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60)-조선 백성의 삶을 유린한 왜군의 야만 행위
케이넨(생몰연대 미상) 『임진왜란 종군기』
『임진왜란 종군기』는 왜란에 종군한 일본 스님의 전쟁 목격기라는 점에서 희귀한 사료이다. 저자 케이넨(慶念) 스님은 정유재란에 참전한 한 성주의 군의관으로 종군했다. 그는 정유재란 시기인 1597년 6월부터 전쟁이 끝나는 해인 1598년 2월까지 9개월간의 종군 활동을 『일일기(日日記)』로 기록했다.
이 책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쓴 수많은 임진왜란 관련 책에서 제대로 언급되지 못한 전쟁의 참상을 잘 그려냈다. 케이넨은 일본인의 시선으로 일상의 삶이 파괴된 조선 백성들의 처참한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 또한 임진왜란의 종군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다. 그는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와 임진왜란을 체험하고 16세기 일본의 실정을 <일본사>로 저술했다. 5~6년에 걸쳐 작성된 방대한 기록이다.
그 역시 자신의 관찰과 체험을 토대로 임진왜란 및 조선의 실상에 대해 상당 부분을 기술한 바 있다. 프로이스는 임진왜란의 전개과정과 강화 협상내용, 조선 측 사정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솔직하고 중립적으로 기술했다. 하지만 그는 전쟁의 참화를 지켜보면서 느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고뇌와 양심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지는 못했다. 그에겐 조선 민중의 파괴된 삶이 절실한 문제로 느껴지지 못했던 것 같다.
이에 반해 불제자 케이넨의 기록은 프로이스의 '임진난의 기록'과 달리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극한 불심을 지닌 그는 조선인에 대한 연민으로 일본군의 잔악함을 직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원치 않게 전쟁에 동원된 일본 병사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추위와 굶주림, 혹독한 사역에 시달리는 고통스런 상황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는 병사가 아닌 군의관으로 종군하면서 자신의 주군인 성주와 다치거나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살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생의 덧없음에 끊임없이 고뇌하며 귀향을 희구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는 일본의 정형시인 와까(和歌)로 자신의 심경을 읊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통스러운데
내 고향이 그리워서 더더욱 견디기 힘들구나.
특히 감기에 걸린 오늘, 고향을 그리는 서글픈 내 심정이여."
그는 일기를 통해 원균이 조선 수군의 궤멸을 자초한 이후 무기력하게 패퇴하는 상황을 묘사했다. 왜군이 파죽지세로 해안 지방을 휩쓸고, 남원성과 전주성을 함락시키며, 전라도 지방을 도륙하고 충청도로 북상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과정에 유린된 조선 강토의 참상은 참혹하다.
"들도 산도, 섬도 죄다 불태우고, 사람을 쳐 죽인다. 그리고 산 사람은 금속 줄과 대나무 통으로 목을 묶어서 끌어간다. 어버이 되는 사람은 자식 걱정에 탄식하고, 자식은 부모를 찾아 헤매는 비참한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여기 전주를 떠나가면서 가는 도중의 벽촌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죽이고 있는 참상은 차마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는 남원성의 함락 당일인 1597년 8월 16일부터 18일까지의 상황을 "성내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죽여서 생포한 사람이 없다"거나, "날이 밝아 성 주위를 돌아보니 길바닥 위에 죽은 자가 모래알처럼 널려 있다. 눈 뜨고 볼 수없는 처참한 상황이다"라고 기록했다.
케이넨은 자신이 목격한 전쟁의 생생한 참상을 여러 번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잔인한 군사들의 활동뿐만이 아니라 일본군을 따라온 상인들의 비인간적인 인신매매의 실상도 고발하고 있다. 이들은 군대를 따라다니며 조선 백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서 달아나지 못하게 밧줄로 목을 묶고 끌고 다녔다. 또 쓰러지는 조선인들을 몽둥이로 마구 두들겨 패면서 몰아세우는 등 마치 지옥의 귀신이 죄인 다루듯 하였다고 전한다.
전쟁의 가혹함은 조선인에게만 닥친 것은 아니었다. 케이넨은 울산성에 고립되어 저항하던 왜군 진영이 처한 한계 상황도 그리고 있다. 일본 장졸 역시 극심한 추위와 물자 부족으로 고통을 당했다. 케이넨은 무장들에게 혹사당하는 병사들이 전쟁의 상황에 비통해 하며 본국 귀환을 갈망하는 모습을 와까(和歌)로 표현하기도 했다.
케이넨은 정유재란 말기의 여러 전쟁터에서 조선 백성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했는지 일기의 도처에서 증언하고 있다. 그는 왜군들이 저지르는 살육과 방화, 약탈 등 잔악한 행동과 이로 인한 조선인들의 참화를 솔직하게 기록하면서 전쟁의 처절함에 비통해 하는 자신의 심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있다.
저자의 일기는 전쟁 당시의 생생한 체험을 매일 매일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진왜란 이후 전쟁에 참여했던 각 지방의 영주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현창(顯彰)하기 위해 펴낸, 전공을 과장한 다양한 정벌기 유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쟁을 일으킨 풍신수길의 야욕을 비판하는 그의 참여관찰자로서의 객관적 시각도 높이 살만하다.
"만리 길의 파도를 이겨내고 조선까지 여러 곳에서 출진하는 것도 단지 한 사람의 덧없는 생을 장식하기 위한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그 위상이 더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아니하며, 한 가지도 변함이 없다."
케이넨은 정벌자의 관점이 아니라 한 사람의 불제자로서 전쟁에 내몰려 삶이 파괴된 조선 백성과 일본 병사들의 애환을 연민과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자신 또한 주군을 모시는 한 신민(臣民)의 입장에서 전쟁 자체에 회의하면서 종전과 귀환을 갈망하던 병사들의 내면의 심정까지 대변했다.
케이넨은 6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며 오직 종교적 양심으로 부처님께 용서를 빌며 생환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그가 독실한 믿음으로 평화와 인간의 구원을 염원하는 그의 신실한 태도는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케이넨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처절한 전쟁의 비극,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약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스스로 경계하면서 평화를 추구한 용기 있는 한 스님의 양심의 기록은 살아남은 일본인들에게 각성을 주고 한국인들에게 비극적 침탈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준다. 이 또한 인간이 또 다른 업보를 짓지 않게 하려한 부처님의 애틋한 뜻은 아니었을까.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추천도서: 『임진왜란 종군기』, 케이넨 지음, 신용태 옮김, 경서원(1997), 218쪽.
[박경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