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위층 인사의 솔선수범의 자세와 높은 도덕적 의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한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의 솔선수범하는 도덕의식과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사회계층간의 불신, 갈등, 대립을 완화하는 최고의 가치로 인식되어 왔으며, 현대에는 권력이나 명성과 부를 가진 사람은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와 반대로 '가진 자'의 횡포를 시쳇말로 '갑질'이라 한다. 상대적 약자인 '을'에 대한 '갑'의 부당한 행위를 말한다.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들로 경주 최씨 집안,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과 그의 형제들,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1895~1971) 박사 등을 꼽을 수 있다.
경주 최부자 집안은 '부자 3대 가기 힘들다'는 우리나라에서 12대 300여 년에 걸쳐 부를 지켰다. 그 비결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가난한 이웃을 보살피는 긍휼심(矜恤心)과 애국심으로 '가진 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부자 가문의 마지막 자손인 최준(1884-1970)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였으며, 그의 둘째 동생 최완(1889~1927)은 상해임시정부에서 일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결국 38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했다. 정부에서는 이들 형제의 애국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우당 이회영(1867~1932) 선생은 1910년 한일합병 직후 전 재산을 매각하여 6형제 40여명의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형제들과 함께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이회영 선생은 65세에 만주 일본군사령관 처단 계획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어 고문 끝에 순국하였으며, 이들 6형제 중 오직 이시영(1869~1953) 선생 한 명만이 살아 귀국해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는 일제 하에 사업과 수출로 민족자본 형성에 기여했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을 맡아 국가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또한 항일투쟁에 나서기 위해 1945년 미군전략정보처(OSS) 침투작전(NAPCO Project)의 핵심요원 교육까지 받은 애국자이다.
평생 '애국'과 '교육'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그는 6.25 전쟁 중에 고려공과기술학교를 설립하여 무상교육을 제공했으며, 1965년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유한양행' 주식의 52%를 사원들에게 양도하여 최초로 종업원지주제 주식회사를 만들었으며 1969년 은퇴하면서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몸소 실천했다. 그의 사후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1971)과 건국훈장 독립장(1995)을 추서했다.
최근 육군대장 부부에 의한 '노예 공관병' 사건이 언론을 타고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사건 폭로에 앞장서고 있는 '군인권센터'의 실체를 살펴보면 문제 제기의 객관성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사진=군인권센터 홈피 초기화면 캡처
목숨을 초월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즉위(卽位) 전인 2차세계대전 당시 여군 중위로 자원(自願) 입대하여 참전했다. 여왕의 아들들과 손자들도 군에 입대해 해외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 영국 왕실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잃지 않는 이유는 바로 왕족들의 이와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장성의 아들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 부상당했다. 그 중 월튼 해리스 워커 (Walton Harris Walker, 1889~1950) 초대 미8군사령관과 그의 외아들 샘 워커 대위의 사연과 미8군사령관 겸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1892~1992) 장군과 그의 외아들 지미 밴 플리트 중위의 일화가 심금을 울린다.
미24사단 보병 지휘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던 샘 워커 대위는 아버지 워커 장군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1950)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귀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때 샘 워커 대위는 자신의 부대원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 없다며 전쟁터에 남겠다고 버텼다. 맥아더 장군의 명령에 의해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 아버지 장례식을 치룬 후 그는 다시 한국전선으로 귀대(歸隊)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1년 3월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 지미 밴 플리트 중위는 탄원서까지 써가며 한국전 참전을 자원했다. 그러나 그는 B-26 폭격기로 출격 중 평북 선천지역에서 실종됐다(1952). 미군 수색대가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 밴 플리트 장군은 병사의 희생을 막기 위해 모든 수색을 중단시켰다. 그 후 그는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벗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편지를 전사자 가족들에게 보냈다.
