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스토롱 맨의 회담은 얼핏 빈 손으로 끝난 듯 비친다. '거대한 진전(tremendous progress)'이 있었다는 트럼프의 과장스런 설명이나 중국 언론의 호평이 상투적 수사로 읽힌다. 그럼에도 돌이켜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 두 마초들의 이해관계는 접점이 없었을까?
핵 도발을 일삼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손익계산이 항상 다르리란 법은 없다. 분명 북한의 존재는 중국에게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전략적 자산이란 측면이 큰 건 사실이다. 북한이란 완충지가 미국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필요한 건 중국에 고분고분한 북한체제이지 독재자 김정은 개인이 아니다. 미국도 당위적 명분이야 자유민주 한국주도의 한반도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보겠으나 그건 장기적 과제이고 당장은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의 완전한 제거가 미국의 안보에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두 정상간의 비밀스런 합의가 가능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 김정은 제거와 북한 핵 문제의 해소, 대신 분단 현실의 연장. 이는 현재 북한체제의 현상유지(status quo)의 지속이다. 북한에 기대하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은 건들지 않으면서 미국의 안보이익은 지키는 양국 간 타협. 절묘한 수다.
이게 가능하겠냐고? 당신이 시진핑이거나 트럼프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안보에 관한 한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는 면이 크다. 핵 비확산 레짐인 NPT가 출범할 수 있었던 배경엔 핵 무기에 관한 한 미-소의 이익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자신들 외에는 이 절대무기를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자는 명시적 합의. 핵무기의 위험성은 역사상 '천사와 악마'도 손 잡게 만들었을 만큼 위협적이다.
지금 예측불허의 북한이 이것을 완전히 깨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더구나 핵 투발 수단인 탄도미사일의 개발이라니. 미국을 향해 미사일이 발사되는 잠재력 자체가 엄청난 안보위협이란 것이 안보전략가들이 가진 인식론이다. 태평양 상공에서 격추된다고 해도 위협이 부재한 것이 아니란 의미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에 관한 한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북한은 이제 자신들이 내뱉은 말에 책임져야 하는 치킨게임 양상이 됐다. 중국이 막후 중재 역할이 주목 받고 있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한반도를 둘러싼 전세계의 이목은 이제 행동으로 말하겠다는 미국의 다음 조치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최신예 항모 칼빈슨 호의 한반도 재입항은 군사행동의 개연성이 활짝 열렸음을 암시한다. 일본은 진작부터 준비 중일지 모른다. 미일회담에서 미리 언질을 받았을 수도 있다.
군 통수권자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전권을 가진 자의 결단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군사력으로 완성된다.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약간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목표가 자유민주 통일 한반도가 아닌, 단지 북핵과 미사일 제거만이 목표라면, 그 결과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더 공고히 담보된다면, 중국이 김정은을 위해 미국의 군사행동을 반대할까? 국제정치의 계산이란 냉정한 것이다. 그 어떤 인연도 국가이익을 앞서지 않는다. 중국의 심리적 대북 부채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무덤 속의 김정일이 안타까와 한들 현실은 바뀌었다.
라인홀트 니버 목사의 통찰대로 '도덕적 인간'도 서슴없이 '비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가 국가이익이다. 트럼프도 예외가 아니다. 핵과 미사일 제거 비밀 작전에 '김정은 참수'도 포함, 성공한다면 북한 체제 내 어떤 군부 엘리트가 김정은의 복수를 위해 남한과의 일전을 목숨 걸고 감행하자고 할까?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수령결사옹위 사상'이 과연 발휘될까?
김정은이 그토록 숙청을 일삼았던 이유도, 김정남을 암살해야 했던 필연도 그의 절박함에서 비롯됐다는 ‘내재적 이해’도 가능한 대목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그토록 중국에 부탁했건만 김정은은 중국이 과연 자신을 지켜줄지 신뢰할 수 없다. 오로지 핵 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상황. 그는 핵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남은 일주일. 태양절 등 북한의 중요한 정치 이벤트가 가득 찬 이 기간 동안 추가적인 미사일 도발과 핵 실험을 감행할지, 자제할지 흔한 말로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이제 자신들이 내뱉은 말에 책임져야 하는 치킨게임이 돼 버린 양상이다.
예전 같으면 북한이 슬그머니 평화공세로 분위기를 바꿀 때다. 북한식 평화공세의 '좋은 파트너'가 돼 주었던 남한이 그 공을 덥석 받을 때마다 국면전환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 갑자기 닥친 대선으로 남한은 바깥일에 눈 돌릴 여유도 없다. 이제 북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중국이 막후 중재자로 나서지 않는 한 북한은 추가 도발을 중지할 명분이 없다. 그것은 최고존엄의 체면이 걸린 일이다. 섣부른 포기는 그들이 주장하는 미국의 위협에 굴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내부적 후폭풍을 감내할 정치적 노련함이 젊은 김정은이 갖췄을 리 만무하다.
이제 시간표는 끝을 향해 내딛고 있다. 분명한 건 한국은 이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돼 있다는 거다. 차라리 행운일지 모른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안될 바에야 아예 남의 일처럼 소외돼 있는 것이 동맹국 미국에겐 안심이 되는 요인일지 모른다.
잔인한 4월이 지나고 있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