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올해 9급 국가공무원 최종선발 인원은 4910명이다. 지난 23일 인사혁신처가 사이버국가고시센터를 통해 발표한 필시시험 합격자는 6894명이다. 지난달 8일 치러진 필기시험 원서 접수자는 22만8368명이었다. 이중 시험 응시자는 17만2691명이었다. 최종 합격관문까지의 경쟁률은 35.2대 1이다.
지난 2월 16일 온라인 취업 사이트 사람인이 대학생, 구직자, 직장인 등 성인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대학생의 58.3%, 구직자의 51.4%가 공무원시험 응시 의사를 밝혔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즉 공시생 공화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일성은 일자리 만들기였다.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81만 개, 비정규직 제로(0)’라는 공약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태다. 박근혜 전 정부에서 심혈을 쏟았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도 폐지로 방향이 틀리고 있다. 공무원에 이어 철밥통인 공공기관으로 취준생이 몰려들게 뻔하다.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 1호는 국가일자리위원회 구성이었다. 이은 후속조치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매일 실시간으로 경신되는 18개의 지표를 점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상위 10대 그룹, 혹은 30대 그룹의 일자리 동향을 개인기업별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이 민간기업의 팔을 비트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취준생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기를, 노동 개혁없는 '철밥통'의 대한민국을 꿈꾸는 희망고문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일자리를 위해 전방위로 팔을 걷어 부친 것은 백번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공공기관 일자리 늘리기와 성과연봉제 폐지는 철밥통을 더욱 양산시킨다. 공무원 시험을 목을 매는 공시생 공화국에 기름을 붙는 결과가 우려된다.
청년 일자리 부족은 민간 일자리가 없어서라기보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임금 격차, 불안정한 고용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는 한계성이 있다. 공공기간 일자리 확대 중심정책은 민간으로 유입될 일자리를 공공부문으로 유인하는 부작용도 따른다. 결국 민간 일자리의 환경 개선을 통한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없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의 창출 주체는 민간기업이며 이를 위해서는 규제 개혁과 노동유연성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대통령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만든 억지 일자리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개별 고용 성적표를 매일 감시에 시달리는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은 채용을 늘리고 비정규직도 줄일 것이다. 민간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고 노동 생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창출된 일자리가 아니다. 억지 춘향식 일자리는 결국 일자리 질과 고용을 악화시키는 부메랑이 될 우려가 높다.
위험 요인은 또 있다.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폐지의 파장도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우려된다. 공공기관 수는 2012년 286개에서 2017년 현재 332개로 5년새 46개가 늘었다. 5년간 지원된 세금도 40%가 늘었다. 이들 공공기관의 3분의가 적자이거나 수익금이 제로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은 그야말로 취준생에게는 꿈의 직장이다. 노동유연성이 낮아 이직 걱정 없는데다 적자여도 높은 급여는 꼬박꼬박 챙긴다. 방만경영의 꼬리표를 늘상 달고 다녔다.
공무원 사회와 공공기관 개혁은 과제중 과제다. 그나마 성과연봉제는 개혁의 첫걸음이다.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지화는 정부 시책에 충실했던 기관일수록 후유증이 크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120개 기관 중 노조동의를 거치지 않은 일부 기관은 물론 노사합의로 도입했던 기관마저 폐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무원 수 확대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는 '철밥통'의 탑을 더욱 높이 쌓는 것이다. 모든 취준생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공무원의 공무원에 의한 공무원의 국가'가 우려되는 이유다.
세계 각국은 일자리 창출은 민간 기업이라는 점과 노동·규제 개혁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할 즈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8개 노·사단체와 8시간에 걸친 1 대 1 면담 강행군을 하며 노조 대표들에게 "저성장에서 빠져나오려면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간곡히 설득했다.
일본은 도처에 '국가전략 특구'를 지정해 드론과 원격의료 등 신사업을 자유롭게 시험하고 있다. 신사업 투자 때 규제를 일시 정지하고 모래밭처럼 뛰어놀 수 있게 한 '규제 샌드박스' 제도까지 도입했다. 중국은 7년간 약 33조 원을 투입해 블록체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산업법과 규제프리존이 국회에 계류된 채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혹여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이 민간기업의 팔을 비트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취준생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기를, 노동 개혁없는 '철밥통'의 대한민국이 꿈꾸는 청년들에게 희망고문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