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이익 대변 의결권자문사 전성시대
한국에도 의결권자문회사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국내 3대 연기금이 최근 의결권자문사와 계약을 맺었다. 국민들과 교직원, 공무원들의 노후쌈짓돈 관리및 운용이 사실상 의결권자문사의 손에 장악되는 시대가 열렸다. 한국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한국판 ISS시대가 도래했다.
ISS는 미국 등 전세계기업들의 투자, 배당, 자사주매입, 분할및 합병 등의 중요 경영사안에 대해 의견개진을 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연기금들이 의결자문사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파장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찬성했다. 박영수특검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에 대해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대통령간의 뇌물혐의 수사를 했다.
박영수특검의 억지수사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마비사태로 맞고 있다. 민감한 대기업 이사교체및 합병 등의 사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경우 사후에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국면연금을 엄습하고 있다. 특검의 어치구니 없는 마녀사냥에 짓눌린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쌈짓돈 운영및 관리와 관련한 판단마저 의결권자문사에 맡겼다. 특검의 해악이 향후 연기금의 의사결정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의결권 자문사는 상장사들의 최고경영자 인사와 경영까지 좌지우지하게 됐다.
최고경영자 인사 투자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좌지우지
미국은 각종 펀드와 기금들이 기업경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를 펀드자본주의라고 한다. 미국 주식의 31%인 6조8000억달러(2016년 중반기준)어치 주식이 블랙록, 뱅가드 등 5대 기관투자자에게 집중돼 있다. 10대 기관투자자의 비중은 42%나 된다.
미국증시 기관투자자들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60년 14%에서 70년 22%, 80년 32%, 2000년 55%, 2015년 63%로 급격히 높아졌다. 블랙록과 뱅가드등은 초거대재벌이다. 미국 대기업들도 펀드재벌들에게 절절 매고 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연기금이 외부의결권자문사와 자문계약을 맺었다. 삼성물산 합병찬성이후 특검의 강압적 수사를 받으면서 의결권판단을 외부에 맡긴 것이다. 의결권자문사가 기업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괴물 권력으로 부상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각종 펀드들이 기업경영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기존 경영자들이 책임지고 경영해온 경영자본주의가 펀드의 힘이 커지면서 펀드자본주의시대로 변했다.
의결권자문사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투표의무화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행사가 본격화하면서 이들에게 보유주식 기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의결권자문사들의 힘도 동반해서 커지고 있다.
의결권자문사들은 한국과 글로벌기업들의 주총에 초대받지를 않았어도, 실질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의결권자문사 앞에 벌벌 떠는 시대가 됐다. 유수의 기업최고경영자들이 주총전에 의결권자문사를 찾아가 회사입장에 한표를 부탁하거나 애걸하고 있다. 글로벌기업들의 의결권자문사에 종속내지 노예가 되고 있다.
의결권자문사들의 힘이 커질수록 기업들의 중장기 투자가 위축된다. 연기금과 펀드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의결권자문사들은 기업의 중장기경영과 투자를 중시하지 않는다. 펀드들은 단기 수익을 원한다. 투자자들에게 단기간에 최대한 수익을 올려주기위해 배당과 현금배당을 강요한다. 단기간에 적자나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대규모 신수종 투자나 연구개발강화를 기피한다.
삼성전자 지주사 분할, 현금배당 압박 거세질 것
예컨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10년, 20년, 30년 앞을 내다보고 수십조원의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거부할 수 있다. 사업부 분할과 매각을 요구하는 것도 다반사다. 심지어 기업의 심장부인 연구소마저 처분하라고 다그친다.
미국의 트라얀펀드는 듀폰경영진과 분쟁을 벌였다. 트라얀펀드의 펠츠는 듀폰을 3개 회사로 분할하라고 요구했다. 듀폰의 연구개발(R&D)센터를 폐쇄할 것도 압박했다. 지난 200년동안 듀폰의 성장동력이 됐던 연구개발센터는 트라얀펀드의 공격으로 문을 닫았다. 연구센터의 폐쇄는 우수연구인력 해고사태를 불러왔다. 듀폰의 장기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
삼성물산 합병에 강하게 반대했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을 보자. 엘리엇은 삼성물산 합병에 강하게 반대한 데 이어 지난해 삼성전자의 지주회사및 사업회사 분할과 수십조원의 현금배당을 요구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을 인정해줄테니, 대신 지주회사 분할과 대규모 현금배당을 해서 자신들의 배를 불려달라는 것이다.
