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대청봉 정상의 나무들은 모두 거의 기는 모습으로 누워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듯 거대하고 장엄한 나무들은 없다. 웅장한 아름드리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의 만고풍상이 느껴지는 깊은 연륜의 그 키 작은 나무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준다. 나무건 사람이건 몸을 낮춰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의 삶이나 정권을 잡은 권력이나 몸을 낮춘 겸손한 자만이 정상에 머물 수 있다. 대청봉 정상에 있는 나무들은 한결같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면서 몸을 잔뜩 낮추고 있다. 산의 정상은 누구도 오래있게 하지 않는다. 정상을 밟은 자는 반드시 하산해야 한다. 하산할 때도 수많은 계곡 절벽 벼랑이 도처에서 자객처럼 튀어나와 하산길을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은 하산하는 과정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이승만은 4.19민주화시위로 하야했다. 박정희대통령은 산업화에 성공하고 국민들을 가난에서 해방시켰음에도 측근의 배신으로 서거했다. 전두환대통령은 12.12, 5.17, 5.18과 관련해 군사반란, 내란수괴와 광주학살자라는 지독한 편견과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노태우대통령도 비자금덫으로 전대통령과 함께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김대중대통령은 아들 홍삼트리오의 부정부패로 임기말 홍역을 치렀다. 김영삼대통령도 아들 김현철의 직권남용과 인사전횡에다 외환위기로 가장 인기없는 지도자로 전락했다. 노무현대통령은 박연차 뇌물사건에 연루돼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명박대통령도 형 이상득씨의 인사전횡 등으로 상처를 입었다. 박근혜대통령은 최순실게이트로 국회탄핵 후 헌재 파면, 검찰의 뇌물죄 수감으로 치욕을 당했다.
문재인대통령은 5.9대선승리로 정권을 잡았다. 집권초기 과감한 인사와 용인술, 전광석화같은 개혁과제 해결로 국민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50대초반 임종석의 비서실장 임명과 호남출신 이낙연 총리후보자 지명, 광화문 정부청사내 집무실 마련, 야당과의 소통, 조국 서울대교수의 민정수석 기용, 국정원 댓글사건과 박근혜 뇌물혐의를 수사한 윤석렬검사의 서울중앙지검장 전격 임명, 재벌저격수 장하성-김상조의 임명, 공항공사의 비정규직 1만명의 정규직 전환 지시, 국정교과서 폐기,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야당에서조차 신선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우파정권 9년간 은인자중하면서 통치술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이 4대강사업의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요청했다. 벌써 네번째 감사다. 감사원은 정권따라 맞춤형 감사결과를 내놓았다. 노무현전대통령을 수사한 이명박정권에 대한 정치감사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연합뉴스
경제정책에선 갑질해소, 불공정시정, 재벌경제력집중 억제, 정경유착 근절등의 개혁을 위해 최강의 콤비를 기용했다. 김상조-장하성은 문재인정권의 재벌개혁을 견인할 것이다. 기득권세력인 노조개혁도 동반해야 하지만, 일단 재벌개혁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는 검찰개혁에도 관심이 쏠려 있다.
전임 박근혜전대통령이 워낙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한 탓에 문대통령의 개방과 소통행보가 상대적으로 돋보인다.
문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70~80%에 이른다. 야당지지자들도 문대통령의 초기 행보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문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성공해야 한다. 좌파정당 출신이지만,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하나님이 문대통령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다. 국민이 선택한 정권이다. 우파, 좌파를 떠나서 문재인정권이 5년간 국정을 안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문대통령의 거침없는 개혁과 소통은 환영할만하다. 우려되는 점들도 적지 않다. 해묵은 과거사를 마구 파헤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37년전의 헬기 발포의혹을 전면 재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온갖 적폐청산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문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과거사 파헤기치는 4대강사업이다. 최수현 사회정책수석은 22일 4대강사업이 집행과정에서 절차적 결함이 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감사결과 불법행위나 비리가 발견되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검찰수사와 처벌을 예고하고 있다. 4대강사업외에 자원외교비리, 방산비리등도 사정권안에 들어있다. 이명박대통령을 최종적으로 겨냥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문대통령은 최순실국정농단사건에 대한 추가조사와 세월호 사건 재조사도 지시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요청은 심각한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 정책감사가 아닌, 정치감사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노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명박정부의 검찰수사에 대해 마침내 본격적으로 보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이 무겁게 느껴진다. 청와대는 결코 정치보복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해명과 속내는 달라 보인다.
