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충분한 감동 안겨준 '맏언니' 박세리의 아름다운 도전
비록 원했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맏언니' 박세리(36·KDB산은금융그룹)의 도전은 국내 팬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박세리는 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클럽(파72·6738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 마지막날 2타를 잃고 최종합계 6언더파 282타를 기록,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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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리 뉴시스 자료사진 |
공동 선두 렉시 톰슨(19)과 미셸 위(25·이상 미국)에게 2타 뒤진 공동 3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했던 박세리는 역전 우승을 그렸지만 이루지 못했다. 버디 2개·보기 2개·더블 보기 1개를 묶어 2타를 잃었다.
1번홀에서 첫 버디를 잡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추격자 입장이기는 했지만 메이저 5승을 보유한 박세리는 여유로웠고, 메이저 우승이 없는 19살 톰슨과 25살 미셸 위는 불안해 보였다.
그러나 톰슨은 예상 외로 흔들리지 않았다. 전반홀에서만 4개의 버디를 성공시키며 멀찌감치 달아났다. 후반라운드 들어서도 무너지지 않으며 완벽한 우승을 이끌어냈다.
무너진 쪽은 오히려 박세리였다. 1·6번홀에서 버디를 잡았던 박세리는 8번홀 보기로 추격 의지가 한풀 꺾였다. 티샷이 러프에 빠졌고 어프로치마저 짧았다. 파 퍼트도 홀컵 오른쪽으로 흘렀다.
결과적으로 6번홀에서의 버디가 마지막이었다. 파 행진을 거듭하던 박세리는 15번홀 보기, 18번홀 더블보기를 범하며 쓸쓸히 퇴장했다. 경기를 마치고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는 박세리의 모습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이번 대회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대회였다. 지난해 초반, 신지애(26)의 시즌 개막전 우승을 시작으로 태극낭자는 4월까지 3승을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올해는 1승도 거두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맏언니' 박세리가 힘을 냈다. 1라운드부터 공동 2위로 뛰어오르며 한국 선수의 시즌 첫 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시즌 첫 승 물꼬를 박세리가 해줄 것이라는 기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쏠렸다.
특히 유독 이번 대회와 인연이 없었던 박세리가 우승을 차지할 경우 한국인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5개 메이저 대회 중 생애에 걸쳐 4개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앞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각기 다른 5개의 메이저를 제패하며 '슈퍼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캐리 웹(40·호주)을 제외하고, 미키 라이트·줄리 잉스터·팻 브래들리·루이스 석스(이상 미국)·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등 5명 뿐이었다.
US여자오픈(1998년)·LPGA 챔피언십(1998·2002·2006년)·브리티시여자오픈(2001년)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5개의 우승컵을 수집한 박세리였지만 유독 이번 대회에서 만큼은 인연이 닿지 않았다. 2012년 공동 8위를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맏언니로서의 책임감과 개인적인 영광이 맞물려 부담은 두 배로 컸다. 3라운드를 마치고 난 뒤 LPGA와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한동안 LPGA 투어 무대에서 잠잠했던 박세리는 지난주 막을 내린 KIA클래식을 통해 리더보드 상위권에 이름을 내밀었다. 안나 노르드크비스트(27·스웨덴)가 우승을 차지한 대회에서 공동 6위에 랭크되며 기대감을 높였다.
박세리가 LPGA 투어 대회에서 톱10 안에 든 것은 지난해 10월 선라이즈 LPGA 대만챔피언십(공동 5위) 이후로 6개월 만이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퍼터를 바꿨다는 그는 과거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을 회복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평균 퍼트를 29개로 잘 막았다.
지난해 메이저 3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돌풍을 일으킨 박인비(26·KB금융그룹)도 박세리의 영향으로 골프를 시작한 전형적인 '세리 키즈'다.
지난해 워낙 성적이 좋아 우상이던 박세리를 뛰어넘고 한국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것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감이 높았다.
LPGA 통산 25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긴 박세리라고 할지라도 지난 2010년 벨 마이크로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심 밖으로 밀린 것은 당연해 보였다.
LPGA 1세대로서 박세리가 남긴 화려했던 발자취는 박물관 속으로 갇히는 일만 남은 듯 했다.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씁쓸함만이 남았다.
2002년 CJ와 맺었던 5년 간 150억원이라는 거액의 스폰서십이 2007년을 끝으로 만료된 후 박세리는 중소기업의 지원을 받으며 LPGA 투어 출전을 간신히 이어왔다.
2011년 11월을 끝으로 이마저도 끊기게 된 상황에서 KDB산은금융그룹의 구원으로 2014년까지 3년 간 LPGA 투어 출전을 지원받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받던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US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하며 온국민에게 힘을 불어 넣어줬던 '골프 여제'는 묵묵히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에서 멀어졌다.
같은 시대를 풍미한 캐리 웹이 올 시즌 새롭게 2승을 추가하며 부활을 알린 것과도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박세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 남은 하나의 우승 퍼즐을 맞추기 위해 끝까지 집념의 샷을 날렸다. 과거의 박세리가 죽지 않고 아직도 우승 경쟁을 펼칠 수준으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골프 팬들은 뭉클함을 얻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난해 새롭게 메이저로 승격된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향한 기회는 남아 있다. 박세리의 '아름다운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