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서거1주년을 맞아 <지금 왜 우리에게 마거릿 대처가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주제발표는 박지향 서울대 교수와 김충남 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이 맡았다. 국내 대통령학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김충남 박사는 주제발표에서 "대처총리와 박근혜대통령은 원칙과 신념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박사는 이어 박대통령의 개혁이 성공하기위해선 보신주의에 젖은 관료를 내보내고, 개혁마인드로 무장한 최고경영자등을 전진배치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감축과 정부조직 축소및 통폐합, 지자체 등 풀뿌리규제 제거, 야당과의 소통노력 강화를 통한 개혁입법 국회통과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충남 박사의 <대처 개혁에 비추어 본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이란 주제발표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아시아의 철의 여인' 박근혜대통령 대처를 롤 모델로
▲ 김충남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아시아의 철의 여인'으로 불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철의 여인'으로 알려진 대처를 롤 모델(role model)로 삼아왔기 때문에 대처 리더십이 박근혜 리더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철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듯이 '철의 여인'이란 남성이 주도해온 정치에서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취임 후에도 비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획기적인 업적을 이룩한 여성지도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국제적으로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가부장적 전통으로 인한 여성에 대한 편견,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로만 보는 편견, 아버지 후광에 힘입었을 뿐이라는 편견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저력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 리더십에 대해서는 김충남, 『성공이냐 좌절이냐 박근혜의 외로운 줄타기』 (영림카디널, 2014)를 참조할 것)
▲ 김충남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 저술한 박근혜대통령 연구서 <성공이냐 좌절이냐, 박근혜의 외로운 줄타기>. |
'박정희 후광' 편견...박근혜 대통령 저력 제대로 평가못받아
그래서 대담한 개혁을 통해 영국을 재건하는데 성공한 대처의 리더십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 리더십을 평가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 리더십에서 보완되어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대처에 대해서는 박지향, 『대처 스타일』(김영사, 2012), 고승제, 『마거릿 대처』(아침나라, 2003), 채희봉, 『대처 vs 클린턴』(미래M&B, 2007) 등을 참고로 하였다.)
리더십은 지도자의 자질과 리더십 환경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리더십 자질이나 스타일 면에서 대처와 박근혜 대통령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그러한 유사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처의 리더십 스타일을 모방해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리더십은 복잡다단한 국내외 여건 속에서 시시각각 대처하는 가운데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대처 리더십의 주요 특징과 한계를 먼저 살펴보고 리더의 자질과 스타일 면에서 대처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점에서 유사하며 다른가를 살펴본다. 다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처한 정치사회적 환경은 대처가 처했던 것과 어떤 점에서 다르며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 리더십에서 고려되어야 할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 자유경제원이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서거 1주년을 맞아 대처의 철학과 업적, 유산, 그리고 박근혜대통령의 규제혁파 정책에 시사하는 점을 모색하는 <지금 왜 우리에게 마거릿 대처가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
대처 리더십의 특징
대처 개혁의 핵심은 '작은 정부'를 통해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최소화하여 민간부문의 창의와 경쟁을 보장함으로써 경제사회적 활력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영국은 그 동안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할 정도로 정부가 민간부문에 지원하는 동시에 개입하는 사회주의적 ‘큰 정부 노선’을 추구함으로써 영국을 쇠퇴에 빠지게 하고 이로 인해 국민은 절망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대처는 민간부문에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경제 활력을 도모하고 나아가 위대한 영국을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그의 리더십은 다음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애국주의다. 그는 "영국이 쇠퇴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면서 나라를 구하고 위대한 영국을 재건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위대했던 영국의 전통을 중시하며 '영국병'을 치유하여 영국을 부흥시킴으로써 영국 국민의 자부심을 회복하고자 적극 노력했다. 제국주의 시대를 비판하는 자학사관을 일축하고 어느 나라보다 산업혁명과 민주발전에 앞장섰던 자랑스러운 영국의 역사를 국정 교과서를 통해 가르치게 했다.