4대강 사업은 숱한 논란을 초래했다. 22조원이 투입됐다. 단일사업으론 건국이래 최대규모다. 환경단체와 야당, 좌파시민단체등에선 극렬히 반대했다. 환경파괴를 초래한다며 비난공세를 높였다. 이명박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임기중 4대강사업을 완료했다.
4대강사업은 대체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공팔과이(功八過二)라고 할 수 있다. 홍수및 가뭄해소, 수자원 확보, 자전거길 등 수변생태계 조성및 관광레저 확충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매년 여름철 홍수 때마다 반복되는 조단위 홍수피해가 사라졌다. 홍수기에 받아놓은 거대한 수량으로 인해 식수및 농업용수 부족현상도 없어졌다. 5천년의 해묵운 국가적 과제를 해결했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2009년 8월 중순 아킴 슈타이어 사무총장이 방한해 4대강사업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UNEP는 보고서에서 13억㎥의 수자원을 확보하고, 홍수관리 능력을 9.2억㎥로 늘렸다고 높은 점수를 줬다. 만성적인 물부족과 홍수예방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고 했다.(이명박대통령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참조) 태국 등 동남아국가에선 4대강개발사업을 수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환경단체에선 여전히 환경파괴, 녹조현상, 큰빛이끼벌레괴담등을 이유로 4대강사업에 부정적이다. 문재인정부에 대거 참여한 환경단체인사들이 4대강 무력화에 나서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유럽 등 선진국의 환경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 것에는 애당초 귀를 기울이지 않는 급진환경단체들이야 도저히 대화가 안된다.
2014년 혹독한 가뭄시 발생했던 큰빗이끼벌레는 녹조현상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큰빗이끼벌레 괴담은 인간광우병 소동과정과 흡사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금처럼 가뭄이 극심한 상태에선 4대강의 보등을 통한 물확보는 식수와 농업용수등에 절대적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4대강사업에 반대했지만, 도내 가뭄해소를 위해 4대강 물을 끌어다썼다.
감사원은 그동안 세 번이나 4대강사업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이명박정부(MB) 시절 2차례, 이명박-박근혜정부 인수 인계기간 1차례 이뤄졌다. MB시절 초기엔 홍수및 가뭄관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인 박근혜정부 정권인수과정에서 감사원은 보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비틀기 시작했다.
이명박대통령(가운데)측은 4대강사업은 유엔환경기구도 높이 평가할만큼 물부족 해결과 홍수예방에 큰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털어도 나올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대통령이 재임중 전두환(왼쪽), 김영삼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해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정부는 본격적으로 4대강사업을 파헤쳤다. 감사원은 사업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추진됐다고 박근혜정권의 지침에 순응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공정위는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현대건설 GS건설 대림건설 등 대형건설사들에 대해 담합 등을 이유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건설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수난을 당하게 했다.
문재인정권의 감사원도 정권맞춤형 감사결과를 발표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미 문재인정부는 4대강사업에 대해 적폐대상이라고 낙인찍어놓은 상태다. 결론은 이미 나있는 듯하다. 독립기관인 감사원이 정권따라 휘둘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민적 불신을 가중시킬 것이다. 검찰이나 감사원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문재인정부는 현재와 미래를 살펴야 한다. 당면 위기 극복과 미래 먹거리씨앗을 뿌려야 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적인 대북제재 공조 강화와 한반도 비핵화에 주력해야 한다. 한반도 운명을 쥐고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주변 4강과의 슬기로운 외교를 통해 북한의 핵을 무력화해야 한다.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의 길도 열어가야 한다.
