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63)-죽음의 수용으로 국법 준수의 정의를 실천하다
플라톤(BC 427~BC 347) 『크리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감옥에 투옥되었다. 독약을 마시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소크라테스에게 죽마고우와 제자들은 탈옥을 강력히 권유했다. 소크라테스를 억울하게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들의 권유를 단호히 뿌리쳤다. 그 역시 아테네 법정의 판결을 부당하다고 여겼지만 그 결정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플라톤은 이 경과를 대화편 《크리톤》에 담아 후세에 전했다.
아테네 법정의 사형판결을 소크라테스가 담담히 수용한 데에서 소크라테스 하면, '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라는 말이 연상된다. 그가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직접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왜 그가 한 말처럼 널리 유포되어 있을까.
이 말은 직역하면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이다'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실제로 이 말은 한 사람은 로마의 법학자인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Domitius Ulpianus)로 알려진다. 중고교의 교과서에 준법의 사례로 인용되던 이 어구는 2004년에 헌법재판소의 수정요청에 따라 삭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물론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직접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크리톤(Criton)》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신념과 철학이 주는 연상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함축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가 국법의 중요성을 갈파한 취지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 내용을 들여다보자. 소크라테스는 사형 판결을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1개월여 간에 그의 어릴 적부터의 친구인 크리톤으로부터 탈옥을 권유받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판결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친구에게 조목조목 설파하며 탈옥을 거부했다. 그 내용을 담은 이 책 《크리톤》은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4대 복음서(소크라테스의 변론, 향연, 크리톤, 파이돈) 중에서 가장 짧은 분량이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출석해서 그에게 벌금형을 제안하도록 권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어떻게든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 소크라테스를 살려내려고 애쓴 절친이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대려고 하고 있고, 텟살리아로 가면 자신의 친구들이 그를 보호해 줄 거라고 안심시키며 탈옥을 종용한다. 심지어 고아나 다름없이 될 자녀들에 대한 책임성을 강조하며 소크라테스의 부성애를 자극하기도 한다.
크리톤은 민중에게 모함당하는 것이 크나큰 해악을 입는다는 것임을 소크라테스의 예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모는 것 자체를 최대의 해악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민중이 그저 그때그때 되는 대로 할 뿐 최대의 해악도 최대의 선도 행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런 만큼 그는 대중의 의견과 평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소크라테스는 민중의 지혜를 믿지 않았다. 그는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의견을 따를 경우 우리의 삶이 더욱 망가질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그가 민중의 지혜로움에 의문을 가졌던 이유다. "불의한 행위에 의해 탈이 나고 정의로운 행위에 의해 덕을 보는 그 부분이 망가졌다면 우리의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중우(衆愚)의 해악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는 민중의 의견과 판단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혜를 행위의 척도로 삼을 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통해 삶을 이어가길 추구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에 기초해서다. "잘 사는 것은 아름답고 올바르게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판단도 그래서 단단해진다. 자신이 죽게 될 경우 남은 자식들의 양육 문제 또한 소크라테스에게는 탈옥을 해서라도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까지 여겨지지 않았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크리톤에게 국가와 국법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거침없이 설파한다. 여러 주장들을 크게 분류해 보면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남으로부터 어떤 해악을 당하더라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되고 피해를 입혀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불의한 짓을 저지르는 것도, 불의한 짓을 앙갚음하는 것도, 해를 입은 사람이 앙갚음으로 자기를 지키는 것도 결코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고발한 멜레토스 등에게도 사적인 원한을 앙갚음 하고자 하는 어떤 뜻도 비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오히려 그는 자신의 탈옥이 친구와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을 더 염려했던 것이다. 참 지혜를 추구하기 위해 세상과 불화한 완고한 그였지만 주변을 배려하는 소박한 인간애는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었다.
둘째, 소크라테스는 만일 국법이 "한 나라에서 일단 내려진 판결이 아무 효력도 거두지 못하고 한 개인의 임의대로 무효화되고 파괴될 경우, 그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자문한다. 그는 나라가 자신을 무고하여 올바른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하여 국민의 생존과 양육, 교육의 바탕이 된 법률을 거역할 수 없다며 판결 준수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조국을 파멸시키지 않기 위해 시민이 갖춰야 할 자세를 힘주어 말한다.
"조국이 노여워하면 그대 아버지가 노여워할 때보다 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더 공손하게 그대가 달래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가? 그리고 그대는 조국을 설득하거나 조국이 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야 하며, 조국이 내리는 벌은 태형이든 투옥이든 묵묵히 참고 견뎌야 하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불경한 짓이라면, 조국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훨씬 더 불경한 짓이라네."
셋째, 소크라테스는 국민들은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국 등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지만, 조국에 머물러 있는 한 국가가 명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며 국민의 복종의 의무를 강조한다. 특히 자신이 사형 대신 국외추방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 자체가 스스로 사형판결을 받아들인 것이므로 이제 와서 파렴치하게 탈출하여 국법을 파괴할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소크라테스는 누가 "우리의 재판 체계와 그 밖의 국정운영 방식을 보고도 이곳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의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기로 사실상 합의한 것"을 의미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누구든 (자기가 머물고 있는 조국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삼중으로 불의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종하겠다고 합의해 놓고는 복종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도록 우리를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합의와 복종의 관계로 파악했던 것이다. 이런 주장의 취지는 문헌 상 나타나는 인류 최초의 사회계약설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진 그였기에 탈옥을 "시민으로서의 모든 활동에서 우리들 국법을 준수하기로 합의해놓고 계약조건과 합의사항을 어기고 도주하려고 기도"하는 것으로 여기고 거부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자신이 만약 탈옥해서 다른 나라로 도주한다면, 그곳의 애국자들은 누구나 자신을 국법을 파괴하는 자로 의심하게 될 것이고, 그러니 아테네 배심원들에게 자신들이 올바른 판결을 내렸다는 확신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고 설파한다.
넷째, 소크라테스는 국법을 준수하는 것을 정의의 문제로 보았다.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한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탐욕스럽게 삶에 집착한다"는 치욕스런 비판을 듣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것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한 일이고 수치스런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해서 국법의 파괴자로 비난받고,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비굴하게 여생을 보낼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가 "악을 행한 자로서가 아니라 고난을 당한 자로서, 법률의 희생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희생물로서 순결하게 죽는" 길을 택하겠노라고 말한 이유다. 그는 자식이나 목숨, 그 어떤 것도 정의보다 소중히 여겨서는 안 된다며, 국법 준수의 정의 실천을 통해 내세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소크라테스는 국법을 지키는 일을 신성한 책무로 받아들였다. 그의 마지막 말이 큰 울림을 준다. "크리톤, 국법이 권하는 대로 하세. 신께서 우리를 그쪽으로 인도하시니까."
결국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국법체계와 아테네 시민들의 판결의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했다. 그는 아테네 시민을 대상으로 '무지(無知) 지(智)'를 일깨워 주려던 자신의 소명(召命)을 마지막 명예로운 '사명(死命)'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죽음의 수용을 통해 스스로 영생을 길을 택했다.
개인의 정파적 이익과 안위만을 위해 국법을 무시하고 사법부를 조롱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개념 없는 정치인과 자신과 조직, 지역의 특수한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탈법과 위법을 서슴지 않는 집단이 넘쳐나는 요즘의 세태에 경종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추천도서: 《크리톤》,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2), 348쪽.
[박경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