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엔 한미동맹의 앞날 자체가 불확실하고 일부 파열음에 대한 예측도 없지 않아 그게 걱정이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건 일단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달 30일 첫 정상회담 얘기인데, 이만하면 무난한 성적표이겠지만, 그렇다고 낙관할 순 없다. 한미동맹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관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크게 보아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상견례로 나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국제무대 데뷔도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국제정세 인식에서 마인드와 성장배경까지 사뭇 다른 두 정상이 첫 만남에서 삐걱댈 경우 이 갈등이 향후 4~5년 한미간 불협화음으로 연결될까봐 못내 두려웠다.
천만다행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안감이 해소된 것도 아닌데, 총론과 각론 모두에서 드러난 양국의 동상이몽 때문이다. 정상회담 이후 양국관계의 긴장감은 두 방향에서 온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자주외교노선 강화 가능성, 둘째 트럼프 정부의 FTA 재협상 요구의지다. 이 두 요소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한미관계의 윤곽이 새로 그려진다.
'남북관계 한국주도'란 우리만의 헛꿈
냉정하게 말해 FTA 재협상 문제란 '먹고 사는 문제'다. 주고받는 과정에서 양국 이해관계를 조절하면 된다는 뜻이다. 반면 한반도 긴장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이며, 그만큼 절박하다. 해결된 게 당장 없기도 하다. 문재인-트럼프 회담은 현상유지에서 멈췄을 뿐,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그런 징후는 뚜렷하다. 문 대통령의 귀국 전후 가장 눈에 띠는 건 자주외교노선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 스스로 "남북관계에서 주변국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주도해 나가겠다"고 호언했다. 그런 발언의 근거는 물론 공동성명이다.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통일 환경 조성에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남북 대화 재개에 관한 문 대통령의 열망을 지지한다고 밝힌 대목이야말로 우릴 고무시키는 문구다. 강경노선을 앞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화로 긴장국면을 풀어내려는 우리의 새로운 정책 방향을 인정받은 것으로 한국 측은 부풀려 해석하고 있다. 전혀 근거 없는 확대 해석이다.
한반도 통일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 지지란 문구는 다분히 외교적 수사(修辭)이자, 또 미국의 전통적인 입장 천명이다. 공동성명은 기본적으로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데 방점이 찍힌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 지지 문구 옆에 "북한 최대의 압박을 위해 기존 및 새 제재 조치 이행"이 버젓이 명시됐다는 게 그 증거다.
트럼프 정부의 북핵 정책 틀 안에서 변한 게 없다는 뜻이다. 상황이 그러니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우방(한국)과 적국(중국)에게 보다 공격적 입장을 취하다"는 기사를 실었다. UPI도 "트럼프, 문재인 옆에서 '북한을 위한 인내는 끝났다' 선언"이라며 우리와 사뭇 다른 보도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단독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주외교노선은 균형자외교론의 복사판
반면 동상이몽을 부추기는 듯한 국내 언론의 무책임은 도를 넘는다. "한반도 주도권 얻고, FTA 어음 끊었다."(중앙일보 3일자 1면 머리기사) "문 대통령 '남북관계 운전석 앉겠다'"(조선일보 같은 날 1면 머리기사). 좋게 말하면 편의주의적 해석이고, 나쁘게 보면 사실관계 혼선이다.
정말 걱정은 따로 있다. 한반도 주변환경을 바꿀 전작권 전환 문제를 국내 언론은 왜 부각하지 않는가? 공동성명에는 "조건에 기초한 한국군으로의 전작권 전환이 조속히 가능하도록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 대통령 임기 내에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차례 추진되다가 '일단 멈춤' 내지 '사실상 무기연기'됐던 이 문제가 새 정부 들어 한미간에 재합의한 것이다.
공동성명에는 "대한민국은 상호 운용 가능한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및 여타 동맹 시스템을 포함하여, 연합방위를 주도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방어, 탐지, 교란, 파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군사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것"이란 각론까지 들어있다. 얘기가 끝났다는 뜻이다.
예상대로라면 문 대통령 공약대로 그의 임기 내인 오는 2022년, 즉 5년 내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리 대선 공약이라도, 집권 이후 정책화 단계에선 별도의 공론화가 필요했다. 노무현이 전작권 문제를 거론한 것은 취임 3년차였고, 숱한 반대여론에 부닥쳐야 했다.
이른바 균형자 외교론이란 게 우리의 역량으론 실현 불가능한 허장성세의 공론에 불과하다는 것, 그건 한미동맹 파괴를 위한 노림수라는 비판이 당시에 일었는데, 그 문제를 문재인 정부는 집권 2개월여 만에 속전속결로 마무리 지은 셈이다. 놀랍게도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보도대로라면, 정부와 군은 이를 위해 킬 체인과 KAMD 구축 완료 시기를 오는 2021~2022년으로 앞당기기로 하는 등 전력증강비를 앞으로 5년간 78조2000억 원을 쓴다. 천문학적 방위비의 효용과 별도로 의문은 남는다. 문재인 정부의 자주외교노선이란 균형자외교론의 변용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이게 올바른 길일까?
자주외교노선이라는 게 가능한 전략인가에 대한 원론적 문제제기와 별도로 타이밍도 문제다. 북핵 문제가 최고조에 달했고, 향후 1~3년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우리만 빗장을 푸는 행위가 과연 최선일까? 분명한 건 첫 한미정상회담은 문제해결만큼 새로운 숙제를 안겨준 자리였다. 그리고 숙제를 풀 당사자는 우리 자신이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