영국재건 사명, 사회주의정책 폐지와 시장경쟁촉진 역점
둘째, 원칙을 중시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구했다.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관철했으며, 결코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 동안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경제활동이 침체되었다고 판단하고 개인과 기업을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해방시켜 창의력을 발휘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했다. ‘작은 정부’ 노선에 따라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긴축재정 정책을 폈지만 이로 인해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추락하는 등 어려움에 직면했고 이로 인해 집권당 내에서도 긴축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처는 "이 길밖에 없다", "결코 U턴은 없다"면서 밀어붙였다. 이처럼 그의 장점은 보수주의 철학에 기초한 분명한 목표와 이를 달성하려는 확고한 의지에 있었다. 인기영합적 정책이나 주장을 증오했고, 인기를 위한 정치적 쇼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경제논리보다는 단순하고 평범한 말로 설득력을 발휘하여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선거 승리로 재집권하여 시간적 여유를 확보함으로써 자신의 개혁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원칙을 중시하며 소신대로 밀어붙여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권위주의적이고 비타협적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반대세력이 형성되기도 했다.
보수철학 기반, 포퓰리즘정책 증오, "이 길밖에 없다. 결코 유턴은 없다"
셋째, 포클랜드전쟁 당시 보여주었듯이 그는 용기와 결단력이 뛰어난 지도자였다. 위기의 해결사로 등장한 대처는 자신의 정책을 일사분란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정치철학에 동조하는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하여 내각을 확고히 장악했으며, 정책결정 방식도 매우 독단적이었다. 이처럼 그는 화합을 이끌어내고 결속을 다지며 팀플레이를 하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대처는 육체적 강인함으로 내각을 확고히 장악했다. 그의 체력은 어느 남성보다 강했다. 내각회의 전날에는 새벽까지 모든 보고서를 꼼꼼히 읽고 아침 회의에서 정책의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따지고 또한 자세한 지시를 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장관들은 항상 긴장했다고 한다. 휴가는 할 일 없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며 휴가도 가지 않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휴가를 떠날 수도 없었다.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그의 삶 자체였다. 그는 동료의원인 장관들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 정책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등 권위주의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그 같은 제왕적 리더십 스타일로 인해 비판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측근도 별로 없었으며, 이로 인해 집권 말기에 인두세 도입 등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육체적 강인함으로 내각 장악, "휴가는 할일 없는 사람이나..."
마지막으로, 개혁을 위한 실행전략이 뛰어났다. 그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을 다루기가 더 어렵다"고 하면서 성급하게 개혁에 착수하지 않았다. 포클랜드전쟁에 승리한 후 자신에 대한 지지가 최고조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 수행능력이 강화되었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노조개혁과 공공부문 민영화 등 본격적인 개혁에 나섰다.
그는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하기 위해 초기 내각의 온건주의자들(Wets)을 추진력 있는 개혁주의자들(Dries)로 교체하여 개혁에 대한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했했다. 총리로 취임한지 4년만인 1983년부터 노조 개혁, 공기업 민영화, 공공 임대주택 불하 등 본격적 개혁에 나섰고, 다음해에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하고 규제를 대폭 축소함으로써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데 집중했다. 그의 개혁의 전략적 목표로서 만성적 적자경영에 빠진 국영 석탄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석탄노조와의 정면대결에 대비하여 치밀한 준비를 한 후 1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노조와 정면대결을 함으로써 결국 노조를 굴복시켰고, 이 승리의 여세를 몰라 다른 국영기업을 민영화함으로써 공공부문의 대혁신을 이룩했다.
내각 온건주의자에서 개혁주의자로 물갈이, 개혁 본격화
이처럼 끊임없는 노력, 목표달성에 대한 강한 의지, 기회 포착의 순발력, 뛰어난 결단력과 실천력이야말로 그를 성공으로 이끈 핵심적 자질이었다.