의결권자문사들은 펀드들의 이같은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는 의사를 표시한다.
미국에선 80년대이전까지 경영자가 경영을 주도하던 시대에는 수익금을 유보해서 재투자했다. 이른바 유보와 재투자원칙이었다. 미국경제가 경영자본주의시대에 번영을 누렸다. 미국기업의 경쟁력이 강화했다. 생산성과 임금도 상승했다. 기업투자가 늘어나고, 소득양극화도 개선됐다.
반대로 80년대이후 기관투자자 투표의무화와 의결권자문사가 전성기를 누리면서 미국기업들의 유보와 재투자패턴은 무너졌다. 단기수익에 치중했다. 소득양극화도 심해졌다. 기관투자자들은 주주가치극대화(MSV)에 주력했다. 구조조정이 일상화하면서 임금상승이 생산성향에 뒤졌다.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대거 잃었다.
미국에서도 노무현식 1대 99의 갈등프레임이 강화했다. 주주가치극대화에 주력하는 펀드매니저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톱 펀드매니저는 톱 최고경영자보다 10배가량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 미국 제조업이 대규모 펀드이익에 봉사하는 종속관계로 전락했다.
미국 펀드자본주의, 경영자들 괴물 펀드 눈치 급급
중장기 성장과 이익에 주력해야 할 기업최고경영자들이 이젠 주주가치극대화논리에 굴복했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주창했던 잭 웰치 전 GE회장마저 2009년에 MSV는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실토했다. 회장 시절 사업부를 분할하고, 대규모 해고를 벌여서 중성자 잭으로 불렸던 그가 그의 경영철학에 대해 자아비판을 했다. 뼈아픈 고해성사를 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수십조원의 공격투자를 한다. 지주전환도 앞두고 있다. 국내외 펀드와 외부의결권자문사들이 중장기 공격투자보다 단기이익을 중시하도록 압박할 것으로 우려된다.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전자 제공
한국도 미국과 같은 길을 밟을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검찰과 공정위 등 힘있는 권력기관의 자의적 규제와 사법처리, 제재가 강하다. 반기업 반시장 반자유적 경제민주화광풍이 거세게 부는 것도 기업들에겐 심한 악재다. 법적 안정성이 너무나 취약하다. 기업경영의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세계 의결권자문시장을 장악한 회사는 ISS와 글래스루이스다. 이 두 개회사는 의결권자문시장의 양대산맥이다. ISS는 이중 61%를 장악하고 있다. 글래스루이스가 3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ISS는 전세계 120여개국에서 무려 850만개의 안건에 대해 예스 또는 노라고 의견을 표시한다. ISS가 제시하는 의견이 객관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이 회사의 직원은 900명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인력을 가진 ISS가 전세계 850만개기업의 주요 안건에 대해 정확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인가?
ISS는 기업경영자와 펀드간에 분쟁과 갈등이 빚어질 때 펀드입장을 지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결권자문사의 이해상충 문제도 심각하다. 펀드와 연기금, 기업등에 의결권을 자문하면서도 컨설팅서비스도 해준다. 엘리엇 등 펀드가 삼성전자 현대차 등을 공격하기위해 주총 표결을 위한 연합세력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이 펀드연합군을 형성하기위해 의결권자문사에 미리 컨설팅서비스를 맡길 수 있다. 의결권자문사의 지원사격을 받기위해 미리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등의 의결권자문사와의 계약은 심각한 문제점을 낳을 것이다. 자문사들에게 정당성이 없는 권한을 줄 수 있다. 주식을 한주도 갖지 못한 자문사가 기업의 경영 사안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을 행사할 아무런 근거가 없으면서도 실질적으론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제로 뮤추얼펀드의 25%는 ISS가 권고하는대로 자동적으로 보유기업의 경영사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ISS의 의견개진에 따라 기관투자자들의 입장이 결정적으로 달라진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ISS, 전세계 의결권자문시장 61% 장악 막강 1위
미국기업 절반가량이 ISS등 의결권자문사가 제시하는 기준에 부응하기위해 경영진의 보수계획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보수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장섭 저 <경제민주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 2016년, P78참조)
헷지펀드는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에게 테러리스트로도 악명을 떨친다. 어느날 펀드가 갑자기 지분을 획득한 후 주주가치극대화를 명분으로 현금배당확대와 자산처분, 회사매각등을 파상적으로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단기수익을 중시하는 펀드로 인해 기업의 성장과 경제발전이 더뎌진다.
