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이다. 아프게 느껴지고 무겁게 들린다.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선택에 선 국민들은 아프게 새기고 무겁게 판단해야 할 큰 숙제를 안았다. 그런데 선거판에 있어야 할 것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들려야 할 것은 들리지 않는다. 없는 것만 크게 들리고 보이지 않아도 될 것만 눈에 들어온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없이 치러지는 선거다. 현직 대통령이 없다는 것은 집권여당이 없다는 것이고 여당의 후보도 없다는 의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새누리당의 무늬를 이어받았다지만 양 당의 홍준표,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은 '찻잔속의 태풍'급도 아니다. 현재로서는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87년 체제 출범이후 대선 때마다 등장했던 최대의 화제인 '야권후보 단일화'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초박빙의 지지율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유의미한 경우의 수가 보이지 않으니 자력 우승을 꿈꾼다. 오히려 범보수단일화론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화되기도, 설령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양강 구도를 깨뜨리기에는 무리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어김없이 꾸려졌던 '정권인수위'도 없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벼락치기로 치러지다 보니 준비시간이 없다. 대한민국 컨트롤타워를 비워 둘 수 없기에 당선되자마자 바로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한다. 대략 두 달 여 주어지던 인수위는 새로운 정부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을 해왔다. 준비 없이 거친 파고속으로 항해를 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간의 네거티브 전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국민의당이 눈만 뜨면 문재인 때리기에 나선 것을 빗댄 '문모닝'에 이어 '안모닝'이 등장했다. 아들, 부인, 조폭, 딸 등이 포털 관련어로 뜨는 등 정책보다 흠집내기가 판을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불완전한 출발이다. 과반 의석을 보유한 정당이 없다는 것은 정부 정책 추진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얽힌 실타래처럼 서로의 이해타산이 엇갈리고 당리당략에 따라 발목잡기가 횡행할 우려가 크다. 지금의 정치 지형대로라면 협치와 화합의 정치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은 궐위중이고 인수위를 꾸릴 시간도 없고 후보단일화로 덩치를 키울 수도 없다. 깜깜이 선거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이 정책 대결이 중요하다. 자질과 역량, 공약의 검증이 쉽지 않다. 정권교체든 정권연장이든 유권자가 판단할 몫이다. 각 후보자들은 진정성을 가지고 정책 대결을 벌이고 검증에 나서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
우려가 현실이 되듯 선거판은 네거티브 공방전으로 치닫고 있다. 정책대결이 실종됐다. 정책도 이슈도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흠집내기만이 난무하고 있다.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고 트럼프 행정부는 선제타격론을 운운하고 있다. 한반도 안보불안이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안갯속이다.
경제는 인공호흡기를 낀 채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신세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대기업 총수들의 글로벌 행보는 발이 묶였다. 경제성장률은 추락하고 있고 청년 실업률은 치솟고 있다. 대안 없는 포퓰리즘 공약만을 쏟아내고 있는 후보들에 대한 검증의 시간은 없다.
유권자의 눈과 귀를 가리는 흑색 선동만이 판을 치고 있다. '묻지마 폭로'는 정책 검증을 막고 극한 편가르기만을 부추긴다.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선 민심에 기름을 쏟아 붓는 격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공방으로 표를 구걸하는 탐욕의 정치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간의 네거티브 전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국민의당이 눈만 뜨면 문재인 때리기에 나선 것을 빗댄 '문모닝'에 이어 '안모닝'이 등장했다. 이젠 아침에도 모자라 저녁에도 화력을 쏟아붓는다는 '문이브닝' '안이브닝'을 넘어 '문애니타임' '안애니타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문재인 후보 측의 '차떼기' 공세에 안철수 후보측은 '폰떼기' 의혹으로 맞불을 지폈다. 포털에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이름을 검색하면 '부인' '조폭' '아들' '딸' 등이 관련어로 뜬다. 의혹이 있다면 솔직하게 털어 놓아야 한다. 검증이라는 가면을 쓴 네거티브적인 공세에 모든 것이 덮여선 안된다. 예전에 없던 '홍찍문' '안찍박' '유찍문' '어대문' '문슬림' '안슬림' 같은 말들이 넘쳐난다. 정책보다 후보들을 희화화 하는 언어가 넘쳐나고 있다.
'나를 찍어 달라'는 선거가 아니라 '상대를 찍지 말라'는 변칙선거판이 되고 있다. 정정당당히 정책으로 승부를 걸어 표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치부를 공격해 틈을 노리는 비겁한 승부다. 유권자들에게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가 전파가 빠르다. 이를 교묘히 악용하는 것이다.
악마의 미소다. 후보자들은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선동을 자제해야 한다. 깜깜이 선거를 더욱 캄캄한 절벽으로 내모는 것을 결국 자해행위다. 그리고 유권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