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홍샛별 기자]우리나라 헌법 제27조 4항에는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른바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상위 법인 헌법에 명시된 사항이기에 국민 모두에게는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법치주의 실현 최선봉에 선 법조인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70일 넘게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지켜본 결과, 특검이 기본 중에 기본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재판 초기까지만 해도 특검은 유죄를 입증할 '결정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자신했다. 이 부회장의 재판이 특검과 삼성 변호인단의 첨예한 대립으로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1심 선고까지 약 두 달 가량 남았지만 직접 참관한 이 부회장의 공판은 '세기의 재판'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다.
특검은 재판 중반부를 지나도록 어떠한 '결정적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온갖 추측과 억측만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정황상", "그럴 것이다" 등 실제 특검이 재판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달 2일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오는 증인신문 역시 특검의 '끼워 맞추기식' 수사 의혹만 키우는 형국이다.
특검은 증인에게 '그럴 것이다'라는 식의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으로 재판부의 지적을 받는가 하면, 새로운 증거 제시 없이 증인들이 앞서 진술한 조서의 내용들만 확인하며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
오히려 증인들이 용기 있는 발언으로 특검의 '무리수'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제28차 공판에서는 증인으로 참석한 김기남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이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기재된 진술 조서가 있어 수정을 해 달라고 특검에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제19차 공판에서는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특검의 조서 내용 가운데 일부는 사실과 다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이 경영 승계를 위해 청와대에 청탁했고, 그 대가로 삼성은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경제적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무시한 채 그저 '그랬을 것이다'라는 추측만 가지고 명확한 증거도, 증인도 없이 삼성에게 죄를 묻고 있는 셈이다.
특검의 오조준으로 삼성은 심각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대규모 투자, 인수합병(M&A)도 사실상 모두 중단됐다.
톰 리지 전 미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도 최근 워싱턴타임스 기고를 통해 "이 부회장의 구속에 따른 삼성 리더십 공백은 심각한 상황"이라며 "한국의 국내 총생산(GDP)의 20% 이상과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삼성의 총수 부재는 혁신을 늦추거나 중단시키는 효과만 있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 부분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지 전 주지사의 이 같은 발언은 '삼성 리더십의 위기'가 단순히 국내 몇몇 집단의 기우가 아닌 전 세계가 걱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쯤되니 특검이 국민들의 박수를 받기 위해 정황과 추측만으로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구속 및 기소가 객관적 사실과 진실을 외면한 채 국민 여론에 휩쓸린 결과는 아니었는지 스스로 돌이켜 봐야 한다. 헌법의 '무죄 추정의 원칙'을 준수하고, 사실의 인정은 반드시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해 재판에 임했을 때 비로소 '맹탕 재판'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디어펜=홍샛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