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의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도발 이후 ‘코리아 패싱’ 논란이 부상했다. 북한이 7월 들어서만 두 번째 ICBM을 시험 발사한 28일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는 직접적인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청와대는 이튿날 새벽인 29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맥 마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통화했고, 이때 양 정상간 필요하면 대화를 하기로 협의했다고 밝혔지만 이를 계기로 야당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미국의 한 방송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서 나는 것이고, 수천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 본토)에서 죽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혀 코리아 패싱 우려는 최고조에 달했다.
문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한 5일 청와대는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가 곧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지만 공교롭게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부터 백악관을 떠나 장장 17일간의 여름휴가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는 이달 말에나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이 휴가지에 연락시스템을 갖춰놓는 것은 당연하고, 휴가지에 있더라도 얼마든지 정상간 통화가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표면상으로 한미간 엇박자가 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문 대통령이 북측의 ICBM 도발에도 불구하고 여름휴가를 미루지 않고 떠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본토만 지키면 됐지 한반도 전쟁까지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한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미국 정부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조하지만 앞으로 차츰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예고하는 국제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이럴 경우 우리가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북핵에 대응하면서 북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북한 문제는 중국 등 국제사회의 지렛대 없이는 풀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3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글로벌 리더십은 공백 상태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적어도 북한 문제에서는 우리가 주도하는 ‘베를린 구상’을 내놓고 운전석에서 엑셀레이터를 밟을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최근 우리 정부는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일을 계기로 하는 남북군사회담과 10.4선언 10주년 및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8월1일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 하지만 북측은 이를 모두 외면한 채 7월에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시험 발사를 두차례 진행했다.
이로써 북한의 시선은 일단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측과 대화를 대비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지만 ICBM 시험발사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특히 북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최대 동맹국가인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정부가 북한의 도발 때마다 우리 정부와 소통하고 싶도록 하는 것은 동맹국가의 자세인 것도 분명하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는 대신 아베 일본 총리와만 통화한 것을 두고 코리아 패싱 논란이 인 것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문 대통령은 이번 북한의 ‘화성-14’ 시험발사 이후 사드 4기의 추가 배치를 지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또한 임시 배치라는 점에서 또다시 중국의 반발만 불러왔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사드에 대한 입장은 중국의 기대감만 높였고, 이 때문에 사드 문제는 더욱 꼬여버렸다.
사드 배치 문제는 한국에 대해 제공하는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해 중국이 거부하는 첫 상징적인 갈등 모델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를 놓고 ‘패권국’ 미국과 ‘도전국’ 중국은 양보없는 기싸움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3개월을 맞지만 여전히 북핵과 사드 문제는 한국 정부의 딜레마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북한 문제에서 이상적인 카드보다 현실적인 카드를 뽑아들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휴가에서 복귀한 문 대통령이 제시할 산적한 국내외 숙제를 해결할 ‘진해 구상’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마도 참여정부의 외교정책이 지향했던 것처럼 궁극적으로 미국의 대 중국 포용 외교의 기조 위에서 동아시아 다자 안보협력의 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이 이 문제에서 주역이 되기엔 아직까지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고, 이런 상황이라면 적어도 한반도 주변 주요국가들 사이에서 코리아 패싱만큼은 경계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우선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정책이 될 것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