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이다. 11월 14일이 그날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서 사망일인 10.26 대신 탄생일을 기리는 새 전통을 세운 것도 몇 해 전부터다. 이 뜻 깊은 해는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혁명과 함께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부국혁명의 공과 과를 기리는 특별한 성찰의 기간임은 물론이다. 놀랍게도 며칠 전 조선일보가 느닷없이 박정희 공격의 포문을 열어 우릴 놀라게 했다.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의 변호인 인터뷰로 한 면 가득 채웠는데, 내용도 최악이다. "10.26이 없었으면 박정희 말년이 추했다"는 억지인데, 좌익매체 '민중의 소리'에나 어울릴 악의적 선동이다. 이런 게 현대사의 큰 이름 박정희에 대한 조선일보의 수준일까? 조선일보 지면의 타락은 정말 회복불능인가? 그 점검과 함께 박정희 탄생 100돌의 진정한 의미도 되새겨 본다. [편집자 주]
[연속칼럼]-올해는 박정희 탄생 100돌…긴급점검 두 가지<하·끝>
며칠 전 조선일보의 박정희 때리기와 김재규 찬양에 앞선 지난해 말부터 반(反)박정희 히스테리는 고약한 사회 흐름의 하나였다. 그건 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생겨난 불똥이겠지만, 한국적 고질병의 재발인 것도 분명했다. 박정희 동상-생가에 대한 잇단 테러와 함께 탄생 100돌 행사를 우상화라고 주장하는 언론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테러 중 대표적인 게 12월 초 경북 구미 박정희 생가에 대한 방화다. 전에 없던 대담한 공격에 생가 추모관이 모두 불탔다. 그 한 달 전엔 생가 입구 박정희 동상이 페인트 테러를 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박근혜 정부 초기 등장했던 귀태(鬼胎) 발언도 반 박정희 히스테리의 전주곡이다.
당신은 혹시 '백년전쟁'의 포로?
당시 민주당 원내대변인 홍익표가 박정희를 두고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란 뜻이라며 그런 망발을 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5.9 대선에도 일정한 영향을 줬음은 물론이다. 일테면 예비주자 안희정은 출마선언문에서 "더 이상 옛날에 머물지 맙시다. 박정희 시대와 결별합시다"라고 했다. '박정희=낡은 시대'등식은 문재인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세력과, 독재세력의 뿌리인 친일을 청산하지 못해 우리는 지금까지 박정희 체제 이후의 적폐를 겪고 있다"(1월 15일 발언)는 게 그의 인식이다. 안타깝다. 한강의 기적을 선물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이 이렇게 곡해와 악의로 얼룩지고 있다니….
우리는 언제까지 현대사 유령과의 싸움을 반복해야 하나? 이 나라에서 이승만 건국혁명과 박정희 부국혁명을 빼면 뭐가 남는다고 이 소동일까? 한국인은 앞 세대에 고마운 걸 고맙다고 표현하기는커녕 거꾸로 박정희 때리기에 열중하는데, 그걸 뒤에서 조종하는 음험한 손도 있다. 그게 누구이겠는가. 대한민국 무력화를 겨냥한 좌익의 음모다.
그들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주타격 대상의 하나가 건국 대통령과 부국 대통령이라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 둘에 대한 악선전의 끝판왕이 5년 전 등장했던 동영상 '백년전쟁'이었다. 그 허위날조된 영상물이 심어주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승만은 하와이 갱단 두목이며, 박정희는 미국 주도의 경제개발 공을 가로챈 다가키 마사오라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인식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피에 젖은 무덤’인데, 친일파 반대세력이 전개한 정의로운 전쟁이 묵사발 난 탓이다. 북한? 그건 대한민국과 달리 가난하지만 숭고한 체제라는 게 저들의 붙잡고 있는 요지부동의 도그마다.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은 우남 이승만 초대 건국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토대를 쌓고 박정희 대통령이 시장경제를 일으켜세웠다.
