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진정한 보수주의 정당을 탄생시키는 정치실험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5일 창당대회를 가진 가칭 새누리당(공동대표 권영해-정광택)의 앞날에 대한 전망이다. 그날 장충체육관에 좌석수 4200석의 두 배 가까운 인파가 몰렸고, 수백 명이 야외 LED화면으로 진행을 지켜보던 모습은 한국 현대정당사의 장관이 분명했다.
장관, 맞다. 창당대회 전후 입당원서를 접수시킨 사람만 20만 명이고, 대기 중인 사람도 부지기수라는데 유례없는 풀뿌리 우익정당 탄생을 지금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이게 성공한다면, 헌법 제4조가 명문화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에 충실한 거의 첫 정당의 등장이다.
자유한국당이 있고 옛 새누리-한나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집권여당의 족보가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물을 것이다. 아니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재확인했지만, 이 나라에는 체제수호의 버팀목인 진정한 보수정당이 없고, 그게 대한민국 위기를 부채질한다. 옛 새누리-한나라는 이념정당-가치정당이 아닌 웰빙집단에 불과했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옛 새누리-한나라는 웰빙정당일뿐
20차례 내외 열린 태극기 집회를 통해 차제에 태극기 민심을 정치세력화하자는 제안이 등장했고, 그 꿈이 새누리당 창당작업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정치세력화란 우리도 권력을 갖자는 욕심이 아니라 제도권 정당 진입 없이 대한민국 개조가 불가능하다는 엄중한 상황 인식을 뜻한다.
20만 진성 당원의 등장이라는 폭발적 반응을 외면하는 제도권 언론의 횡포 따위야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새 우익정당의 목표는 대한민국의 재건이기 때문이다.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통일 대한한국 건설이란 비전도 핵심이다. 그걸 위해 언론·검찰·법원을 포함한 부패기득권 세력 모두를 개혁하는 것이 목표라서 저들은 신당 출현을 경계한다.
안타깝다. 그런 잠재력을 가진 신당, 위대한 정치실험의 주체인 신당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고 질이 떨어진다. 창당대회 이후 채 일주일도 안된 상황에서 극적인 계기 마련이 없다면, 분당(分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조원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영입해 새누리 대선후보로 추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내홍 탓이다.
조원진을 영입한 주인공은 사무총장 정광용. 그는 탄기국(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의 영웅이고, 불도저 추진력을 가졌지만 독불장군이다. 조원진 깜짝 영입도 독단적 결정이지만, 조원진의 자질을 충분히 검토했느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는 2년 전 광주 5.18묘지 방문 당시 방명록에 "광주의 정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지정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썼던 사람이다. 본인의 궁색한 해명에도 논란은 여전하다. 결정적으로 그를 묻지마 영입하는 바람에 거의 다 됐다 싶었던 무소속 남재준 후보와의 영입 협상이 공중에 붕 떠버렸다.
이런 갈등 끝에 애시 당초 신당 창당의 밑그림을 그려온 지식인 그룹인 변호사 김기수, 도태우와 김미영 등의 불만이 커졌다. 무엇보다 이들은 전광용이 새누리를 박사모당(黨)으로 몰고 가려한다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데 지금의 위기상황은 엄중하다.
지난 5일 창당대회를 가진 가칭 새누리당(공동대표 권영해-정광택)이 남재준(사진)·조원진 대선 후보 추대를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누리당(가칭)이 창당대회 이후 채 일주일도 안된 상황에서 분당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조원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영입해 새누리 대선후보로 추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내홍 탓이다. /사진=조원진 SNS
권력과 돈이 눈앞에 어른거렸나?
이들은 후보 추대를 전제로 한 양해각서까지 주고받았던 남재준 후보를 재영입하고, 별도의 애국신당을 만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애국신당은 국내 정당 중 최초로 자위적 핵무장을 주장해온 선명보수 이념정당인 통일한국당(당대표 최인식, 2015년 11월 창당)을 토대로 재구성한다는 안이 현재로선 유력하다. 결정 시한은 대선후보 등록일(15~16일)까지라서 하루 이틀 사이에 빠른 상황 전개가 예상된다.
그래서 문제다. 애국 신당이 새누리-통일한국으로 이원화할 경우 창당을 본격화하기 전 둘로 쪼개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좋게 말하면 경쟁체제이지만, 태극기 민심을 수렴한다는 명제에 비춰 떳떳한 일은 못된다. 군소정당의 이합집산은 정치실험은커녕 거의 붕당 수준이다.
좋다. 지금 상황에서 당장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큰 원칙을 재확인해볼 차례다. 이 땅에 진정한 보수주의 정당을 탄생시키는 정치실험에서 코 앞의 대선 자체가 최종목표일 수는 없다. '대선 그 너머' 3년 뒤 총선,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하며, 그 위해 뜻있는 정치지망생을 모으고 교육시켜야 옳다.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진 이념지형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밑작업을 도맡는 것도 애국신당의 몫이다. 이미 확보한 20만 진성당원을 토대로 신문-라디오 방송 등 위력적인 제3의 매체 창간, 대형 포털 만들기 등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국사회의 지형지물을 정상화시켜야 옳다.
당장은 선명한 보수 이념을 견지하며, 작지만 알토란 같은 미니 정당 노릇을 제대로 할 경우 대중정당인 자유한국당에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렇게 할 경우 7년 뒤인 22대 국회 쯤에선 자유한국당을 흡수해 명실상부한 이 나라의 보수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하란 법도 없다. 이런 전망에 비춰 체제수호에 충실한 애국신당의 등장은 실로 굿 뉴스다.
이런 국면에서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내홍은 안 될 말이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진성당원 20만이 대거 입당원서를 냈을 때 혹시 당신들은 절박한 대한민국 살리기 프로젝트 대신에 권력과 돈이 눈앞에 어른거렸던 것은 아니었나? 그건 거의 최악이다.
이번 정치실험이 실패하면 이 땅에 진정한 보수 정당을 탄생은 물 건너간다. 상식이지만 보수 우익정당 건설에서 참여자들의 품성이 핵심인데, 살신성인당 혹은 백의종군당의 모습이 아니면 살아날 길이 없음을 새삼 밝혀둔다. 엄동설한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이 땅의 애국세력 중 뜻있는 지식인들의 진지한 참여도 필수임은 물론이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