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왜 10년 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지상파 방송의 행태를 까맣게 잊고 있는가? 당시 해방구로 돌변한 방송은 뉴스-제작-드라마 전 부문에 걸쳐 좌편향 프로를 쏟아냈다. '기울어진 운동장'대한민국의 이념지형도 그 영향 때문인데, 지금 위험천만한 방송을 재연하려는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다. 우선 KBS, MBC 사장 찍어내기로 방송가와 정치권이 시끄럽다. 걱정이다. 전 정부 때 합법적으로 임명된 공영방송CEO를 끌어내린 뒤 좌파정부 시절의 나팔수 노릇을 재현하자는 것인가? 그게 국가정체성을 해치는 선동방송으로 치달을 경우 이 나라는 어찌 되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여야 5당 원내대표와 방송개혁을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는데, 지금은 집권여당의 일방독주다. 연속칼럼 '방송개혁인가, 방송장악인가'를 상·하 두 차례로 나눠 내보낸다. [편집자 주]
[연속칼럼]-방송개혁인가, 방송장악인가 <상>
저들은 참 일사분란하다. 새 정부 출범 1개월 내외인 지금 집권여당은 이른바 방송계 적폐청산의 시동을 걸었는데, 신호탄은 민주당 의원 홍익표가 쏘아 올렸다. 그는 8일 김장겸 MBC사장 사퇴를 돌연 요구했다. 취임 4개월밖에 안 되는 공영방송 CEO를 물러나라는 압박이다. 그 바턴을 이어받아 민주당 대변인 김현은 이튿날 고대영 KBS사장 사퇴 문제를 제기했다.
사퇴의 명분으로 들고 나온 6년 전의 그 무슨 도청의혹이라는 것인데, 심히 억지스럽다. 청와대는 짐짓 뒷전에 물러선 모양새이지만, 그것만도 아니다. 집권여당 민주당과 함께 저들은 방송권력 탈환을 위한 교두보를 솜씨 좋게 마련해놓은 바 있다.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방통위를 단숨에 장악해버린 것이다. 즉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으로 임명했던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명한지 두 달 만에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으로 승진발령했다. 시끄럽게 사람을 잘라내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대로 방통위원의 수적 우위를 확보했으니 이제부턴 마구 달리겠다는 얘기다.
여기에 손발을 맞추는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와, 방송사별 노조 움직임은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다. 우선 민노총 핵심세력인 전국언론노조가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를 선언했다. 동시에 산하의 MBC본부노조도 "우리가 들고 일어나 (사장-이사장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행동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지상파는 사회갈등의 최전선
가히 전면공격 양상인데, 오죽했으면 MBC가 지난 5일 회사 차원의 성명서를 통해 그런 발언이야말로 청와대 지침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 반격을 했을까? 그와 동시에 진행되는 KBS 사장 끌어내리기도 조직적이라서 KBS본부노조는 사장-이사장 퇴진을 묻는 사내 여론조사를 12일 발표한다. "사장 즉각 퇴진"에 찬성하는 사원이 27%밖에 안돼 동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래도 강행할 태세다.
이 와중에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적이 모처럼 마음에 들었다. 그는 7일 원내대책회의서 이렇게 지적했다. "문모닝식 아첨 뉴스를 보낸다고 국민이 현혹되는 시대는 지났다." 단 안타까운 건 자유한국당의 미디어 문제에 대한 인식이 과연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도 보수정권에 적대적인 언론환경을 정상화 못한 탓인데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또 한 번 뒤집는 지금의 과정을 저지할 능력이 저들에겐 없다. 기댈 건 방송장악의 표적이 된 두 지상파의 버티기와, 국민여론이다. 이참에 상식을 재확인해보자면, 공영방송 사장-이사장-이사진이란 다른 기관장의 경우와 또 다르다.
그들은 방송법을 통해 임기(3년)을 보장받는데, 그건 정치권력으로 자유로운 공공성을 담보하는 최종장치의 하나다. 다른 공공기관장들은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물갈이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공영방송은 그럴 수 없다. 인위적 인적청산 자체가 방송장악 음모다.
방송의 적폐청산 구호도 동의 못한다. 좌파정부 시절 최악의 선동방송이던 MBC는 애국방송으로 거듭났고, KBS는 흔들리던 국가기간방송 역할에서 벗어나 정상화의 초석을 어렵게 마련했다. 그게 진실이다. KBS-MBC가 적폐라는 주장은 전교조-금속노조와 함께 민노총 산하 산별노조의 핵심세력인 언론노조다운 정치적 목소리에 불과하다.
새 정부 출범 1개월 내외인 지금 집권여당은 KBS, MBC 사장 찍어내기로 방송가와 정치권이 시끄럽다. 전 정부 때 합법적으로 임명된 공영방송CEO를 끌어내린 뒤 좌파정부 시절의 나팔수 노릇을 재현하자는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
KBS-MBC가 적폐라는 건 완전 억지
냉정하게 말해 정치적 편향을 가진 언론노조의 존재 자체가 공영방송과는 어울리지 않고, 때문에 방송법 위반 혐의마저 있다는 걸 새삼 지적하고 싶다. 마침 조선일보도 사설(6월10일)을 통해 "방송에 정치가 개입하면 그 방송은 변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백 번 맞는 소리이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표피적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대선기간 문재인 후보는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고 했는데, 공영방송 두 CEO를 찍어내기란 그에 따른 후속조치인가를 물어야 한다. 정말 두려운 건 새 정부가 10년 전 해방구 방송 재현을 할 경우 재앙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게 국가정체성을 해칠 때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다.
노파심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지상파의 행태를 우린 뚜렷이 기억한다. 당시 방송은 뉴스-제작-드라마 전 부문에 걸쳐 좌편향 프로를 쏟아냈고, 그게 한국사회의 지식-정보를 결정적으로 오염시키고 말았다.
MBC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KBS 현대사드라마 '서울 1945'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반(反) 대한민국 성향을 드러내 섬뜩했다. 당시 KBS-MBC 두 공영방송은 심각하게 방송의 본령을 이탈했다. 지금의 KBS-MBC는 그런 흑역사를 겨우 벗어난 상태인데, 그때 그 시절의 '도로 나팔수 방송'으로 돌아가자고? 그건 안 된다.
여기 나팔수 방송의 과거를 증언해주는 훌륭한 보고서가 있다. 그게 4년 전 나온 단행본 <좌파방송 10년 방송은 이런 짓들을 했다>(최도영-김강원 공저, 비봉출판사)이다. "위장 민주언론 세력에 의한 국가정체성 부정"을 고발한 그 책은 당시 현장 종사자의 기록이다.
다음 회 칼럼에서 그 내용을 복기해보며 반면교사로 삼으려 하는데, 반복하지만 지금 상황은 좌파정부 1~2기 시절보다 안 좋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이념은 유사(類似)좌파로 분류되지만, 새 정부는 정치-경제에서 외교안보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노선에 가깝고, 게다가 교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여당과 행정부가 질주하고, '장악당한 지상파' 두 곳이 덩달아 난리치면 나라는 어찌될까?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연합제 통일로 이어지는 남북정상회담이 올해 말, 내년 초 조기에 이뤄지고, 지상파 두 곳이 맞장구를 치고 나온다면 결과는 아찔하다. 대한민국을 위한 방송이냐, 국가정체성을 침해하는 나팔수 방송이냐. 그것이 문제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