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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행복한 나라로…사회통합을 위한 다섯가지 제언

2017-04-13 18:1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동서고금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간절하게 희구하는 목표일 것이다. 특히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근대화를 성취한 대한민국은 성장의 뒤안길에 드리운 그늘을 거둬 내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갈망이 더욱 크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오늘날 행복한 사회의 조건으로 대두되는 가장 큰 화두가 사회통합이다. 그런데 사회통합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진단하며 어떤 해법에 중점을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접근 방식에 따라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 처방도 달라진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오랫동안 남북 분단 상황에 처해 있어 이념적 대립의 뿌리가 깊고 비약적인 경제성장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비추고 있는, 복잡다기하고 역동적인 사회에 꼭 들어맞는 사회통합 정책을 도출하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의 성숙기에 접어든 서구 사회와 사회경제적, 문화적 환경이 많이 다른 것도 한 요인이다. 

따라서 근대민주주의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에게는 사회의 격차 해소와 양극화 완화를 위한 사회적 역량만 강조해서는 사회통합을 이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에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 그리고 근대국가 시민 덕목의 정상적인 작동에 필요한 통합 가치의 공유와 내면화도 함께 진전되어야 사회통합의 수준을 높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문제의 인식에서 우리는 일상의 삶의 질(Quality of Life)뿐만 아니라 사회적 응집성(Social Cohesion), 사회적 안정성(Social Stability),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 사회적 포용성(Social Inclusiveness) 측면으로 시각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에 덧붙여 인문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영역들의 종합적 역량을 포괄하여 사회적 역량(Social Capacity)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사회통합 정책 영역의 지평을 확대하고 제도와 인식의 변화를 견인할 사회통합 정책들이 발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역량과 사회통합을 증진하기 위해 우리가 집중해야 할 사회통합의 시급한 정책과제를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이 과제들은 앞으로 면밀한 이론적 논의와 분석을 통해 보완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배금주의와 개인주의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전통적 가치관은 해체되었지만 이를 대체할 근대국가 시민으로서의 가치관은 제대로 체득하고 내면화하지 못했다. 이런 사정들이 사회통합의 기초를 부실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사진=연합뉴스


첫 번째 과제는 청년 일자리 확대를 통한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에 직결되는 긴요한 문제다. 2017년 2월 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15~24세 청년 실업률은 10.7%로, 2000년에 10.8%로 정점에 다다른 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청년 실업은 이제 우리에게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거 우리 사회의 세대 간 갈등은 정치적 측면이나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비롯된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요즘은 경제적 차원에서 일자리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인한 갈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청년 실업의 원인은 복잡다기하다. 근본적으로는 저성장이 고착화돼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상황에 원인이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저성장과 함께 일자리 창출력마저 저하되는,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또한 산업 기반이 취약해지고 고용 창출 효과가 높은 내수·서비스업의 성장 기회도 빈약해지고 있다. 더불어 기업의 해외 이전과 아웃소싱 추세가 강화되는 데다 노동 절약형 기술 도입이 확대되면서 국내 일자리 창출 능력은 더욱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노동시장이 경직돼 신규 노동력인 청년들의 진입이 어려워지고 있다. 대기업-정규직-유(有)노조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 신규 고용 창출이 지체되고 있다. 설사 고용될 자리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기업 규모 간 임금 격차로 인해 청년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일자리 불일치(mismatch)가 심화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미스매치는 기업 규모별 일자리 수급의 불일치이다. 대기업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들이 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경제 환경은 사회통합을 위한 방책으로서 청년 취업 대책의 어려움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인이다. 이제 일자리 정책은 복지 정책이자 사회통합 정책의 핵심이 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청년 일자리 창출과 고용 증대를 통해 세대 간 상생을 이룰 수 있을까?