대처 리더십이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주는 시사점
원칙과 신념의 지도자라는 면에서 대처와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처 못지않은 애국주의자이다. 그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에 접한 후의 첫 마디가 "휴전선은 이상없습니까?"였다. 대처가 위대한 영국의 재건을 목표로 했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외환위기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치에 뛰어들었으며,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역사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충성심과 효도심이 합쳐져서 위대한 국가를 만들겠는 사명감이 어떤 정치인보다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 박근혜대통령과 대처 전 총리는 확고한 원칙과 일관성있는 추진력이 공통적이다. 박대통령의 규제개혁과 공기업개혁이 성공하기위해선 대처처럼 확고한 개혁마인드로 무장한 최고경영자등을 개혁의 선봉장으로 전진배치해야 한다. 박대통령의 개혁을 실행하는 관료들은 보신주의에 젖은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많은 난관을 뚫고 개혁을 성공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와함께 작은 정부실현과 규제를 일삼는 관료들을 없애기위해 정부조직 축소및 통폐합, 민영화 등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박대통령이 규제개혁회의에서 규제는 죽여야 할 원수, 없애야 할 암덩어리라고 강조하고 있다. |
원칙과 신념의 지도자, 애국자 공통점
대처가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 어떠한 반대나 장애에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취임 직후 미래창조과학부의 기능을 규정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야당 반대에 직면했을 때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고 원안 고수를 천명하면서 불통이란 비난도 받았다. 또한 목표 달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행정부를 확고히 장악하고 진두지휘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온 것도 대처와 비슷하다. 그는 휴가도 휴식도 없이 일에 몰두하는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특히 밤늦도록 모든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 다음 날 아침 회의에서 지시사항을 쏟아내는 점도 대처와 닮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범한 지도자였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곁에서 5년간 국정수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처가 누리지 못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대처와 여러 면에서 리더십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두 지도자가 처한 시대적 배경과 정치 환경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이 경기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저성장 구조가 고착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성장 괘도에 다시 올려놓아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여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진입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취임 초부터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2014년 초에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 중에 있다.
이를 위해 민간부문이 자유롭게 도전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광범위한 노력을 해왔으며, 지난해 말 철도파업을 계기로 공공부문 개혁에 착수했고 뒤이어 규제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정책노선은 대처가 추구했던 경제적 자유주의 노선과 유사하다.
그러나 2012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는 19위이지만 '정부규제 부담 순위'는 117위로 최하위권이다. 같은 해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한국은 22위이지만 '기업관련 법규 경쟁력'은 39위로 하위권이다. 규제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규제가 많다는 것은 손발을 묶어놓고 뛰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 관민합동회의를 주재하고 규제를 '암 덩어리', '원수', '적' 등 강한 표현을 동원하며 강력한 의지로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은 개혁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대처가 처했던 상황에 비해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처가 집권할 당시에는 오랜 사회주의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으로 '작은 정부' 노선에 대한 지지가 높았고 또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와 일본의 나카소네 정부 등 국제적으로 보수주의 기조가 우세했다. 그러나 세계화 이후 무한경쟁으로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1997~98년 외환위기로 경제발전의 신화가 퇴색되었을 뿐 아니라 상당부분의 중산층이 붕괴되었고 그 후 계속해서 민생경제가 침체를 면치 못하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고 복지측면에서도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로 인해 경제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대통령선거에서 경제민주화를 공약했고 취임 후 경제민주화 관련법들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곧 새로운 규제가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처리즘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지만, 한국에서의 경제민주화는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려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둘째, 내각제와 대통령제라는 제도적 차이는 물론 정치문화도 큰 차이가 있다. 내각제에서는 다수당이 곧 집권당이기 때문에 필요한 법이나 예산이 대부분 뒷받침될 수 있지만, 박 대통령은 ‘비정상적’인 국회법으로 야당이 주요 현안에 ‘거부권’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입법이나 예산 면에서 차질을 빚어왔다. 또한 대처는 내각제로 인해 11년이나 집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광범위한 개혁에 성공했지만,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5년뿐이라는 한계가 있다.
