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좌파 교사를 길러내는 쐐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했다. 공교롭게도 재·휴학 기간 동안 국가적인 역사 관련 이슈가 여럿 있었다. 입학한 해에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바뀌었고, 이후에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 발표와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의 이슈가 있었다.
이러한 이슈들이 발생할 때마다 학과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이상하리만큼 모두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한국사의 필수 과목 지정은 중·고등학교의 역사 교사의 T.O(정원)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기에 모두가 환영해 마지않았으나,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 발표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모두가 거품을 물고 반대했다. 특히 학과 차원에서 이뤄진 국정교과서 반대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던 학생들의 숫자는 나를 포함하여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전체주의에 물든 대학의 현실
아무리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지금까지 젊은이들의 세상은 줄곧 좌파 우위였다고 할지라도,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이 예외 없이 공통된 반응들을 내뱉는 것이 나로서는 대단히 의아했다.
학과 자체가 역사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기에, 일부 강의는 7종 교과서(검·인정 역사교과서는 총 8종이지만 공교롭게도 교학사 교과서가 빠진 7종만을 묶어 교재로 썼다)를 교재로 사용하는 만큼, 현행 검·인정교과서의 문제점과 정부가 주장하는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해봄직도 하거늘, 그런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었다.
위안부 합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는 나눔의 집을 현장 취재한 경험이 있는데, 현장에서 마주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죽기 전에 그저 사과만 받으면 한이 없겠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그것이 그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자 마음이었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군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발표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토록 바라던 '사과’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과 학생들은 졸속 합의라느니, 박근혜 정부의 친일 본색이 드러났다는 등의 야당 정치인들과 좌파단체들의 무책임한 주장들에 동조만할 뿐, 어느 누구 하나 '굿 뉴스’라고 말하는 이를 볼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그렇다면 어떠한 합의가 이뤄졌어야했냐는 물음에 대해서 답변을 내놓는 사람도 없었다.
집단지성이 사라지고 민중사관과 전체주의적 사고에 갇혀버린 것이 대학 역사교육의 현실이다./사진=연합뉴스
대학이 좌편향 교사 양성
대학가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전교조를 필두로 한 학교 현장의 좌편향 교육 현실과, 좌경화된 대중 매체(언론 포함)의 영향도 존재하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대학 강단이 좌파 교사를 길러내는 쐐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민주 사회의 관점으로 공산주의를 바라봐서만은 안 된다는 미명 하에 진보 사상, 마르크스 사관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일부 수업의 현실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한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뿌리 깊은 민중사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궁극적인 문제였다.
실제로 어떠한 강의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시험문제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나는 대학에서 마지막으로 치렀던 기말고사의 시험문제를 공유하면서 대학에서 좌익 교사들이 양성되는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험지는 <현대세계와 한국>이라는 과목의 시험 문제인데, 한국의 현대사를 조명하고, 임용고시를 대비하는 동시에 교단에서 가르칠 내용과 수업방식을 배우는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기말고사 시험은 고등학교 시험 문제 형식으로 출제된다. 임용고시를 대비하면서 교직 현장에서 문제를 출제하는 시각을 갖게 하는 의도다.
기말고사에는 총 7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출제 범위는 3·15부정선거부터 전두환 정권까지였다. 다시 말해 1960년부터 1987년까지 28년의 기간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한 문제씩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제시문은 '4·19 대학교수단 시국선언문’이다. 4·19의 정치적 배경은 3·15부정선거, 경제적 배경은 빈곤과 정경유착 등이다. 선언문 발표 직후 이뤄진 개헌의 주요 내용은 '내각책임제’와 '지자체 직선제’이다. 4·19가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패로 인해 발생했으며, 민중들이 들고 일어난 4·19가 민주주의의 정립 계기가 되었다는 출제자의 의도가 담겨있다. 4·19 이후 정권을 잡은 장면 내각이 얼마나 큰 사회적 혼란 겪었는지는 다루고 있지 않다.
제시문은 5·16 혁명공약의 일부다. '반공’을 제 1의 국시로 하고, 민생고를 해결하겠다는 공약 등을 바탕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었다는 군사 정권의 등장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출제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마지막 부분인데, 민정 이양을 약속했지만,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본인이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여 대통령에 취임함으로 약속 이행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제시문은 '한·일 기본조약’의 내용이다. 조약의 국제적 배경은 미국의 압박(수업 중 언급), 국내적 배경은 경제발전자금 조달이다. 이 조약의 한계를 서술하라는 발문은 결국 '한·일 기본조약’ 자체가 미국의 압박으로 인해 진행된, '침략에 대한 사죄가 없고, 위안부 문제를 명시하지 않은 조약’이라고 말하고 싶은 의도가 담겨 있다. 한·일 기본조약은 박정희 정부가 국제법상으로도 일본이 배상을 할 의무가 전혀 없는 조약을 이끌어낸 것이고, 일본으로 받은 배상금이 경제 발전의 귀중한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부당한 조약이라는 주장만을 펼치고 있다.