먼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우선 청년 고용 흡수에 용이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력 활용이 유연해지도록 획일화된 노동규율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과감한 구조 개혁과 규제 혁파도 뒤따라야 한다.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되는 세대 간 과도한 자산·소득·기회의 격차를 완화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기업이 고용임금, 연금, 복지 수준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공개해 청년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의 국내 투자와 고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용‧금융‧법제 관련 위험을 줄여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컨대 정년 연장법이나 통상임금 수준도 종합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청년이 각자의 재능과 역량에 맞는 다양한 직종에 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교육 개혁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고졸 취업자의 직업 능력을 강화하고, 취업 문턱에서의 고졸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또 선진국처럼 직업학교를 증설하거나 학교-지자체-지역사회와 산업계가 공조하는 협력학교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런 토대가 있어야 학력이나 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문화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과제는 계층 갈등의 원인이 되는 소득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업 증가 등으로 중산층이 약화되면서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적 격차는 주거, 교육, 소비, 의식, 자산, 고용 기회에서도 상·하층의 격차를 가져와 사회 전반에 양극화를 확대시킨다. 최근 경제성장률 저하는 구조적으로 계층 이동의 기회 자체를 적어지게 하며, 과거에 비해 교육 투자에 따른 계층 이동의 효과도 떨어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 인식 측면에서도 고용 불안, 물가 상승, 미래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중산층 집단이 스스로를 하류층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기회의 평등이 훼손되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인식으로 연결되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소득 양극화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국제 경쟁 심화와 제조업의 퇴조 그리고 금융 및 상업 자본의 성장과 노동 절감형 기술 발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경제 환경의 변화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산업 고도화에 따른 제조업 근로자의 퇴출(중국 효과)과 영세 자영업의 구조적 몰락, 경제성장 둔화와 성장의 고용 창출 능력 감소, 그로 인한 비정규직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대학 교육의 공급 증대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대졸자와 중소기업 대졸자의 임금 격차, 사교육 경쟁으로 인한 교육 격차가 심화되는 것과 같은 사회 환경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소득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을까? 이제 기존의 경제성장 추구 일변도에서 벗어나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계층 이동이 원활한 환경을 조성하고 근로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개개인의 역동성을 높이고 생산성이 높은 사회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포용적 성장과 공정한 기회 확대 전략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고용 취약계층의 일자리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의 전반적 증대 못지않게 저학력, 비숙련, 여성, 장애인, 노년층, 청년층을 겨냥한 일자리 창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울러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제도적 개혁을 통해 청년층 일자리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소득의 재분배 효과를 높이는 방식으로의 복지제도 개선을 통해 양극화를 완화해 나갈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차상위계층에 대한 조기 개입을 통해 빈곤의 대물림을 차단하고, 근로와 복지를 연계해 자활과 일자리 기회를 부여하는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빈곤층의 자산 형성을 촉진하는 아동 발달 지원 계좌와 같은 '기회 형성'을 위한 복지서비스의 확대도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빈자와 부자 간, 기업과 가계 간 소득의 재분배 효과를 높이는 조세제도의 개편이 절실하다. 또한 사회복지제도와 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위험에 처한 저소득층과 청년층을 보호하는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을 통해 사회이동성을 제고해 나가는 것도 양극화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의 교육 기회를 좌우하지 않도록 조기에 공적 투자를 통해 균형적이고 적절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유년기 아동에 대한 사회적 지출을 높이는 것은 사회적 이동성 제고에 더 크게 기여한다는 연구도 있다.

사회적 배제와 차별 예방을 위한 사회문화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스펙(specification)과 연줄의 과도한 작용은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감과 동기 부여의 감소는 물론 사회와 제도에 대한 신뢰 하락을 초래하게 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를 다양하게 강구할 필요가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우선 청년 고용 흡수에 용이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력 활용이 유연해지도록 획일화된 노동규율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세 번째 과제는 다문화 가족과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사회적 포용성(Social Inclusiveness)을 높이는 정책을 강화하는 일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인구는 2015년 말 기준 190만 명에 이르고, 다문화 가구는 27만 8036가구로 2012년 대비 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변모함에 따라 증가에 한국인과 이주민 간 접촉과 교류도 다양한 생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요즘의 이러한 현상들은 오랫동안 혈통 중심 사회를 이루어 온 우리 국민들에게 문화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외국인 유입에 따른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서서히 나타나면서 정부의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이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인식마저 생겨나는 등 잠재적 사회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이다. 우리 사회는 저성장 고착화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다문화가족이 일정 부분 순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다문화에 관용적이었던 유럽에서 테러가 빈발하면서 발생한 난민 거부 사태,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반이민 정책과 같은 부정적 대응의 영향도 우려된다. 선진국에서 겪는 문제들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거리가 있으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선제적으로 다문화가족에 대한 고용 정책과 복지 정책의 방향성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다문화 정책이 다문화가족에 편중된 지원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면, 앞으로는 국가 전체의 발전 전략 차원에서 이민 정책에 대한 접근으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민자 등 다양한 형태로 정주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다문화가족 정책이라는 특수성에서 벗어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민 정책으로 대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등을 아우르고 내국인의 정서를 고려해 사회통합 차원의 이민 정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선진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문화 담론과 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한국 사회에 적합한 이민 및 다문화 정책의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사회통합을 위해 탈북민을 포용해 나가는 정책도 긴요하다. 1990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입국하기 시작한 탈북민의 수는 현재 약 3만여 명에 이른다. 정부에서는 그간 이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사회경제적으로 다양한 지원책을 펼쳐 왔다. 이들은 ‘미리 온 통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민 대다수는 아직도 사회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언어나 가치관, 사고방식 등의 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한 심리 적응의 곤란을 겪는 것이다. 특히  일부 탈북민에 대해 우리 사회에 유포된 왜곡되거나 과장된 인식들도 대다수의 선량한 탈북민을 힘들게 하는 요소이다. 2015년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에서 탈북민들의 월평균 임금이 147만 1000원으로 다른 국민들(223만 1000원)의 6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탈북민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제 탈북민 지원 정책은 역차별과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대상 특수적’ 접근 방식이 아닌 보편적 기준(실업, 질병 등)에 의한 일반 복지서비스의 수혜 체계로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법적 보호 기간이 경과한 경우에도 남한 주민과 동일한 조건에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해 어느 정도 정착한 후에도 계속 ‘탈북민’으로 분류되어 주변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정착해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우선 정착지원금과 주거 지원 등 물적 토대를 강화함과 동시에 국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유대의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 같은 우리 사회의 가치와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노력도 절실하다. 예를 들어 탈북민을 대상으로 남한 주민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 조직 문화 등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탈북민과 다른 국민 간의 관계망 형성을 위한 다양한 지역 기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서로 간 담론의 장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인구는 2015년 말 기준 190만 명에 이르고, 다문화 가구는 27만 8036가구로 2012년 대비 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다문화 정책이 다문화가족에 편중된 지원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면, 앞으로는 국가 전체의 발전 전략 차원에서 이민 정책에 대한 접근으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초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북한식당에서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탈북해 입북하는 모습./사진=통일부 제공


