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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이 '한강의 비극'으로 끝날지 모르는 이유

2017-04-01 09:4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시대의 변화를 읽는다는 것, 국가 흥망을 결정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인류의 과제였다. 정부, 기업, 지식인 등의 지력을 모아도 예측이 불확실할 정도이니 말이다. 최근엔 IT기술 등 기술력의 발달로 미래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여가고 있다지만 그래도 예측이란 것은 불확실성이 항상 존재한다. 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도 이러한데 정보와 물자, 노동력의 이동에 상당한 제약이 존재하던 과거 왕조시대는 시대변화를 읽는 것이 각 국의 흥망성쇠를 판가름하였다.
 
신라, 외교를 통해 국제적 흐름을 읽으며 분열의 삼국을 통합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통일 전쟁기에 판도를 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라는 당시 돌궐, 고구려, 백제, 왜의 동맹체계의 질서에서 타개책을 강구해야 했다. 신라라는 국가의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같은 한반도 내의 삼국으로 분열되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민족의식이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이다. 신라의 김춘추와 당 태종이 만날 당시, 당 태종은 고구려에게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하지만 내부를 결속하여 당나라를 위협하는 설연타, 돌궐 등의 유목국가를 정복, 분열시켜 고구려, 백제, 왜의 동맹체계를 약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춘추는 당나라의 법제를 적극 받아들여 신라의 제도를 정비하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비록 김춘추의 당에 대한 외교는 후대에 고구려의 광활한 땅을 잃어버린 원흉이라는 말도 듣게 되지만, 김춘추와 신라의 입장에서는 당시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반면,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전쟁에는 승리하였지만, 이미 수나라와의 전쟁 이후 지속된 내부 경제력, 군사력 저하가 심화되고 있었다. 또한, 당나라와 전쟁 당시 연개소문이라는 지도자가 있어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의 생전에는 독재 권력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 사후(死後)에는 자식들 사이의 분열로 정치적 불안정이 높았다. 백제 또한 의자왕이라는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 하지만 신라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며 신라를 압박하고 있는 군사적 상황과 의자왕 후기로 가며 자신의 친위부대와 자식들 위주의 중앙독재권력을 더욱 강화하게 되면서 자만심에 빠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성충, 흥수, 윤충 등의 인재풀(pool)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는 결국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았을 때,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의 내부 분열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백제를 멸망으로 이르게 한다. 그렇게 고구려와 백제는 스스로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쇠락해갔다.
 
이렇게 당나라 주변 유목제국의 분열, 고구려, 백제의 내부적 분열은 신라의 적극적 대당(對唐)외교를 통한 국제정세파악, 내부적으로는 국가의 위기감이 돌자 이에 대한 지배층의 결속과는 대비가 된다. 김춘추는 이러한 시대변화의 격동 속에서 신라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제일 이익이 되는 당나라와의 외교를 택하였고 이는 향후 삼국통일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어 통일신라의 발걸음을 열게 한 선택이 되었다. 물론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나당(羅唐)전쟁이라는 당나라와의 기나긴 전쟁을 치르게 되지만, 이 또한 김춘추의 아들인 문무왕이 나당전쟁기에 당나라가 토번과의 전쟁으로 신라에는 상대적으로 전력을 집중 못하는 국제적 정세를 읽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인들에게 통합의 시대가치를 내세운 리더십으로 힘을 합쳐 당나라를 무찌르게 된다. 삼국통일기의 신라는 국제정세를 냉정히 읽고 항쟁과 화친의 적절한 양면정책을 통해 나당전쟁기를 유연하게 대처하였다. 신라는 이렇게 국제적 환경에서 처절하게 생존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시대변화를 읽으며 결국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자국우선주의와 성장을 위해서는 법인세 인하, 규제완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와 정반대되는 흐름과 주장을 하며 혁신과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태조왕건의 고려, 호족 연합책으로 분열의 시대 후삼국을 다시 통일하다
 
고대 왕조시대의 나라는 시간이 흘러 내부적 적폐가 쌓이며 시대적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통일신라 또한 고대시대부터 통일 이후 약 900년의 역사가 되며 내부적으로 적폐가 쌓이게 되었다. 신라 고대부터 내려오던 골품제는 실력에 따른 신분상승을 저지하며 지식인들의 불만이 쌓이게 되었고, 진골귀족들은 후기로 갈수록 왕권다툼으로 인해 정치적 숙청이 빈번하며 정치 불안이 지속되었다. 장보고, 최치원 등의 개혁세력이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암살, 스스로 칩거하며 이마저도 실패하였다.
 
