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이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4개월째를 맞으며 허니문이 끝나고 할 말은 하는 쪽으로 성큼 방향전환을 감행하는 중인데, 조중동의 이런 변화를 이끄는 건 역시 조선일보다. 조선이 앞장서고 중앙-동아가 뒤따르는 등 편차가 없지 않지만, 주류 매체의 이런 변화가 문재인 정부의 앞날에 변수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무기력의 극치를 보이는 야 3당의 견제기능 실종 국면에서 조중동의 이런 비판 기능 회복은 문재인 정부'지지율 독재'에 따르는 부작용을 막을 요긴한 카드이기도 하다. 조중동의 지면 변화는 뉴스 제작과 논조 양쪽에서 간취되는데, 변화 시점은 최근 보름 전후다.
조중동의 이례적인 청와대 때리기 공조
그걸 상징하는 게 8월 29일자 조중동 사설로, 3사는 모두 심각한 외교안보 문제를 들어 청와대를 때렸는데, 그게 우연만은 아니다. 중앙의 경우 '청와대, 8월 31일까지 사드 배치 완료하라'고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주문을 했다. 반미운동으로 변질된 사드 반대에 정부가 더 이상 관용하면 안 된다는 지적을 날짜까지 못 박아서 했는데, 같은 날 동아도 청와대의 안보 불감증을 정조준했다.
북한이 동해에 미사일 세 발을 쏘고, 서해에서의 백령도 점령훈련을 참관한 김정은이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아 남반부 평정하라"고 지시할 때 청와대는 뭘 했느냐는 비판이다. 하지만 정곡을 찌른 건 역시 조선이다. "'北 미사일은 방사포' 靑 발표 진상규명해야"란 사설에서 동해로 쏜 탄도미사일을 청와대가 방사포라고 축소 발표한 것은 진상규명과 함께 관계자를 문책이 요구된다고 지적이다. (그날 야당 한 곳이 그 주장을 따라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4개월째를 맞으면서 조중동의 비판기능이 살아나고 있다. 사진은 조선일보 "대남 공격용은 괜찮다는 청와대"(8월 28일자 1면), "한국은 빼놓은 북핵 레드라인"(8월 18일자 1면) 지면 캡처.
중앙-동아가 사설 쪽에서 주로 화력 시범을 한다면, 조선은 뉴스면도 함께 움직인다는 게 다르다. 일테면 방사포 축소 의혹을 다룬 사설이 나가던 날 3면 기사의 제목이 이랬다. "대화 거듭 제의한 靑, 북한이 쏜 게 방사포이길 바랐나". 따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는데, 조선의 최근 1면 머리기사 제목만 봐도 새로운 흐름이다.
"대남 공격용은 괜찮다는 청와대"(8월 28일자) "한국은 빼놓은 북핵 레드라인"(8월 18일자)등이 그 일례다. ICBM을 쏜 게 아니니 이른바 '전략적 도발'은 아니라는 식의 청와대 대응이란 있을 수 없는 잘못이라는 비판이다. 문 대통령이 "북 ICBM에 핵 탑재가 레드라인"이라고 했던, 미국 기준의 '황당 발언'을 문제 삼는 차별화된 1면 지면이 신선했다.
조선의 문재인 정부 비판은 사설과 기사만이 아니다. 사내외 기명 칼럼도 그쪽에 가세했고, 외교안보는 물론 문재인 정부의 정책 전체를 때린다. 일테면 "갈팡질팡 안보정책, 유연함인가 무능인가"를 따지는 칼럼의 필자(8월12일 자)는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였는데, 그런 게 한둘이 아니다.
조선의 논객 김대중-양상훈에게 박수를!
하지만 역시 돌파구를 뚫는 건 사내 필자로 간판 칼럼니스트인 김대중 고문의 경우 8월 30일 칼럼 '文 정권이 가는 길'을 통해 "과도하게 자아도취에 빠져있고", "너무도 위선적이고 오만"하다고 비판했는데, 그건 전방위 비판의 포문을 연 계기였다. 주필 양상훈의 활약도 특기할만한데, 그는 "문 대통령 임기 중 안보 사변 일어날 것"이란 제목의 강력한 칼럼(8월 10일)을 일찌감치 내보냈다.
그건 우리의 통념을 깨는 글이었다. 그의 역량은 그 신문을 대표할만한 논객 감은 못 된다는 게 나만의 선입견이자 편견이었는데, 그때 흔들렸다. 그 이전 양상훈 칼럼의 백미는 6월 29일에 쓴 "대통령의 엉터리 탈(脫)원전 연설, 나라가 답답하다"였다는 걸 우리가 기억한다.
매섭고 정확했다. 세계적으로 지진만으로 발생한 원전 사고는 단 한 건도 없다는 것,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탈 원전 선언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고, 그게 방사능 때문인 듯 말하는 실수를 범해 이웃 일본을 어이없어 했다는 지적을 그가 했다. 현 정부의 정책을 놓고 정면에서 반기를 든 글이고, 또 팩트를 가지고 이의제기를 했기 때문에 여론 향배에 영향을 줬던 의미있던 글이었다.
조중동의 이런 변화는 여전히 여론시장을 좌우하는 맏형 격인 종이 신문의 부활을 알리는 청신호로 읽힌다. 결코 우연일 리 없는 이 정도의 지면 변화란 각 매체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내부검토를 이미 마쳤고, 회사 차원의 대응하자는 문제의식 공유를 전제로 한 것임은 물론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외교안보불안에 대한 조중동 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8일 열린 국방부·국가보훈처 핵심정책 토의.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조중동의 변신은 이제 시작일뿐
물론 우린 잊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조중동은 주요 탄핵 기획세력의 하나였다. 그게 촛불 시위와 조기 대선, 그리고 문재인 정부 탄생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 땅의 보수 언론은 그때 이미 한 번 죽었다. 그럼에도 지금 국가위기 국면에서 신문다운 비판 기능 회복은 독자와 문재인 정부의 균형감각 회복을 위해 두루 좋은 일이다. 문재인 정부도 어쨌거나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지면 변화의 모두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사실 외교안보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다. 입만 열면 촛불 혁명에 직접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도 어이없는 노릇이지만, 다분히 레토릭이자, 허풍일 수 있다. 그러나 외교안보 문제야말로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던가?
결정적으로 기이할 정도로 도그마에 집착하는 이 유사(類似) 민중혁명 정부의 이념적 실체와 왜곡된 운동권 마인드를 재확인해볼 수 있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이 사안에 대해 조중동이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직은 우리가 원하는 이념적 실체 규명 작업에서는 거리가 없지 않으며, 표피적인 지적에 머물고 있다.
외려 여론시장 전체를 보자면, 조중동은 한경오포(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포털)에 포위된 형국이다. 심지어 어젠더 설정 기능까지 그들 좌익 비주류매체에 말리고 있다는 징후를 보인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에 대한 신념도 약해졌다. 그럼에도 기대한다. 위기의 이 나라에 활로까지 뚫는 역할은 의연히 주류매체 당신들의 몫이라는 걸 오늘 이 자리에서 새삼 재확인한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