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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정의란 '국가수호'다

2017-07-06 10:3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석 언론인

북한 김정일이 남긴 일화 중 한국사회에 꽤 알려진 게 하나 있다. 당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테이블 위에 권총 한 자루와 달러뭉치를 올려놓은 뒤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동무들, 둘 중에 어느 걸 가지고 싶은가?" 모두가 머뭇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김정일이 뒤에 있던 호위군관에게 다시 물으며 그 이유까지 대보라고 채근했다.

호위군관의 답이 명쾌했다. 자신은 권총을 원하는데, 그걸 쥐고 있어야 달러 따위를 언제라도 빼앗아버릴 수 있다고 대꾸한 것이다. 김정일이 "바로 그게 정답"이라며 신이 난 표정으로 설명했다. "우리가 경제를 희생하며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 이유가 거기 있다. 그게 내 의지다."

이 스토리의 출처는 김덕홍이 펴낸 책 <나는 자유주의자이다>이다. 김덕홍은 1997년 호형호제하던 황장엽을 모시고 망명한 그쪽 간부(당 주체사상연구소장 서기) 출신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날 그 자리는 당 간부 회의가 아니라 가신그룹 술파티였다. 날짜도 나온다. 1990년 1월이었는데, 답을 맞춘 호위군관에게 권총-달러를 즉석 하사한 뒤 이렇게 떠벌였다.

문 대통령의 위기인식이 문제

"오늘 이 일을 당중앙위원회 모든 일꾼에게 전달한 뒤 내 의지와 배짱을 잘 알고 일하도록 하시오."그건 "날강도적인 의지와 배짱"에 다름 아니라고 김덕홍은 지적하고 있는데, 그 "저주받을 유산"이 김정은에게 대물림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그 날강도 북한이 드디어 갈 데까지 갔다. 7월5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고, ICBM의 마지막 관문인 대기권 재진입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게 무얼 뜻하는가? 유엔에 의해 반(反)인류, 반 문명의 체제로 지목된 그들이 한국-미국을 포함한 지구촌을 상대로 날강도 행위를 할 수 있는 최총 최후의 수단을 확보했다는 걸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발사 당일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보인다고 평가절하하더니 이튿날 틸러슨 국무장관이 나서서 ICBM으로 규정했다. 북한은 앞으로도 ICBM 사거리를 늘리는 한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다양한 미사일 도발을 계속할 것이다. 6차, 7차 핵실험도 정해진 수순이다.

이 결정적 국면에서 무엇보다 한국이 문제다. 코앞에 닥친 국가 소멸의 대위기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응해야 하는데, 위기를 위기로 인식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전혀 딴판으로 돌아간다. 구체적으로 이 나라 최고지도자의 태도도 문제다. 문 대통령은 불과 두 달 전 헌법에 규정된 취임선서에 따라 "국가 보위"와 "국헌 준수"를 약속했는데, 지금 그의 말 한 마디, 인식 하나 하나가 더욱 더 소중해졌다.

유감스럽게도 과연 그가 국민의 기대를 채우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지금의 한국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데도 문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무대에서까지 평화론-대화론을 연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5일(현지시각)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에서 "평화 자체를 깨뜨려선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연방총리실 청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유감 표명 대신 분노 표출이 먼저

맥락은 이렇다. 그는 "북한의 도발이 높아진 만큼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해져야 한다"고 전제했지만, "이 제재와 압박이 북핵 폐기를 위한 대화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발언은 독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만찬회담에서 나왔다.

메르켈이 "내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날 예정인데, (북한의) 빠른 반응이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걸 얘기하겠다"라고 진중하게 발언하자, 막상 한반도 위기의 당사자인 한국 대통령이 평화론으로 말을 받은 것이다. 걱정이다. 현단계에서 최고의 정의란 국가수호라는 것을 대통령을 포함해 한국민 모두가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물론 문 대통령은 독일로 떠나기 직전 한미연합 미사일훈련을 지시했고, 언론에 "무력 시위"라는 걸 분명히 하라고 일렀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다. 그 전날 발언 때문인데, ICBM 도발 직후 열린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그는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명한다"고 일성을 내뱉었다.

실망과 유감이란 상대방이 실수했을 때 하는 발언이다. 북한의 ICBM 도발이 '심리적 선전포고'가 분명하면, 실망과 유감 표명 대신 결연한 분노와 함께 헌법에 규정된 국가 보위를 천명했어야 옳았다. "군 통수권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겠으며, 북한 위협을 막고, 만반의 대비태세와 함께 응징도 검토하겠다"고 다짐하는 게 맞다.

놀랍게도 그 긴장되고 위급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언급하길 잊지 않았다. 싸움을 걸어온 주적(主敵)에게 대화와 평화를 말하는 건 매우 적절치 않다. 실은 대선 훨씬 이전부터 그는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발언해왔다.

얼마 전 6.25 기념사에서도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언급했다. 독일에서도 "한반도 냉전 종식"을 언급했는데, 그것 역시 석연치 않다. 지금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는 인류 대 반 인류, 문명 대 반 문명의 싸움이라는 걸 잊은 채, 겨우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의 맥락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지금 국민이 원하는 건 평화를 사랑하는 대통령은 아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국가수호 의지를 다지는 당당한 최고지도자 상을 원한다. 더욱이 지금은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실낱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상식을 재확인하지만 '날강도 북한'이 핵을 자진해서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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