제시문은 1968년 12월 5일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의 일부이다. 5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명문으로 꼽히는 국민교육헌장의 의미를 되짚어주면 좋겠지만, 문제 자체는 국민교육헌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 역시 박정희 정부 비난을 위한 초석일 뿐이다.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된 해인 1968년에는 '김신조 일당 청와대 피습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등이 일어났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 위협으로 인해 정부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M16등의 '신무기도입’을 추진했다. 그 다음 발문은 '안보위기를 이용하여’라는 표현과 '정치적 행동’이라는 용어를 노골적으로 쓰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안보위기를 기회삼아 '3선 개헌’을 단행했고, 이를 유신 독재의 도구로 삼았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제시문은 '7·4 남북공동선언’의 내용이다. 남북공동선언의 배경은 '닉슨독트린’이다. 선언 이행을 위해 설치된 기구는 '남북조절위원회’다. 출제자의 핵심 의도는 '선언문 발표 직후의 남북의 정치체제 변화’라는 발문에 있다. 이후 남한은 유신을 실시하게 되었고,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여 김일성 체제를 강화하게 되었다는, 결국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위한 도구였다고 비판하려는 의도다.
제시문은 '5·18 광주 시민군 궐기문’의 내용이다. 밑줄 친 정부당국은 '전두환 정권’이고, 정권을 잡은 계기는 12·12쿠데타다. 문제 의도는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5·18을 진압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국정을 장악한 불법 정권이었다는 것이다.
제시문은 '6·10 대회 선언문’이다. 밑줄 친 젊은이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사망한 박종철 군이다. 박종철 군의 사망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질 수 있었다는 '민중의 승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다.
7문제를 모두 살펴보니, 우선 7문제 중 3문제가 이른바 좌파들이 주장하는 민중혁명 혹은 민주화운동에 관한 문제다. 산업화에 대한 문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28년 중 박정희 정권 18년, 전두환 정권이 8년이다. 그 중 박정희 체제 18년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압도해버린 반공의 역사이자, 지구상 최빈국을 일으켜 우뚝 세운 기적의 산업화 역사이며, 전두환 정권은 한국이 비로소 선진국 진입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을 전 세계가 인정하고 극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험문제는 공(功)은 철저히 배제한 채, 과(過)만을 애써 들춰내려한다.
결국 출제 의도를 요약하자면, 이승만 정권은 부패하고 무능했고, 박정희는 안보 위협을 이용해 자신의 독재를 곤고히 했으며, 전두환은 불법 쿠데타로 시민들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한 사람이며, 오로지 한국의 현대사는 민중들이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총 정리하는 이 시험문제에, 조국(祖國)의 역사가 오로지 ‘민중사관’으로 투영되어지고 있는 대학 교육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 과목의 시험을 치르기 전 마지막 수업에서 담당 교수는 “대한민국은 국민들이 바꿔온 나라입니다. 4·19때도 그랬고, 5·18때도 그랬고, 그리고 ‘지금’이 그러한 시기인 것 같아요”라고 말을 했다. 해당 교수가 이야기한 ‘지금’은 2016년 12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 민중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민중혁명이 국가를 바꿀 것처럼, 학생들의 출처 불분명한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고 정의감 아닌 정의감에 불타오르게 만드는 것이 수업의 마지막이었고, 그 다음 주에 치러진 시험의 문제는 위의 내용과 같았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 발표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학과 동기 선후배 모두가 거품을 물고 반대했다./사진=연합뉴스
수업은 끝이 났고 나의 대학 생활도 끝났지만, 그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있으며, 진실이 승리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은 이것이 집단지성이자, 국민들의 승리라고 느끼고 있을 테지만, 실상은 집단지성이 사라지고 민중사관과 전체주의적 사고에 갇혀버린 대학 역사교육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 핵심은 한국 역사학계가 일국사(一國史)의 틀에 갇혀 한국사(韓國史)를 국사(國史)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국의 역사를 우물 속에서 하늘 바라보듯 할 뿐, 글로벌한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리어 이와 같은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모조리 ‘식민사관’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탄압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외눈박이 역사관, 민중사관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한 탓에, 지금의 대학은 좌편향 교사들을 길러내는 양성소가 되었다. 대학에서 양성된 좌편향 교사들은 좌경화된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다. 이 악순환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대한민국 교육계를 회생 불가능하리만큼 뿌리 깊게 오염시키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이성은 미래한국 객원기자
(이 글은 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