저성장과 저투자, 고실업 타개를 위한 경제활력 회복, 투자확충과 일자리확충, 중산층 복원, 저출산해소, 사회 안전망 강화도 발등에 불이다.
4차산업혁명 주도권 잡기위한 과감한 규제개혁과 선제적 투자, 청년일자리창출과 비정규직 해소를 위한 노동개혁과 공기업 혁신도 역점과제다. 미래를 위한 개혁과제를 추진하는 것도 벅차다.
국가적 중대현안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과거파헤치기로 행정력과 정치감사, 검찰의 손보기수사에 힘써야 하는 가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다. 미래보다는 과거청산, 정치보복등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노무현정부는 수십개의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과거정권을 모조리 반칙과 특권의 시대로 매도한채 청산작업에 매달렸다. 국민들은 사분오열됐다. 국론갈등과 분열은 극심했다. 이념과잉적 과거사 들추기는 노무현정권의 조기 레임덕을 부채질했다.
4대강사업은 여름철 홍수피해 예방과 수자원확보, 수변 생태계조성및 자전거도로및 관광명소 다양화 등에서 성공한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건설과정에서 빚어진 일부 환경파괴 논란도 없지 않았다. 일부 보와 강등에서 보이는 녹조현상은 가뭄기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4대강사업을 안했다면 지금같은 극심한 가뭄상황에선 녹조가 심화했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된다. /연합뉴스
정권마다 과거정권 손보기,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후진적인 구태는 청산돼야 한다. 미래로 나가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솔선수범해서 역대정권과 화해를 한다면 국민들의 우렁찬 박수를 받을 것이다. 관용과 포용의 정권으로 길이 빛날 것이다.
노전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은 이명박정부가 정권의 주구 검찰을 동원해 가혹한 정치보복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김영삼정부도 자신의 3000억원대 비자금스캔들 국면을 돌파하기위해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을 5.18특별법이란 위헌적 법률로 단죄했다.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미명하게 치졸한 정치보복을 벌였다. 역사바로세우기가 아니라 역사후퇴였다.
박근혜정부도 이명박정권인사들을 전방위로 괴롭혔다. MB정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효성, 포스코, 롯데등이 국세청 세무조사, 총수 구속과 임직원 줄소환등의 집중적인 수난을 당했다.
문재인정부가 다시금 과거 우파정권 청산에 매달리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문재인정권은 이미 승자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출범했다. 승자의 여유와 관용을 가졌으면 한다.
과거정권 털기에 나선다면 차기정권에서 똑같은 정치보복을 당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문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보수를 불태우겠다고 했다. 국민들은 섬뜩했다. 선거막판에는 대화합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대통령 취임이후에도 야당과 소통하는 등 통합과 광폭정치를 했다.
돌연 보수정권 파헤치기로 돌아서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보수정권을 적폐대상으로 처단한다면, 문재인정권도 차기정권에서 적폐정권으로 똑같은 보응을 받는다. 국정지지율 70%대의 고공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돌연 정치보복극으로 국정을 유턴하는 것은 퇴행적이다.
대청봉 정상의 나무들은 한결같이 기는 것처럼 낮게 누워있다. 정상에 오를수록 낮아져야 한다. 권력을 잡았다고 오만하면 민심이 금새 떠난다. 정권을 실은 배는 금새 뒤집어진다.
청와대에 들어서는 순간, 거센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려온다. 5년이면 어김없이 하산해야 한다. 산을 내려오는 과정에서도 온갖 지리밭을 지나야 한다. 승자의 관용과 아량이 절실하다.정치보복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끊었으면 한다. /이의춘 미디어펜대표
[미디어펜=이의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