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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강대강' 격돌속 갈길 잃은 '베를린 구상' 운명은

2017-08-10 18:36 | 김소정 부장 | sojung510@gmail.com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과 미국이 선제타격을 입에 올리며 한반도 긴장을 높이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

남북관계 문제를 우리가 주도해나가겠다는 일명 ‘운전석론’으로 남북간 대화 채널부터 복구한 뒤 한반도 비핵화를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고, 남북경제협력을 추구하는 베를린 구상이 빛을 볼 수 있을지 기로에 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 첫단추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 군사회담과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목적으로 남북 적십자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없었다. 대신 연거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도발을 이어갔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첫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강경 메시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한미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동의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은 미국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이제껏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괌 포위사격”을 언급하면서 맞불을 놨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군 전략군이 ‘화성-12’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4발로 미군 기지가 있는 괌을 포위사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해 위협했다. 특히 “미사일이 일본의 시마네현, 히로시마현, 고치현 상공을 통과해, 사거리 3356.7㎞를 1065초간 비행한 후 괌도 주변 30∼40km 해상 수역에 탄착되게 될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설명해 북한의 도발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급기야 청와대는 10일 안전보장이사회(NSC) 상임위를 열고 사태 대응책을 논의했지만 전날까지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반도 위기설’을 부인하며 “지금 위기를 잘 관리하면 오히려 어려운 안보 상황을 극복해나갈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을 위협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미국이 매우 화가 나 있는 데도 청와대가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핵 문제는 평화적·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기본 입장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발 수위에 따라 다른 대응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한에서 억류중이다가 ‘코마 석방’된 미국인 오토 웜비어가 사망하자 유가족에게 대신 위로편지를 보냈었다. 그런데 이번에 괌 미군기지를 ‘콕’ 찍어 포위사격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북한의 태도에는 둔감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야 할 남북관계는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진전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북핵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남북간 진정한 교류가 이뤄지기 힘든 게 사실인데도 마치 국내 문제처럼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관점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미 김정은정권은 과거 김정일정권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핵보유국 선언했고, 우리의 대북지원을 일체 거부해왔으며, 우선 미국과 승부해 핵보유국을 인정받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핵·미사일 문제는 미국과 대화하겠다고 하고 있는데다 이 문제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공조해 풀어야 할 것이지만 결국 머리 위에 핵을 이고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한 남한 정부가 결코 여유를 부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은 “미국이 선제타격할 조짐을 보이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북미간 거친 말공격이 벌어지자 외신들은 “한국인들이 놀랄만큼 평온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번 북미간 위협 공방이 시작될 때 ‘코리아 패싱’ 논란이 인 것처럼 또다시 한국은 북미간 위협 공방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북한의 연이은 ICBM급 도발에 대해 경고하자, 북한은 '괌 포위 사격'을 언급, 강대강 대치로 응수했다./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이날 이례적으로 2시간여에 걸쳐 NSC를 열고 논의한 뒤 “최근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위협으로 인해 한반도와 주변 안보 상황이 매우 엄중해졌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북한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 고조나 무력충돌은 어느 나라에도 도움 안 되는 것을 감안해 굳건한 한미동맹 태세를 토대로 미국 등 주변국과 협력해 모든 조치를 강구하기로 했다”면서 “또한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대화의 문을 열고,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적극 전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없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북미간 설전에 가담하는 것보다 적절한 시점에 좀더 안정감 있고, 무게감 있는 발언을 할 것으로 안다”고 말하며,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듯 “결코 상황을 안이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이날도 “북핵 해결을 위한 대화 테이블은 우리 정부가 주도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청와대 측은 “상황이 엄중해질수록 위기도 높아지지만, 한편으로는 파국을 원치 않는다면 대화의 모멘텀도 만들어지는 법”이라며 이번 위기 상황이 조만간 가라앉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북미간 강대강 대치가 실제로 무력충돌로 이어지든 실제로는 파국을 원치 않는 당사자들이 대화의 모멘텀을 갖든 한반도 위기가 단번에 종식될 리는 만무하다. 이미 북한이 ICBM에 실을 핵탄두 소형화에도 성공했다는 미국 정부의 분석도 나와 있어 갈 길 바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코리아 패싱’ 현상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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