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영민 산업부장]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인 '통신비 인하' 공약이 이번에도 어김 없이 등장했다. 매달 수만원의 휴대폰 요금을 내는 유권자에게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1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8대 통신비 인하 공약을 공개했다. 문 후보 공약의 핵심은 이동통신 서비스의 기본료 폐지와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2·3세대(G) 기본료 폐지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및 알뜰폰 확대 등을 통한 경쟁 활성화 공약을 검토 중이다.
그동안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빠짐 없이 등장한 통신비 인하 공약은 선거 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공약(空約)'에만 그쳤다. 그도 그럴 것이 기본료는 현재 이통사 매출의 근간이 되는 부분이어서 이를 폐지할 경우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문 후보의 공약처럼 기본료를 폐지한다면 표준요금제, 스마트폰 정액요금제 이용자 등을 포함해 연간 8조원 정도가 이통사 매출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는 지난해 이통사 영업이익(3조6000억원)의 2배가 넘는 규모다.
기본료를 폐지하면 이통사는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과 설비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끊임 없이 진화하고 있는 통신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설비투자 등이 더뎌지거나 아예 실행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통신품질은 물론 다양한 콘텐츠와 부가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져 소비자에게도 좋지 않다.
문 후보는 또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마케팅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이통사가 지원금을 많이 뿌리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기본료 인하로 이익이 줄어든 이통사가 과연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는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할 경우 출고가 인상, 공짜 마케팅, 요금 인하 여력 축소 등 소비자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용역 보고서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
문 후보의 통신비 인하 공약을 두고 통신업계가 "현실을 모르는 날린 표퓰리즘 공약"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통사의 이익을 줄이고 마케팅 경쟁은 부추겨 통신요금은 적게 내고 단말기는 싸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감이 떨어져 보인다.
이통사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신요금 인하 압박에 시달려 왔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부터 집권기간 동안 통신요금 20% 인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이통사들을 전방위로 압박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정부가 통신비 인하에 개입하려면 직접적인 조정보다는 이통 3사의 경쟁을 통해 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것이 맞다.
문 후보의 통신비 인하 공약을 보면 대부분 유권자들을 유혹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본료 폐지로 당장 통신요금이 낮아지고, 지원금 상한제 폐지로 단말기 구입비용이 줄어들며, 로밍요금 무료에다 와이파이존을 확대해 데이터 비용을 아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공약이다.
여기에는 통신업계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맹점이 있다. 문 후보가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 5G를 '오지'라고 발음해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통신비 인하 공약도 현실을 모르고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날린 공수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현재 통신사들은 차세대 네트워크인 5G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인 5G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만큼 통신서비스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요구되고 서비스를 개발하는데도 적잖은 개발비가 투입되는 사업이다.
통신비를 인하하려면 통신사들이 단순히 통신요금만 받아서 생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5G 시대가 열리면 통신사는 통신비로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업 다각화를 통해 다양한 먹거리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기업도 유권자다. 단순히 소비자만 만족시키는 공약으로는 표심을 얻기 힘들다. 대선 후보들은 경제 관련 공약에 대해 신중하게 접급해야 한다.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살 수 있는 경제 정책만이 표심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디어펜=김영민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