌든 공은 다시 검찰로 넘어갔다.
지난해 10월 24일 한 방송사에서 최순실 국정운영 의혹을 보도한 이후 대한민국은 촛불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촛불 바이러스에 정치인들은 물론 언론마저 급속히 전염돼 갔다. 치료 백신없는 분노한 바이러스는 결국 태극기마저 광장으로 불러 들였다. 둘로 갈라진 대한민국이다.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간다.
이젠 모두가 냉정을 되찾을 때다. 먼저 헌재의 탄핵을 조용히 지켜보아야 한다. 결과가 무엇이 됐든 승복이 아니라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더욱이 정치권은 냉철하고 엄숙해져야 한다. 일부 대권주자들이 국민을 볼모로 승복 문제를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의 불씨를 지피는 불쏘시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피로감에 물든 광장도 이제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 점점 공세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보란 듯이 미사일 도발을 해대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역시 우리 경제에 언제 어떤 식으로 압박을 가해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특검이 헤집어 놓은 상처를 검찰은 최소한의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적 정교한 수술로 하루 빨리 봉합해야 한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백약이 무효다. 춘래불사춘이 되어서는 안 된다.
힘겨웠던 겨울의 무게를 털어내고 봄을 맞이해야 한다. 반년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의 국정 동력을 이젠 되찾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국가적 손실은 천문학적일 게다. 더 뒤끝을 둬서는 안 된다. 이제 앞만 보고 달릴 때다.
박영수 특검의 수사 결과가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던 큰 소리에서 춘래불사춘이라는 미완의 자인으로 끝났지만 더 이상 촛불놀이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아쉽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