과거 중국의 최고권력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도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에 자원 입대하여 참전했다가 북한에서 전사했다. 우리나라 고위층 자녀 중 목숨을 걸고 남의 나라 전쟁터에 스스로 나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우리 사회의 '내로남불'의 '갑질'과 '을질'
우리나라에도 묵묵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각종 국회청문회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대체로 본인이나 자식들의 병역면제나 기피,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탈세 또는 불법 상속·증여, 논문 표절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책무를 회피하면서 몇 푼의 기부금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갑질' 논란이 떠들썩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이란 우스갯소리가 유행이다. '갑질'이란 용어 자체가 '을'의 입장에서 보는 강자의 횡포이듯이 '갑을'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의 '배째라'식의 '을질'이 존재할 수도 있다. '가진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못지 않게 문명국가의 국민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지켜야 할 사회적, 도덕적 의무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벌이는 '을'의 파렴치 행위나 극단적인 집단이기주의적 투쟁 등이 '을질'에 해당한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갑질'이 '을질'을 유발할 수 있지만 '을질'이 '갑질'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법망을 피해가는 범죄가 많을수록 법이 강화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노예 공관병' 사건이라는 '갑질'
최근 육군대장 부부에 의한 '노예 공관병' 사건이 언론을 타고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공관병은 '노예의 보직'이 아니라 '선망의 보직'임은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노예'라는 표현의 근거는 상명하복이 기본가치인 군 조직의 특성을 감안하여 공정하게 규명되어야겠지만, 이 사건 폭로에 앞장서고 있는 '군인권센터'의 실체를 살펴보면 문제 제기의 객관성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군인권센터'는 정부기관이 아니고 동성애를 금지한 군형법에 항의하며 병역을 거부한 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는 현 임태훈 소장이 2009년에 만든 시민단체이다. 우선, '군인권센터'의 홈페이지를 열면 초기화면 전체에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한다구요? 성소수자군인을 지켜주세요"라는 큼직한 글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지형 변호사가 이 센터의 고문인 사실도 눈에 뜨인다. 게다가 지난 겨울 태극기 집회에서 '계엄령 선포'를 주장한 보수단체 인사들을 내란선동·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단체가 '군인권센터'라는 점도 흥미롭다.
'갑질'과 '을질'의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야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재벌이나 프랜차이즈 업체 등 소위 '가진 자'들의 '갑질'이나 '시급 1만원' 정책 강행에 따른 산업계의 비명에 아랑곳없이 '시급 1만원 즉각 시행' 요구 시위를 벌이는 식의 '을질'은 국민의 분노를 키우고, 청와대의 일방통행 인사 '갑질', 언론, 정치판, 시민단체들의 인민재판식 '갑질', 유아독존(唯我獨尊)의 권위로 황당한 판결을 일삼는 사법부의 '갑질'들은 국민의 불안과 좌절을 키운다.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호프스테더(Geert Hofstede) 교수는 세계 각국의 문화적 특성을 5개의 척도에 의해 계수적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같은 권력중심적이고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권위적, 전제적 '리더십'이 요구되어 결과적으로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적, 계층적인 조직구조를 가지게 되며 사회구성원들간의 불평등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자본주의제도에 익숙한 서구인들에 비해 단일민족의식이 강한 반면 자본주의의식이 미약한 우리는 상대적 박탈감을 쉽게 느끼며 이를 나라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성향이 강하다. '갑질'이란 표현 자체가 그런 성향의 산물일 수도 있다. 호프스테더 교수의 분석에 따른다면 요즘의 '갑질' 논란은 우리 사회가 권력격차가 높고 집단주의가 강한 사회에서 권력격차가 낮고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형 사회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현상의 하나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한 연구단체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시위일수록 합법시위보다 요구수용율이 높다. 결국 불법적, 폭력적 시위일수록 더 큰 성과를 얻는 사회에서는 '배째라'식의 파괴적 '을질'로 이어지기 쉽다. 사회의 '리더(leader)'와 '팔로워(follower)'의 관계는 공존과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양측이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반응하는 상호작용(interplay)이며 순환적인 관계이다.
'갑질'이나 '을질'은 '리더'와 '팔로워'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순환적인 관계를 파괴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갑질' 문제는 단지 '갑을'간의 이해(利害) 조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와 '팔로워'간의 신뢰와 공생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