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한 달이 채 안 돼 한미관계가 이렇게 삐걱댈 줄은 미처 몰랐다. 빨라도 너무 빠르고, 내용도 석연찮다. 사드 발사대 6기(基)의 전개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양국관계에 불신을 초래한 것은 물론 위태롭던 한미동맹에 상처를 입힌 결과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일반의 관측보다 칼을 훨씬 일찍 뽑아들었고, 미국의 조야는 기왕에 품어왔던 한국정부에 대한 우려-불신이 현실화됐다고 판단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워싱턴은 대북 압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데, 한국정부가 초장부터 엇박자를 냈다고 보는 것이다. 걱정은 그게 친북-친중(親中)의 속내를 감춘 자주외교의 깃발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청와대 발(發) 사드 논란은 타이밍도 안 좋다. 불과 며칠 전 우리는 6월 말 한미정상회담 개최 소식에 환영의 뜻을 표했는데, 당시 양국이 한미동맹을 재확인하고 북핵 완전폐기 원칙에 합의했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안 돼 벌어진 사드 논란은 결국 동맹관리에 흠집을 낸 사건이다.
외교안보 막후실세인 自主派 인맥
문 대통령이 사드 논란이 국내적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파장은 작지 않다. 딕 더빈 미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가 "사드 배치비용 9억 달러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예고탄이다. 벌써부터 미국은 예의 주시해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장차관 중 이른바 자주파로 분류되는 이들이 한국 새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막후 실세로 포진한 것부터 우려해왔다.
그건 결국 문 대통령의 이른바 자주외교의 실체에 대한 의구심인데, 일리가 있었다. 자주파의 한 명인 정세현 전 통일장관은 "사드 배치는 미국 패권을 위한 것"이라는 망발을 올 초 중국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했던 위인이다. 또 다른 막후실세 이종석도 그렇다.
문재인졍부가 사드 반입 누락문제를 정치쟁점화하면서 미국 정치권은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사드철수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미동맹 균열과 사드철수, 주한미군 감축등의 우려도 제기된다. 사드를 정치쟁점화하는 것은 안보와 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연합뉴스
그는 노무현 정부 초기 시절부터 미국이 "탈레반"으로 지목했던 사람의 하나다. 일테면 당시 리처드 알렌(레이건 대통령 안보보좌관)은 "한국의 고위인사(이종석 지칭) 중 우리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미관계가 썰렁해진 것은 그 무렵인데, 당시 한미연합사는 겉돌았고, 주한미군 부분 철수 소식도 나돌았다.
일테면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경우 한국 측 파트너들에게 미군 부분철수 가능성을 대놓고 언급했던 게 당시 분위기를 반영한다.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 이양문제를 제기하자마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당신들이 원하면 빼겠다"는 식의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한미관계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언급한 게 조지타운대 빅터 차 교수의 절망적 진단이었음을 염두에 둬보라. 그건 2003년 미국을 방문했던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전했던 워싱턴의 공기였다. 그걸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어렵게 되돌렸고 한미관계는 정상화됐는데, 새 정부 들어 다시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문 대통령이 뛰어든 사드 논란만이 아니다. 신임 국정원장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햇볕정책을 실무적으로 조정했던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을 앉힌 점, 또 다른 외교안보 라인의 막후 실세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를 통일외교안보 특보로 임명한 각종 인사도 그렇다. 결정적으로 문 대통령이 1일 밝힌 남북경제공동체 구상이야말로 햇볕정책 시즌2를 예고했다.
미국 철수-보안법 폐지-연방제 통일?
외국 역할에 기대지 않고 한반도 문제는 대한민국이 주도하겠다는 것이고, 그걸 위한 "대담한 실천"을 선언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는 쉽게 가늠된다. 한미동맹과 거리를 두기 위해 노무현이 내세웠던 균형자 외교론을 부활하겠다는 의미라는 걸 세상이 다 안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인데, 일테면 서훈 국정원장이 내정 직후 밝혔던 남북정상회담 1~2년 내 조기추진이 예상된다. 이 경우 주한미군 부분 철수는 아니더라도 국제법상의 위상 변경 시도도 내다볼 수 있다. 실제로 2000년 6.15 선언 때 김대중-김정일은 주한미군이 북한에 우호적인 군대로 바뀔 경우 통일 이후에도 주둔할 수 있다는 식의 얘길 나눴다.
남북경제공동체 출범이 새 정부 뜻대로 될 경우 국가보안법 자체도 손상될 수밖에 없으며, 연방제-연합체 통일 얘기로 바로 건너뛸 수도 있다. 이 모든 건 보수우파가 가장 우려해오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시화되는 걸 뜻한다. 물론 단박에 위헌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국민적 합의 없이 헌법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국체(國體) 변경 혹은 레짐 체인지(체제 변경)을 새 정부가 임의로 시도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인데, 그 경우 큰 논란과 국론 분열을 피할 수 없다. 의문은 또 있다. 좌파 정부 1기인 김대중 정부는 임기 중후반에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노무현 정부는 임기 최후반에 들어서야 그걸 성사시켰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 1개월이 채 안 돼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며 "대담한 실천"을 말하는 건 무슨 의도인가? 대중적 지지가 클 때 무언가 큰 그림을 밀어붙이자는 속내는 아닐까? 문제는 그게 1950년 이후 대한민국을 떠받쳐온 한미동맹, 국가정체성에 준하는 외교안보적 장치를 형해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것일까?
이 글 앞에서 밝힌 대로 최대 걱정은 그게 친북-친중(親中)의 자주외교 깃발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문제는 그게 국내 정치를 떠나 동북아질서를 바꾸는 결정적 변화라는 것이다. 그 중요성을 감안해 우리 지혜를 모으는 글을 이 지면에서 여러 차례 내보낼 생각이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