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기자]지난달 열린 사채권자집회를 통해 통과한 대우조선해양의 채무조정안이 한 개인투자자의 재항고로 난항에 직면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다동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사채권자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사채권자 집회에 대한 법원의 인가 결정에 개인투자자가 항고했다가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했으나, 이에 투자자가 대법원에 재항고를 한 것이다.
이 투자자의 재항고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은 25일 이사회에서 결의할 예정이었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의’ 안건의 처리 등 채무조정과 관련된 모든 일정을 잠정적으로 연기하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17일과 18일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회사채 만기연장 등 99%에 달하는 찬성률로 채무조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관할법원인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21일 채무조정안을 인가했고,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를 보유한 투자자 1명은 절차상의 하자 등을 이유로 27일 즉시항고를 했다.
이에 대해 부산고등법원은 사채권자집회 결정에 하자가 없어 항고 이유가 적절치 않다고 5월10일 기각 결정을 냈다. 그렇지만 이 투자자는 이에 불복하고 재항고 마감일인 24일 대법원에 재항고를 했다.
항고를 낸 이 투자자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에 30억원 가량을 투자했으며, 항고를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시장에서 매입한 보유 회사채를 액면가로 변제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모든 투자자들이 손실 분담을 하는 상황에서 특정인에 대한 변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신속한 채무조정이 모든 투자자들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조를 요청했지만 이 투자자는 거부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재항고로 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안의 인가 확정과 재무구조 개선 일정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당분가 미뤄질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에 대해 채무조정에 적극 동참한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영업 및 건조 활동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쓴다는 계획이다.
또 채권단과 협의해 대법원 판결 전에라도 할 수 있는 모든 절차를 준비해 최대한 신속하게 채무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한명의 투자자로 인해 대우조선 정상화에 동참한 투자자는 물론 수많은 근로자와 협력업체에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재항고 건이 신속하게 마무리돼 채무조정이 조기에 차질 없이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다동 대우조선해양 건물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온 모습.
업계는 대법원이 이 개인투자자의 재항고에 대해 기각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대법원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2개월이 넘는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이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대우조선해양의 출자전환과 10월로 예상됐던 주식거래 재개 시점이 순차적으로 밀릴 수 있다.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은 애초 회사채 투자자에 대한 채무 재조정 절차를 모두 완료한 뒤 신규자금 지원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이번에 개인 투자자가 법원의 인가 결정에 항고하면서 절차는 지연되고 있다.
법원이 회사채 50%를 주식으로 바꾸는 내용의 채무 재조정 절차가 타당하게 진행됐는지 검토한 뒤 인가를 내주고, 인가 후 일주일간 투자자의 반발이 없다면 채무 재조정 안의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은 일단 출자전환과 관계없이 대우조선해양에 이달 말 신규자금 지원을 시작하고, 국책은행·시중은행의 출자전환부터 먼저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국책은행·시중은행이 들고 있는 2조1600억원 규모의 무담보채권을 모두 출자전환하면 대우조선해양 재무제표를 6월 말까지는 개선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회사채 8000억원 가량을 마지막으로 출자전환해 9월 말까지 부채비율을 300% 가량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때 주식거래 재개를 위한 토대가 마련된다.
산업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항고로 대우조선해양의 자율적 구조조정 절차가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신규 유동성 지원은 상황 변화를 지켜보면서 판단할 사안이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이번에 대우조선해양에 신규자금 5000억원을 투입키로 했는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지난 3월 신규 지원하겠다고 밝힌 자금 2조9000억원 가운데 첫 투입분이다.
이번 신규자금은 ‘마이너스통장’ 형태로 제공되는 것으로, 대우조선해양이 자구노력으로 부족자금을 충당한 뒤 그래도 모자라는 돈만 꺼내 쓰는 방식이다. 선박 인도대금이 들어오면 바로 돈을 갚아야 하는 구조다.
2015년 10월 지원이 결정된 1차 자금 4조2000억원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로, 남아있던 3800억원이 지난주 초 전액 집행돼 2차 신규자금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규자금은 대우조선해양이 배를 짓는 데 필요한 철판 등 기자재 구입, 하청업체에 대한 대금 지불, 인건비 등으로 쓰이게 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에 이달 말까지 부족자금 5000억원 가량이 발생하기 때문에 신규자금 지원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자구노력으로 부족자금 규모를 더 줄이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