네 번째 과제는 우리 실정에 맞는 사회통합을 위한 인문적 접근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요즘 학계 일각에서는 사회통합을 위해 중산층을 적극 육성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제기한다. 중산층이 늘어나면 사회통합 수준도 높아질까? 대개 중산층이 두터운 나라에서는 사회통합 수준이 높고 국민의 행복감 또한 높은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행복감을 구성하는 요인과 중산층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대책의 적실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산층과 행복감, 나아가 사회통합이 어느 정도 긴밀한 내적 상관성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중산층의 개념 자체가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제학적 관점으로 보면 OECD는 중위가구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분류한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중산층은 특정 교육 수준을 달성하고 특정 수준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직장에 다니며 특정한 가치와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규정되기도 한다(Coleman & Rainwater, 1978). 또 주관적 인식에 의해 중산층을 식별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는 계층의식을 바탕으로 중산층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는 상당히 잘 사는데도 스스로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중산층의 개념에서 경제학적 관점만을 지나치게 중시하기보다 교육 수준과 직업, 주류 가치의 공유와 문화생활의 정도 등 다면적 모습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통합과 연관하여 해석하고자 할 때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배금주의와 개인주의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전통적 가치관은 해체되었지만 이를 대체할 근대국가 시민으로서의 가치관은 제대로 체득하고 내면화하지 못했다. 이런 사정들이 사회통합의 기초를 부실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적 관점 못지 않게 사회심리적 관점으로 중산층을 정의할 필요가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적 위치에 따른 중산층의 자기 인식 못지않게 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성숙한 시민 덕목을 갖춘 중산층의 존재 여부는 사회통합에 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중산층을 경제학적 관점에 국한하여 이해한다면 소득 격차 완화 같은 대증적 정책이 사회통합에 기여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특정한 가치와 태도를 가진 중산층을 중요하게 식별하게 될 때 사회통합을 위한 과제로는 또 다른 차원의 대책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자유에 따른 책임감, 자족(自足)의 인생관과 같은 속인적(屬人的), 비경제적 요소들을 촉진하고 함양하는 사회 정책과 교육문화 정책도 격차 완화를 위한 경제 정책과 복지 정책 못지않게 중요해지는 것이다.

사회 갈등 역시 경제적 요인에서뿐만 아니라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 촉발되거나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국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은 경제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비경제적 관점 그리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한 대책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 갈등의 근인(根因)에 개인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의 잠재적 갈등 소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사회통합 증진을 위한 갈등 해소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의견들도 있다. 따라서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사회제도적 영역 못지않게 개인과 가정에서의 역할과 기능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사회제도적 측면에만 집중할 경우 갈등 관리의 책무를 국가에 과도하게 전가하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 갈등의 진원을 들여다보면 개개인의 지나친 경쟁심에서 비롯된 시샘과 질투의 국민 정서, 그리고 과도한 평등의식에 상당 부분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영역에서 발원하는 사회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개인의 성취를 인정하는 사회적 가치의 공유나 욕망 절제의 덕목 같은 개인적 해독제가 더 실효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영역의 갈등 관리는 민주주의의 만개, 정부 제도의 질 향상 또는 복지 지출의 증대만으로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소 또는 완화하기 위한 정책 수립에서 사회제도적 측면과 개인적 차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인적 차원의 사회통합 정책으로서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시민 덕목과 개인 인성을 함양하고 계발하기 위한 교육 정책의 혁신과 종교계의 역할이 더욱 긴요해진다.

지금까지 국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사회통합 수준 제고 차원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거나 앞으로 검토하고 추진해야 할 과제들을 다양하게 제시해 보았다. 사실 이 과제들을 정책화하려면 하나하나 세밀하게 분석해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학계와 실무계의 깊은 관심과 후속 연구들이 절실히 요청되는 이유이다.

끝으로 차기 정부에서 모든 정책을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가칭)사회통합영향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이를 실효적으로 관리하는 등 국민 통합 정책을 종합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법률에 근거한 행정위원회 또는 독립 행정청 형태의 국민 통합 기구를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이 글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하는 《보건복지포럼》(2017년 3월호, 통권 제245호) 권두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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