세계은행이 공인한 박정희 경제 성적표
거의 유사(類似)종교에 가까운 교리문답의 수준인데, 그걸 우습게보지 말라. 당신이 혹시 이승만과 박정희 하면 냉소부터 보내는 헛똑똑이의 한 명인가? 그렇다면 ‘백년전쟁’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 패거리가 노린 역사주술에 걸려들었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어려선 전교조 교육에 멍들고, 졸업 이후엔 편향된 미디어에 사로잡혀왔던 당신이 '백년전쟁'의 덫에 걸려드는 삽시간이다. 그런 집단착란이 히스테리로 발전하고 끝내 정치세력화된 게 지금이다. 적폐청산 깃발 아래 자해(自害)의 행진을 거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과는 무섭다. 현실정치는 촛불민주주의로 치닫고, 경제는 포퓰리즘에 물들었다. 국제감각은 자폐적 민족 나르시즘에 빠져 구한말의 친중 사대주의로 회귀했다.
지난 세기 세계를 놀라게 한 신데렐라 국가 대한민국의 추락은 이토록 참담한데, 상당 대목은 박정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혼선-갈등 탓이다. 사실이다. 그의 돌연한 퇴장 이후 한국사회는 '박정희 반대로'를 개혁이라고 믿고 40년 가까이 달려왔는데, 그게 문제다.
그게 과연 옳았는지를 물을 때가 지금이다. 우선 경제를 보자. 1960~70년대는 물론, 그 힘으로 굴러갔던 1980년대까지 우리는 성장-분배 모두 세계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걸 세계은행이 공인(1993년)했다. 세계 40여개 주요국의 1965년~85년 경제를 살펴본 결과 고성장과 빈곤퇴치 그리고 동반성장을 동시에 경험한 건 한국이 유일했고, 최고였다.
그 시절 우린 가난한 사람은 부자 되고, 부자는 더 큰 부자로 올라섰다. 빈익부 부익부다. 황당하게도 이후 우린 실패국가로 가길 작심했다. 박정희 반대로를 고집해 그걸 87년 헌법에 넣었다. 경제민주화의 깃발 아래 지금 우린 균형발전-균등소득분배란 구호에 홀려 산다. 결과는 재앙이다. 저성장에 양극화와 청년실업…. 그럼에도 경제민주화를 더 해야 한다고 법석이니 정말 한국적 고질병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 2017 특별기획전 '잘 살아보세-희망과 도전의 시간들'의 개막식이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렸다./사진=미디어펜/사진=미디어펜
실시구시 차원의 박정희 재평가를
이 와중에 정치도 바뀌었다. 87년 체제 이후 자리 잡은 비효율과 공권력의 약화 그리고 국가 권위의 추락을 우린 민주화의 과정이라고 애써 찬양해왔다. 하지만 민주화 외피를 쓴 반체제 세력이 힘을 쓰는 걸 외면한 결과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까지 흔들리는 중이다.
예전엔 경제의 효율성이 우선시됐다면, 지금은 정치가 경제를 찍어 누르면서 국가이성의 소멸단계까지 밀려왔다. 박정희 시대의 매카니즘을 모른 채 그걸 관치경제-재벌경영-정경유착이라고 손가락질하다가 끝내 망조가 드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손쉬운 처방이 없다. 다만 대한민국의 갈림길에서 이젠 진실을 말해야 한다.
마침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서 지난해 이맘 때 첫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는데, 제목이 '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였다. 내 눈에는 최고의 캐치프레이즈이자, 올바른 현대사 인식을 함축한 문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게 엄연한 진실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불가(佛家)의 말이 맞다. 진영논리를 떠나 실시구시적 박정희 재평가만이 박정희를 살리고,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원한다는 진실을 오늘 새삼 재확인한다. 이걸 모른 채 다시금 미망과 앙앙불락 속에 집단착락을 거듭한다면? 유감이지만 그 경우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지 않을까? /조우석 주필
박정희 시대 18년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집중적인 공격 표적이 되는 시기는 1972년 10월 17일부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암살당했던 날 까지 지속된 소위 유신체제라는 시기다./사진=박정희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잡지 '박정희정신-미래 100년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 2017 1~2월 창간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