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국회에서 11일 헌법재판소장 표결이 부결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허니문 기간은 끝이 났다. 청와대의 격앙된 반응이 나오면서 여야간 책임공방도 벌어지는 등 경색 국면이 장기화될 우려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국민의당에 안철수 대표가 복귀하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연대에 시동이 걸리는 시기가 맞물리면서 거대 야당과 여당의 한판 힘겨루기가 예고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100대 국정과제 대부분은 입법 과제로 앞으로 국회에서 협치가 될 때에만 실현 가능하다. 하지만 청와대가 김이수 후보자 낙마 직후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밝힌 것은 여전히 지지여론에만 기대겠다는 것이어서 야당의 반발을 불러올 전망이다.
청와대는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표결에 부쳐진 김이수 후보자가 낙마하자 “도덕적 흠결도 없는 헌법기관장 후보자를 정략적으로 낙마시키는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이자 다수의 횡포”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편향성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헌법재판관도 대통령과 대법원장과 국회가 각각 나눠서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하는 만큼 균형잡힌 구성을 중요시하는데 기관장인 헌재 소장은 특히 그렇다. 결국 김 후보자가 낙마한 요인은 ‘코드 인사’에 있었다.
김 후보자는 헌재의 지난 통진당 해산심판 사건 판결에서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소수 입장을 냈다. 또 헌재가 2016년 7월 군대 내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릴 때도 반대의견을 냈다. 이번에 목회자 등 기독교계는 김 후보자의 동성애 처벌 반대의견을 이유로 국회의원들에게 그의 임명을 반대하며 압박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으로 표결도 앞두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경우에도 다시 한번 야3당이 힘을 모을 경우 통과 여부를 낙관할 수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19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와 함께 류영진 식품안전처장은 대표적인 ‘보은 인사’에 해당한다. 역대 정권마다 보은 인사가 있었지만 전문성과 공직자로서의 기본은 갖췄다. 하지만 류 처장의 경우 ‘살충제 계란’ 파동이 한창이던 8월 초 부임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3일간 휴가를 냈다. 또 휴가 복귀 다음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내산 달걀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가 닷새 만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업무 파악이 안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에는 재직기간이 석달은 지나야 3일간 연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게다가 류 처장은 휴가기간에 법인카드를 9번 사용했고, 대한약사회 직원 차를 타고 부산약사회를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총리가 짜증을 냈다"거나 "직원이 잘 몰라서" 등 국회에서 나온 부적절한 발언은 공직자로서의 자격을 의심케 했다.
야당은 북한 핵 문제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이수 부결’ 카드로 제대로 견제구를 던진 셈이다. 자유한국당이 보이콧을 철회하면서 ‘빈손 회군’이라는 질타가 쏟아졌지만 국회 복귀 첫날 사상초유 헌재소장 낙마로 여당에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또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터로서 힘을 과시해 여야 모두에 위력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정치권은 앞으로 거대 야당과 여당의 힘겨루기로 한동안 경색 정국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이는 만큼 그동안 지지여론만 앞세우던 여당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말뿐 아니라 실제 손에 쥔 카드를 버리는 가시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으로 실제로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가 12일 “청와대가 류영진 식약처장,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보호하려다 김이수 후보자를 낙마시키게 했다”고 지적한 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김이수 후보자가 낙마하던 날 청와대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도 야당과의 대화 노력도 이어갈 것임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청와대는 우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설득하는 방법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청와대와 여당은 지금까지 야당이 크게 반발해온 류영진‧박성진 후보자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더 큰 숙제를 안았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