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을 지켜보면서
탄핵심판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헌법재판소’니 헌법과 법률에 따른 재판을 하겠지 생각했는데, 역시 어리석은 기대였습니다. ‘헌법’과 ‘법률’은 온데간데 없고 ‘정치재판’, ‘인민재판’이라는 느낌만 받게 되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여론 조사로 탄핵심판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법률가의 시각에서 탄핵 결정문을 보면 우리나라의 최고 재판기관이라는 헌법재판소에서 어떻게 이런 결정문 작성이 가능했을까 하는 느낌을 받는데 세부적인 내용은 앞으로 상세하게 분석해서 자세하게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1. 어떤 증거에 의해 소추사유를 인정하였는가?
피청구인의 대리인들은 탄핵심판에서 소추사유를 인정하려면 헌법재판소법이 준용하는 형사소송법상의 증거법칙, 예컨대 ‘의심스러울 때는 피청구인의 이익으로’ 등 적법절차에 따른 증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법에 따른 너무나 당연한 주장인데, 헌재가 심판초기부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놀라운 일이었죠. 재판관들이 예단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최서원과의 관계나 재단 설립 및 운영 경위에 대하여 단호하게 ‘인정된다’고 나열하였지만, 그런 사실이 어떤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없으니 증거에 따라 어떻게 사실을 추론 할 수 있는지도 전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헌재가 인정한 사실관계는 재벌그룹 회장들의 진술 등 객관적 증거와도 전혀 부합되지 않는데, 이런 증거를 무슨 이유로 믿지 않았는지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원님재판도 이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2. 소추사유를 마구 변경한 것에 대해 법적 판단은 고사하고 재판진행과정을 왜곡
국회에서는 당초 탄핵 소추 이후 헌법재판소의 심판 과정에서 두 차례 소추사유를 변경하였습니다. 특히 국회소추위원단 측은 2017. 2. 1. 제10차 변론기일에 이르러 ‘뇌물죄’나 ‘직권남용죄’ 등의 입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간 유지해왔던 형사법위반(범죄) 주장을 사실상 철회하고 4가지 유형의 헌법 위반으로 소추사유를 바꾸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헌재는 ‘청구인은 2017. 2. 1. 제10차 변론기일에…. 직책 성실 수행 의무 위반 등 4가지 유형으로 소추사유를 정리하였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청구인의 소추사유의 유형별 정리 자체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변론을 진행하다가 2017. 2. 22. 제16차 변론기일에 이르러….’(결정문 제12면)라고 마치 피청구인이 2. 1.자 소추사유 변경에 대하여 동의한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하게 거짓입니다. 위 2017. 2. 1.자 청구인 측의 준비서면에 대하여 피청구인 대리인들은 2017. 2. 6. 자 준비서면(별첨1, 부제 : 소추사유의 유형별 구체화 준비서면에 대한 입장)을 제출하고 구두 변론으로 위와 같은 ‘소추사유의 유형별 정리’가 헌법과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소추사유의 추가·변경이라 불법이라는 점을 명백히 주장하였습니다. (이 준비서면은 헌재 탄핵심판 인터넷사이트에 명백하게 남아 있음)
헌재 결정문을 보면, 피청구인 대리인들이 애써 제출한 위 준비서면을 읽지 않았고, 구두변론까지 했음에도 듣지도 않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심판 절차가 어떻게 진행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헌재가 임의로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더라도, 피청구인 대리인측이 동의하면 국회 의결 내용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법리는 어느 나라의 법리인가요?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에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 소추의결서로만 판단한다더니 새로운 소추사유를 멋대로 추가
헌재는 ‘청구인이 2017. 2. 1. 제출한 준비서면 등에서 주장한 소추사유 중 소추의결서에 기재되지 아니한 소추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은 이 사건 판단 범위에서 제외한다’고 했습니다.(결정문 13면)
그런데 헌재가 피청구인의 탄핵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소추사유인 재단 설립 관련 항목 중 ‘(5) 케이스포츠클럽 관련 이권 개입’ 제목으로 피청구인이 최서원의 사익을 위하여 김상률, 김종 등을 통해 정부 정책까지 바꿔 추진하면서 도와주었는데 ‘케이스포츠가 광역 거점 케이스포츠클럽의 운영 주체로 지정되고 더블루케이가 케이스포츠에 대한 경영 자문을 하게 될 경우, 케이스포츠와 더블루케이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최서원은 광역 거점 케이스포츠클럽에 배정된 국가 예산 집행 과정에서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적은 부분이 있습니다.(결정문 39,40면)
그런데 이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국회의 소추의결서에 없습니다. 심판 과정에서 어떻게 추가, 변경이 되었는지 아마 피청구인 측 대리인들도 잘 모를 것입니다. 이 부분이 소추사유로 포함됐다고 생각했다면 피청구인 측이 장님이 아닌 한 뭐라고 변론을 했을테니까요.
소추의결서에 없는 소추사유는 (위헌·위법하므로) 판단 범위에서 제외하겠다고 한 헌법재판소가 왜 위 부분을 별도의 소추사유로 포함시켜서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여러 가지 미래의 상황을 가정까지 하면서 국가 예산을 영득해서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극히 예외적인 ‘예언’까지 결정문에 적어야 했을까요? 소추의결서와 검찰수사기록을 착각한 것인가요? 피청구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일방적인 수사기록을 무더기로 증거로 채택한 이유가 이것이었나요?
