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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올라온 진실' 세월호 인양 결정부터 성공까지

2017-03-26 11:10 | 김규태 차장 | suslater53@gmail.com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침몰한지 1073일이 지나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를 두고서 왜 이렇게 인양 작업이 늦어졌는지 궁금해 하는 국민들이 많다.

세월호는 2015년 4월 인양 착수 후 ‘뻘에 묻혀 있는 선체를 절단하지 않은 채 온전하게 올려야 한다’는 목적으로 인해 수많은 기술적 어려움에 부딪혔다.

톤수와 침몰조건을 비추어 봐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보니, 여러방법을 강구하던중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결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풍속과 유속-파도와 조석 등 다양한 조건이 충족하는 시점에만 인양작업이 가능한 맹골수로의 열악한 작업환경도 한몫했다.

게다가 모든 조건을 맞추어 인양작업을 시작해도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있었다. 이에 해양수산부와 인양업체 등은 일정을 늦추다간 적기를 놓쳐 아예 인양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려하기도 했다.

세월호 인양, 지난 3년간의 기록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계획에 착수한 것은 세월호가족협의회가 삭발농성하며 선체인양을 통한 실종자 완전 수습을 요구했던 2015년 4월2일 이후였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2014년 10월27일 ‘인양 반대 5, 인양 찬성 4’로 인양 여부에 합의하지 못했었다.

해수부는 서둘렀다. 5월7일 인양추진TF를 구성해 인양업체 선정공고를 냈고, 지원한 7개 업체를 대상으로 2달간의 심사 끝에 7월 15일 상하이샐비지컨소시엄을 세월호 인양업체로 선정했다. 중국 상하이샐비지는 1951년에 설립된 중국교통운수부 산하 국영기업으로 1900건 이상의 선박 구조 작업과 1000건 넘는 잔해 제거 작업의 실적을 갖춘 회사다.

이때부터 세월호 인양의 공은 해수부에서 상하이샐비지로 넘어왔다.

상하이샐비지는 2015년 8월 사전작업에 착수해 유실방지를 위한 철제 펜스를 설치했지만 세월호 특조위의 선체조사로 인양작업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투입인원 450명은 지난 몇 년간 침몰 현장의 거센 파도 및 날씨라는 악조건과 싸운 끝에 세월호 인양에 성공했다./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높은 파도 등 날씨와의 싸움이었다.

상하이샐비지는 2015년 11월 인양작업을 재개했지만 겨울철 파도 때문에 피항을 반복했다.

해를 넘겨 2016년 상반기에는 선수 들기 작업을 6차례 실패했다.

무수한 실패 끝에 상하이샐비지는 7월26일 세월호의 선수 들기 작업에 성공했으나 9월에는 굴착 난항으로 이에 대한 후속작업이 지연됐다. 10월4일 태풍 차바의 북상으로 인양작업이 중단됐다.

결국 작년 11월 상하이샐비지는 기술적 어려움과 겨울 강풍이라는 악조건을 고려하여 애초에 계획했던 플로팅독(floating dock) 방식에서 바지선(barge) 방식으로 인양 방식을 변경했다.

이후 동절기로 인해 인양작업에 계속 차질이 빚어졌고 이러한 어려움 끝에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지난 1월6일 올해 2분기에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결국 상하이샐비지는 지난 22일 세월호 시험인양에 성공했고 본인양에 돌입한지 3일 만에 반잠수선 안착작업을 마쳤다. 차단펜스 및 그물망설치부터 시작하여 바지선 고정과 본체램프 제거, 선체 손상방지 및 쏠림현상 해결, 조류로 인한 이동차질 등 이어진 위기 속에 묵묵히 작업에 힘쓴 결과였다.

투입인원 450명은 지난 몇 년간 침몰 현장의 거센 파도 및 날씨라는 악조건과 싸운 끝에 세월호 인양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세월호 인양

세월호 인양과 관련하여 세간에 떠돈 루머는 하나로 요약된다. ‘이렇게 빨리 인양할 수 있었는데 왜 이제야 했는가.’

전문가들은 세월호 선체 그대로 인양하는 데에는 기술문제와 기상조건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밝혔다.

진교중 전 해군해난구조대장은 세월호가 다른 인양 사례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 전 대장은 “침몰선박 대부분은 잘라서 올리지만 세월호에는 미수습자가 있고 향후 원인 분석 때문에 원형 그대로 올리려고 했기에 힘이 들었다”며 “문제는 선체 원형 그대로 올리는 이 방식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진 전 대장은 이어 “지금까지 세월호 인양작업 중에서도 고비가 참 많았다”며 “어렵사리 줄을 묶어서 올리는 등 뻘에 묻혀 있던 것을 들어올리는 데까지 상당한 큰 고비가 있었다”고 밝혔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이와 관련 “최초 인양을 위한 공법이라든지 계산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며 “중간에 공법을 바꾸었고 리프팅빔 설치도 예상했던 10개가 아니라 33개를 설치해 작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 교수는 “선미 쪽 리프팅빔 설치 때문에 선체 자체가 절단될 위험도 있어 리프팅빔 설치가 많이 이루어지다 보니 선체 훼손이 일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작업시간이 더 소요됐다”고 언급했다. 

공 교수는 이러한 작업은 바람의 굉장히 많이 받는다며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가면서 천천히 작업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인양 착수 뒤에는 뻘에 묻혀 있는 선체를 절단하지 않은 채 온전하게 올려야 한다는,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사례로서 수많은 기술적 어려움에 부딪혔다./사진=연합뉴스


장창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는 “굴착작업을 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던 해저에 텐덤리프팅이라는 방식을 처음 시도하는 등 시행착오를 여러차례 했다”고 설명했다. 인양 방식을 바꾸면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거듭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지적이다.

한편 인양업체가 정부의 사주를 받아 고의로 인양 시점을 조절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류찬열 코리아샐비지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양이 하루만 지연되도 인건비 부담이 매일 3억 원 이상 불어나기 때문에 업체가 고의로 늦출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동종업계 입장에서 상하이샐비지가 인양 시기를 조절한다는 건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지적이다.

세월호 인양은 완료됐으나 남아있는 과제는 많다. 미수습자 수색, 사고원인에 대한 확인 및 최종규명이다.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

반잠수선 안착 후 25일 선체 전부를 드러내 배수작업을 시작한 세월호는 소조기가 끝나기 전 마쳐야 했던 시간과의 싸움 등 쉽지 않았던 인양작업을 마무리하고 목포신항으로 이동채비 중이다.

지난 24일 국회와 세월호 유가족이 임명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향후 10개월 간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세월호 사고의 사실관계와 진실이 재차 밝혀지기를 국민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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