이후 신라의 중앙 통제력이 약화되자 각 지역의 유력인사, 왕권다툼에서 밀려나온 진골귀족, 당나라나 왜와의 무역을 통해 성장한 해상세력 등을 아우르는 호족이라는 세력이 등장하며 통일신라 말의 시대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궁예, 견훤이 세운 후고구려, 후백제를 시작으로 후삼국이라는 분열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궁예는 자신이 미륵이라는 사상을 전파하며 독재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하와 백성들을 핍박하였다. 견훤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성장하였지만, 신라의 수도 경주를 침공하여 행한 만행으로 신라 백성들에게 신망을 잃었다. 이러한 때에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며 고려를 세웠다. 또한, 친(親)신라정책을 펴며 신라백성들의 신망을 얻으며 후삼국 통일의 권위를 얻고자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왕건은 내부결속을 다진다. 궁예, 견훤과 달리 왕건은 통일신라 후기 성장한 각 지역의 유력 호족들의 세력을 인정하였다. 궁예와 견훤은 호족들을 강압적으로 대하며 이들의 기반을 수탈하려 하였지만, 왕건은 그들의 세력을 인정하며 혼인정책을 통해 화합하려 하였다. 이는 결국 호족들이 자발적으로 왕건을 따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견훤과의 고창(현재 안동)전투의 승리로 인해 후삼국 통일의 주인공이 되었다.
 
견훤과 궁예는 당시 주류로 등장한 호족들의 세력을 억압하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였지만, 호족들은 통일신라 후기 자생적으로 발생한 세력이었기에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컸다. 그렇기에 호족에 대한 압박은 견훤과 궁예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궁예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추진하다가 왕건에게 쫓겨났으며, 견훤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호족들을 그 순간에는 굴복시켰지만, 왕건과의 고창전투 이후 호족들은 이전부터 화합적 정책을 추진한 왕건에게 귀부하게 되며 스스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견훤, 궁예 또한 한 시대를 종언시키며 새로운 시대를 연 영웅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시대 저변에 흐르는 주된 흐름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다 한 시대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지는 못하는 비운의 인물들이 된다. 반면, 왕건은 그러한 시대 저변에 흐르는 흐름을 꿰뚫어 읽었기에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조선후기, 비극적 역사를 맞이하다
 
성리학 사상과 무인 이성계의 결합으로 건국 된 조선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백성들이 도(道)를 알며, 백성이 근본이라는 민본(民本)의 사상으로 시작한 성리학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집권층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예(禮)를 강조하며 이단사상을 배척하게 되는 고립성을 띄게 된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강성해지며 청을 배우자는 북학사상이 나왔지만, 미미한 힘이었다. 그 미약한 변화의 움직임 또한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상업을 천시한 기존의 성리학 일변도의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꽃을 피우지 못하였다.
 
이후 세도정치를 거치게 되며 조선은 여전히 국제정세의 변화를 읽지 못하였다. 청은 산업혁명으로 발전한 서양의 서구열강에게 패배하였고,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여 근대국가로 먼저 나아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은 성리학적 세계관에 잡혀 주변의 변화를 외면한다. 집권층은 기득권을 지키기 바빴고, 백성은 밥 한 끼 먹기도 빠듯하였다. 이를 개혁해야 할 왕실은 세도정치 이후 힘이 약해져 손 쓸 방법도 없었다. 비록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왕으로 앉히며 개혁정책을 폈지만, 대부분이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쇄국정책을 펴며 국제적 고립을 자처하였다. 그렇게 조선은 세계의 변화에 홀로 고립되어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시대변화를 읽지 못한 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다. 갑신정변, 갑오개혁, 만민공동회 등 개혁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청·일·러 등의 국제정세의 변화, 변화를 두려워하는 집권층의 훼방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광무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조치를 단행하지만, 정치적으로 황제국을 내세우며 오히려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였고, 상공업 진흥책 또한, 열강들의 이권개입으로 변질되어 국내 공업발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는 작동하지 못하였다. 서구 열강들은 이미 산업혁명 이후 자국의 경제영토를 넓히고 있었으며,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이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여 근대화의 막차를 탄 상황에서 시대 역행적인 조선의 결정이었다. 그렇게 조선은 국제사회에 고립되면서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신라와 고려는 외교(김춘추) 혹은 자신이 전쟁을 겪으며 경험(왕건)한 것을 정책으로 시행하여 각 시대 저변의 흐름을 읽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중대한 변환점에서 선택을 하여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반면, 조선은 후기 국제 사회의 동향에 관해 무관심했으며, 성리학이 진리라는 고립을 자처하며 퇴행하여 결국, 나라를 잃는 비극을 맞게 된다.
 