헌재가 멋대로 추가한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면 결론이 바뀔 정도로 중요한 핵심 내용입니다.
4. 심판기관인 헌재가 소설을 쓰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면서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피청구인이 행정부처나 대통령비서실 등 공적 조직이 아닌 이른바 비선 조직의 조언을 듣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으나, 그때마다 피청구인은 이를 부인하고 의혹 제기 행위만을 비난하였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하였을 때에도 피청구인은 … 청와대 문건 유출이 국기 문란 행위라고 비판하였다’(제56면),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서원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공익 실현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56-57면)라고 적었습니다.
백보 양보하여 위와 같이 대통령이 최서원의 국정 개입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고 한들 그것은 소추의결서에 없고, 청구인 측에서 소추사유로 주장한 바도 없습니다. 그런데 소추기관도 주장하지 않은 사실을 헌재가 무슨 헌법상 근거로 위와 같이 새로운 소추사유를 창설하고 판단하였습니까?
그리고 그런 판단을 하려면, 과연 피청구인이 사실관계를 은폐한 것인지에 대해 증거조사를 했어야 할 것인데 그런 절차는 전혀 거친 바 없었습니다.
특히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에 대하여는 당시 검찰이 철저히 수사했고, 최근 특검에서 이 잡듯이 수사를 해도 정윤회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가 없으니 결국 정윤회 문건은 허위 문건이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주문한 대통령의 행위가 왜 탄핵사유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헌재는 또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의 1차 사과 담화가 ‘진정성이 부족하였다’(제57면), ‘검찰 조사나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후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제57면)고 적었습니다.
아니,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탄핵 사유입니까? 그리고 진정성이 없다는 주관적인 판단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재판관들이 관심법으로 보면 그런 것인가요? 청와대의 압수수색은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기에 황교안 권한대행 혹은 대통령비서실장이 법적근거에 따라 불허한 것일 뿐이고 직무 정지된 대통령은 그 허용여부에 대해 명령할 권한조차 없었습니다. 헌재는 직무정지라는 법적인 효력마저 무시하는 건가요? 그리고 그런 새로운 소추사유는 누가 갑자기 만들었습니까?
이런 부분에 대하여는 그간의 심판과정에서 재판부나 소추위원 측에서 전혀 언급한 사실이 없습니다. 재판부가 위와 같은 경위에 대하여 석명을 요구하지도 않아 피청구인 측에 설명할 기회도 부여되지 않았고 소추사유에 적시된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실관계를 들어 피청구인의 파면 여부 결정 사유로 삼는 것은 변론주의 위반이고 방어권의 중대한 박탈입니다. 대리인단의 주장엔 눈을 감으면서 전혀 다른 엉뚱한 사실관계를 갑자기 만들어내서 근거를 삼은 것입니다. 마녀사냥입니다.
헌재는 대통령이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고 ‘이런 언행을 보면 헌법 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탄핵 인용 결론을 내렸습니다.
피청구인은 최서원 사건이 발생한 후 세 차례에 걸쳐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정치적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에 책임총리 추천권 이양, 자신의 임기 단축(자진 사퇴) 제시까지 하였는데,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어느 정도를 해야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는 것인가요? 설마 하야를 했어야 헌법수호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재판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 아닌가요?
헌법재판소는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의 의사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정당과 후보자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기초로 하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과정에 개입하여 이를 왜곡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지난 수년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꾸준히 지속해 온 정당과 후보자의 정치적 활동의 의미를 반감시킴으로써 의회민주주의를 크게 훼손시키는 것이다. (중략) 공정한 선거 관리의 궁극적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직의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위반하였다. 헌법의 정신에 의한다면,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중략)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대통령이 선거법위반행위로 말미암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현행 선거법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법률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공직자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대통령의 이러한 언행은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하는 다른 공직자의 의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국민 전반의 준법정신을 저해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등 법치국가의 실현에 있어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현행법의 정당성과 규범력을 문제삼는 행위는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자,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 국정교과서 추진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피청구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국민에게 자신의 불찰을 사과했는데, 오히려 사과가 부족하며 그게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는 증거라면서 관심법에 따라 탄핵 결정을 한다는 것을 어느 국민이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예단을 가지고 판결문을 미리 써놓은 것은 아닌가요?
오늘은 헌법재판소에 다음 세 가지 질문만 하겠습니다.
첫째, 2017. 2. 6.자 피청구인 대리인들의 소추사유 변경 관련한 준비서면을 읽어보았습니까?, 구두 변론 때 들어보았습니까?
둘째 국회 소추의결서에 없던 ‘케이스포츠클럽 관련 이권 개입’의 소추사유는 어느 나라 국회에서 소추가결을 하였고 헌재의 판단 대상이 되었습니까?
셋째 ‘피청구인이 최서원 개입을 은폐했다, 특검 조사에 불응했다. 청와대 압수수색을 막았다’는 새로운 사실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 부분은 어떤 법적 증거조사에 따라 사실을 인정하였습니까? (앞으로 계속)
- 헌재 심판과정을 모두 시청한 대한민국의 이름 없는 변호사 -
[미디어펜=편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