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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후보자 서훈의 잘못된 선입견이 문제다

2017-05-29 10:1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석 주필

역시 그는 알쏭달쏭한 사람이 맞다. 신임 국정원장으로 적합한 인물인가도 쉬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다. 29~30일 열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서는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얘기인데, 자유한국당이 검증하겠다고 벼르는 애매한 대북관-안보관 문제에다가 결정적으로 그가 국정원 개혁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게 새삼 밝혀진 탓이다.

지금까지 그의 성향을 가늠케 해주는 실마리는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서면답변이다. 이 답변에서 서훈은 "취임하면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그것부터 실수다. 그 사건의 실체란 대선 불복투쟁의 일환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도 재조사를 하겠다는 건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그것 외에 그가 말하는 "국민 신뢰를 잃게 만든 사건'의 목록에도 우린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일테면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했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의 수사 개입이 있었다"는 폭로, 2015년 국정원이 비밀리에 이탈리아에서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논란 등이 그 일부다.
 
대한민국 무장해제, 국정원 무력화는 안돼

터놓고 말하자. 상식과 균형감각을 가진 이의 눈에 그런 논란-의혹이란 대한민국 무장해제와 국정원 무력화를 겨냥한 삼류 정치공세에 다름 아니었다. 그럼에도 재조사하고, 그런 방향에서 국정원을 개혁하겠다고? 그런 발언은 '국정원 맨' 서훈답지 않다. 즉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추겠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는 "국정원 직원들이 부당한 불이익을 받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발언도 의구심이 피할 수 없다. 좌파정부 1기인 김대중 정부는 취임 직후 노련한 수사요원을 포함한 대공-대북 핵심요원 500명을 내쫓지 않았던가? 그 자리를 특정지역 출신자 등으로 채워 국정원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다는 것도 더 이상 비밀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에도 그 빈자리가 복구 안 돼 국정원의 과거 전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판에 서훈의 그 발언은 우릴 거듭 놀라게 만들 뿐이다. 다만 위로가 되는 대목이 없지 않다. 정보위 서면답변에서 서훈이 나름 소신발언을 한 대목이 희망적이다. 일테면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했던 '국내 정보분야 폐지'에 대해서는 요즘 시대에 국내-국외를 나누는 구분 자체가 쉽지 않다고 그는 응답했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취임하면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국정원장은 정권이 바뀐다고 코드를 맞추는 자리가 아니다. 사진은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후보 지명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거공약과 별도로 향후 탄력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뜻인데, 그게 백 번 옳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동시에 그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개진해 우릴 안심시켰다. "북핵 해결의 결정적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때"에 한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다만 그게 진정한 소신인지 아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서훈이 그렇게 정치적 편향으로 가득한 사람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북한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그 역시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때문에 서훈은 지금으로선 깊은 우려와 부분적 희망이 엇갈리는 논란 속의 인물인데, 차제에 국정원 개혁의 방향을 그에게 재확인해주고 싶다.

"북한이 겁내는 쪽으로 국정원 강화를"

즉 "취임하면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부터 실수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실은 이 중요한 국가정보기구의 개혁은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십 수년 국정원 개혁은 이관하고, 폐지하고, 분리하라는 으름장이 거의 전부였다.

대공수사권을 검찰-경찰로 이관하라는 완전 헛소리, 국정원 자체를 없애는 게 좋다는 묻지마 폐지 주장, 그리고 국내정보-해외정보를 분리하라는 이상주의적 원칙론까지 실로 분분했다. 그건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잘못된 진단과 처방일 뿐이다. 무자격 의사에게 고도의 신경조직 수술을 맡기는 바보짓이란 지적(한희원 지음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21쪽)이 맞다.

대공수사권은 통일 이전까지는 외려 강화되는 게 옳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북한이 가장 싫어할 방향으로 국정원을 강화하는 게 개혁의 요체"라는 게 그 책의 저자 한희원 박사의 발언이니, 이점 서훈 후보자는 물론 대북안보관에서 여전히 걱정인 문재인 정부가 곰곰 새겨보길 바란다.

또 하나 남은 문제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에 대한 걱정인데, 이 문제도 좀 큰 틀에서 접근하길 바란다. 즉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근절하려면 국정원장을 일반 정무직 장관처럼 정치적 책임을 물어 흔들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게 요체다. 고작 1~2년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와 상관없이, 일테면 7년 책임근무를 하게 하는 걸 검토해볼 시점이 지금이다.

반복하지만 국정원장은 정권이 교체되면 당연히 내 심복을 꽂아놓는 자리가 아니다. 또 지난해 발 어떤 얼치기 좌파 문화평론가의 주문대로 정치보복을 일삼는 사냥개는 더더욱 아니다. 정치대란, 천하대란의 와중에 국정원은 더욱 더 중요한 대한민국의 중추신경 조직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조직은 보호받는 쪽으로 강화되어야 옳다는 걸 재확인한다. 오늘, 내일 서훈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이런 방향에서 진행되길 바란다. 그리고 혹시 서훈이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지나가는 국정원장'이 아니고 흔들려온 대한민국 정체성을 제대로 지켜주는 조직개혁의 수장(首長)으로 기억되길 우린 기대한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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