정치권은 구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합집산과 권력욕만 추구한다. 조선 후기 상황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국가 미래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시계제로의 대한민국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은 시대변화를 잘 읽고 있는 것일까? 대외적으로는 브렉시트,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미국금리인상, 4차 산업혁명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져 가고, 대내적으로는 산업구조조정, 가계부채 급증,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성장 동력이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난관을 잘 헤쳐 나가야하는 정치적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며 앞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이 나가야 하는지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며, 무조건적인 공정, 평등, 공평을 내세우며 포퓰리즘 정책을 외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법인세율 인하’, ‘규제 완화’ 등의 기업 친화 정책과 ‘자국우선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영국, 아일랜드, 싱가포르는 물론이며, 계획경제의 대표인 중국 또한 기업 관련 법인세율에 관해서는 투자유치를 위해 낮추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국내 정치인들은 이런 국제적으로 급변하는 경제, 경영 환경은 관심에 두지 않고 오로지 표를 위해서라면 입에 발린 달콤한 말로 국민을 현혹하려 한다. 국가의 번영을 위해 자신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명확한 비전도 없이 시류에 편승하여 여기저기 자신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이라며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 경제에 관한 생각을 언론이나 신문을 통해 보면 도무지 이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미래를 맡길 만한지 매우 우려스럽다.
 
이들 주장은 기업을 죄인취급하며 국가의 보호라는 미명하에 무차별적인 현금 복지정책을 살포하려 한다. 복지의 재원은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토해내라며 법인세율 인상과 고소득자의 소득세 인상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이들이라면 단순히 세율을 올린다고 이후에도 자신들이 예측한 세금 액수가 걷힐 것이라고 생각할까? 법인세율을 올려 단기적으로 재원을 확보하여도 결국 기업 투자 활동, 내수 소비의 위축을 일으켜 결국 국가의 세수 전체가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또한, 보편적 복지는 민간영역의 부가가치를 정부가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거둬 그것을 다시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곧, 민간의 영역의 위축을 의미하며 장기적으로 국가의 부는 줄어들어 보편적 복지는 실현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의 주장은 오히려 국가의 일자리, 고용, 복지, 생활수준을 더 퇴보시킬 것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화두로 나타나며 이제 현실이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만이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다. 숙박공유 에어비앤비, 차량공유 우버 등의 영업이 법령의 미비 등을 이유로 행정당국이 발목을 잡으며 혁신을 위한 시도가 막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본, 미국, 중국 등은 드론, 자율 주행차, AI, AR, VR 등의 신산업에 각종 규제를 없애거나 지원하며 산업을 키우고 있다. 특히, 중국은 드론 분야에서는 현재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오히려 한국을 앞서가고 있다. 국내의 드론 관련 투자까지 중국의 드론 1위 업체 DJI가 차지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드론 하나를 띄우는 것도 각종 규제로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아마존이 드론을 통해 배송 서비스를 시험 운영하며 미래 먹거리 산업을 준비 중인데 한국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선진국과의 격차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 자유와 시장경제의 힘을 더 북돋을 수 있을까. 한강의 기적이 한강의 비극으로 결론날지 모른다/사진=미디어펜


 
대한민국은 현재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자국우선주의와 성장을 위해서는 법인세 인하, 규제완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와 정반대되는 흐름과 주장을 하며 혁신과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정치권은 구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합집산과 권력욕만 추구한다. 조선 후기 상황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국가 미래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 않고 국민에게는 달콤한 언어로 현혹하며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정부는 규제 공화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규제개혁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며, 추락하는 국가경쟁력이다. 오히려 국제적 추세인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이 추진하는 규제완화 정책으로 신산업 육성, 국가 경쟁력 강화를 통해 미래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은 경제적 자유와 시장경제의 힘을 더 북돋워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 후기 시대변화를 읽지 못해 비극을 맞았던 것처럼 현재의 대한민국 또한 시대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한강의 ‘기적’이라며 세계에서 극찬한 대한민국이 한강의 ‘비극’으로 미래에 결론이 날지도 모른다. /정영동 자유기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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