미국을 상징하는 애플과 퀄컴 GE등도 최근 헷지펀드의 공격을 받자마자 곧바로 타협안을 내놓았다. 펀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펀드들이 이리연합군을 만들어 떼거리로 해당기업을 물어뜯는 게 다반사다. 경영자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낀다. 펀드와 얼른 타협한다.
국내에선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가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제안하고 있다. 한진해운 최은영 전회장의 경영실패에서 보듯이 오너의 불법을 막으려면 연기금과 금융회사가 보유주식을 바탕으로 권리행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외부자문사가 펀드와 연기금의 의사를 반영해 글로벌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면 투자 인수합병 등 미래 먹거리투자가 지장받을 수 있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요구하는 펀드 연기금과 외부자문사의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신차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양호대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일부 재벌들의 비리와 불법행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감안하면 공감대를 얻고 있다.
변양호식 논리는 위험성이 크다. 연기금과 금융회사들이 기업경영권 행사에 적극 개입하면 장점보다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펀드자본주의처럼 기업의 중장기투자를 방해한다. 단기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한국은 오너경영이 지배적이다. 단기적자에 연연하지 않고, 중장기 경쟁력강화를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선다. 한국기업이 일본 미국 유럽기업보다 급성장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한데는 중장기 공격투자가 주효했기에 가능했다.
변양호식 기관투자자 의결권행사, 관치금융 심화
일부재벌의 비리 무능경영을 빌미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빈데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소뿔을 빼려다 정작 소마저 잡는다. 연기금과 금융회사들은 관치금융, 권력기관의 눈치를 잔뜩 본다. 관치금융의 폐단만 심화할 것이다. 경영자율을 더욱 훼손하는 것이다. 한국기업의 강점을 죽이는 것이다.
한국의 의결권자문사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거래소 산하기관), 서스틴베스트(사회책임투자 주력),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하성 교수등이 설립)가 있다. 아직은 걸음마단계다. 의결권자문시장도 연간 10억원에 그치고 있다.
국내 자문사들은 인력수준이나 객관적 분석능력등이 뒤떨어진다. 전세계 의결권자문시장을 장악한 ISS도 900명이 무려 850만개 안건에 대한 의견을 표명한다. 방대한 기업의 안건에 대해 수박겉핦기식으로 의견을 낸다. 자신들에게 밥을 주는 펀드 입장만 대변하기 십상이다.
대기업 공격경영 약화 우려, 의결권자문사 전횡 막아야
삼성전자 현대차 SK이노베이션 LG전자, 포스코 등 글로벌기업들이 의결권자문사와 연기금의 압박과 강요에 못이겨 단기이익중심의 경영을 할 수 있다.
유보와 재투자등의 경영자본주의의 강점이 퇴조될 수 있다. 자사주매입과 배당, 자산매각및회사분할을 압박한다. 투자와 일자리창출이 부진해진다. 한국경제가 활력을 상실할 것이다.
펀드 연기금 기관투자자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대기업 경영자율을 침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질된 의결권자문사가 기업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통제돼야 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수십년 앞을 내다보고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글로벌기업들이 연기금과 의결권자문사에 종속되는 재앙은 막아야 한다. 투자와 일자리는 기업가정신에서 나온다. 경영자의 손과 발을 묶고, 중장기 투자를 가로막는 연기금의 의결권강화, 의결권자문사의 횡포와 전횡은 막아야 한다. /이의춘 미디어펜대표
[미디어펜=이의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