내각제에서는 예비내각 구성원들이 대부분 장관으로 임명되고 장관들은 총리와 동료의원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고 장관들의 정치력도 기대할 수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한 면에서 매우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문화 면에서 볼 때도 영국에서는 정당 간 합리적 정책경쟁이 이뤄지지만, 한국에서는 야당이 대통령의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며, 여론형성 면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셋째, 대처의 경우 '작은 정부'를 통한 자유로운 시장경제냐 아니면 '큰 정부'를 통한 간섭과 통제, 보호와 복지라는 양자택일의 게임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대상은 매우 복잡하여 여러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있다. 공공부문 개혁은 강성노조의 저항은 물론 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까지 저항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의식하여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의 민영화는 고려조자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가 연이어 실패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공무원들의 단순한 복지부동이 문제가 아니라 뿌리가 깊어 쉽게 뽑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전통적인 관존민비와 사농공상의 가치관, 통제위주의 식민통치 유산, 정부주도의 근대화 등으로 관료우위의 사상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해소되기 어려운 구조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부르주아적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 사유재산의 보호와 경제활동의 자유를 확보했지만, 한국은 그러한 자유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공무원들은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권위주의적 관료의식에 빠져있다. 규제는 곧 관료의 권위를 나타내고 권력을 발휘하는 수단이며 또한 먹이사슬이기 때문에 규제개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저항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앞세운 규제개혁이 계속 실패를 거듭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 리더십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
박 대통령이 처한 정치 환경이 불리하고 또한 공공부문의 강성노조와 공무원 집단이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며 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그들을 지원할 것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보다 정밀한 개혁전략과 강력한 추진동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다수의 관료출신을 정부 요직에 포진시키고 그들에게 진돗개정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들은 보신주의가 체질화된 사람들로 개혁에 적극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대처가 말하는 ‘온건주의자들(Wets)’은 진돗개정신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처의 리더십에서 특별히 다른 점은 관료에 대한 인식이다. 대처는 관료의 최대의 관심사는 정책의 옳고 그름이나 국가의 장래가 아니라 자기들의 자리 유지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불신했지만, 박 대통령은 한정된 시간에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실무경험이 많은 관료출신을 중용했지만 추진력이라는 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신주의 젖은 관료들, 규제개혁 진돗개정신 발휘못해
대처가 개혁을 본격화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철학에 적극 동조하는 인물들로 내각을 채웠듯이 박 대통령도 규제대상이 된 바 있는, 추진력이 강한 인물들(예를 들면 최고경영자 출신)을 개혁의 선봉장으로 내세워야 할 뿐 아니라 대통령을 중심으로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 간의 팀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성과를 거두려면 규제개혁과 공공부문 개혁이 금년 이내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지도자들도 개혁전파에 적극 나서야
또한 개혁의 당위성을 전파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대통령은 물론 다른 정부와 집권당 지도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자유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린 적이 없고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가진 자’ 또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즉 자유 시장경제를 저해하는 국민정서가 넓게 퍼져 있으며 이를 바꾸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박 대통령이 야당 및 국민과의 소통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개혁을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청와대 총리실에 규제개혁 전담TF 컨트롤타워 둬야
나아가 청와대와 총리실에 규제개혁과 공공부문 개혁을 전담하는 팀(task force)을 설치하여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마련하고 추진실적을 점검하고 평가하며 보완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등 컨트롤 타워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강력한 의지로 지시를 내리지만 그것이 실천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또한 정보화된 행정여건을 고려하여 행정기능의 재검토를 통해 조직 통폐합, 공무원 감축,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 정부출연출자기관 축소 또는 폐지 등 행정개혁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발연대에는 공무원이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각종 규제로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공무원들이 자각할 수 있도록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조직 축소및 통폐합, 공무원 감축, 민영화도 추진해야
야당이 사사건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고 또한 각종 규제가 수반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럴수록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적극적인 대응전략과 입법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집권당은 야당에 대해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고, 또한 청와대 정무비서실에 입법담당 비서관을 두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부정비리 만연 지자체 풀뿌리 규제 줄이는 것도 긴요
마지막으로 규제개혁의 실질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방자치단체는 행정역량 측면에서 중앙정부에 비해 뒤떨어지고, 또한 연고주의 등으로 부정비리가 만연되어 있어 중앙정부의 규제개혁의 실효성을 낮추고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갖가지 규제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풀뿌리규제’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지도층, 기업인 부정 비리 엄단 등 자정 노력도 중요
공기업 노조와 공무원노조는 물론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의 강력히 반발할 것이 예상되는 바, 개혁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도층과 보수세력의 자정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도층과 기업인들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법적 제제를 받도록 해야 하며, 요직 임명에 있어서도 도덕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행정부와 공공부문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김충남 세종연구소 객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