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합업종 연장의 합리적 논거 제시되어야
▲ 조동근 명지대 교수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26일 제조업 및 서비스업 분야의 34개 업종을 '신규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추가 지정할 뜻을 비쳤다. 올 8월 이면 시행 3년 차를 맞은 기존 적합업종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번 도입된 제도는 그 자체로서 연속성을 갖기 마련이다. 기존 82개 품목이 재(再)지정된다고 가정하면 올 가을부터 최소한 110개가 넘는 중기적합업종 품목이 우리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시장이 아닌 '인위적 기구’가 개별기업의 시장에서의 잔존 여부를 판정하게 하는 이례적인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게 된다.
동반성장위원회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단체들은 지난 3년간 적합업종제도에 대해 성공적이었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는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보호를 받았던 업종은 '재지정’을 희망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단체의 84.1%가 적합업종 재지정을 신청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계는 외국계의 시장잠식 여부로 논란을 빚었던 LED와 재생타이어 업종에 대한 오해가 풀렸기 때문에 재지정의 걸림돌이 제거 된 것 아니냐는 논평을 내 놓기도 한다.
중소사업자와 유관단체의 긍정평가가 적합업종제도 연장의 합리적 논거가 될 수는 없다. 경쟁자가 사라진 무주공산에서 중소사업자들은 그 동안 수익증대를 누렸다. 하지만 제도적 보호에 기인한 이익증대는 '누군가의 손해’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적합업종이라는 보호 장치는 그들의 이권을 기득권화시켰다. 서비스업 분야에서 급증한 골목상권 임대료와 권리금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적합업종제도가 연장되기 위해서는 중소사업자들의 수익증대 이외에 소비자이익과 산업경쟁력 제고에 동 제도가 무엇을 기여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합업종제도는 그들만의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생존권 보호가 적합업종 연장의 논거가 될 수 없다.
적합업종제도의 내재적 논리모순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가 적합업종제도로 부활한 2011년은 선거 정국의 한 복판이었다. '경제민주화’라는 질풍노도가 엄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냉정한 정책적 판단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적합업종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서 논리적 타당성과 정책적 적합성을 가져야 한다.
▲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기적합업종제도를 3년간 연장하고, 기존 82개품목에 이어 신규로 34개를 추진중이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중기적합업종제는 노무현정권마저 반시장적이라는 이유로 폐지한 바 있다. 동반성장위는 중기적합업종제를 없애야 한다. 신규 추가 지정은 더욱 안된다. 중기적합업종제도는 특정업종의 기득권만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골목상권의 임대료만 상승시켜 신규창업자들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데다, 통상마찰마저 초래하고 있다. 신규 출점이 제한된 뚜레주르 홈페이지. |
적합업종제도는 '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2분법적 구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적합업종제도에서는 논리적으로 '중소기업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경쟁은 어떤 경우에도 '개체’ 간의 경쟁이지 '집단’ 간의 경쟁일 수 없다. 적합업종지정으로 생물학적 자연선택 과정에서 “개체 간의 경쟁이 종(種) 간의 경쟁”으로 왜곡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체는 '종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예컨대 개별 중소기업은 소비자에게 자신의 물건을 팔아서는 안 된다. 이는 동종의 여타 중소기업의 시장기회를 뺏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의 기본단위는 '개별기업’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합업종제도는 태생적으로 논리적 결함을 갖고 있다.
적합업종제도는 '지식의 문제’를 자초하고 있다. 여기서 지식의 문제라 함은, 어떤 업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인지 여부를 '경쟁을 통하지 않고는’ 사전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특정 업종이 진정으로 중소기업에 적합하다면, 중소기업 이외의 기업은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굳이 시장에 개입해 “누구는 나가고 누구는 시장에 남으라고”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없다. 중소기업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입자제 △확장자제 △사업축소 △시장철수 등의 권고는 인위적 진입장벽에 지나지 않는다.
▲ 대표적인 골목상권으로 지목돼 신규출점등이 제한돼 영업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는 파리바게뜨 로고. |
적합업종제도는 지대추구적 규제의 전형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자유를 보호하고자 세운 정부가 그 자유를 파괴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설파했다. “권력을 제한하지 않으면 자유는 언제나 위협”받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고 고뇌였다.
자유의 반대는 통제와 규제다. 아무리 선의(善意)로 포장한다 하더라도 통제와 규제는 기본적으로 자유를 침해한다. 통제와 규제가 생겨나는 과정은 간단하다. 민주주의 자체에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주권을 표현한다. 어떤 정치지도자가 나타나 “A가 이런 사업을 못하게 하겠노라고 약속”했다고 가정하자. 특정 규제를 약속한 후보자가 당선되면 다음 선거에서 경쟁자는 더 많은 규제를 내놓는다. 대중정치 체제하에서 규제는 '자기증식’된다.
정부와 의회 권력은 공공성을 표방하지만 실은 '공익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관료도 자기 이익이 극대화되는 정책을 선호한다. 규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국회에서 만들어진 것을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치주의’ 시각에서 볼 때, 특정 목적, 특정 집단을 겨냥한 조직법은 법이 아니다. 법치주의에서의 법치는 우리가 오랜 기간 동안 전통과 관습을 통해 확립된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계약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것은 오랜 상관습이다. 바로 사법(私法)이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계약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와 의회가 “이런 저런 계약은 안 된다”고 간섭하면 사법의 영역에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공법’이 끼어든 것이다. 법은 국가의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 만큼 개인들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면 마땅히 제한되어야 한다.
▲ 반시장적, 반소비자적 규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맨오른쪽) 등 동반성장위원들이 회의 시작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통상마찰 문제로도 번질 수 있는 적합업종제도
지난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2014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 한국 관련 부분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행위의 정책 효과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고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예로 들었다. 2013년 2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외식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패밀리 레스토랑의 신규 매장 설립을 일정 정도 제한했는데, 미국계 업체들에게도 동일한 규제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미 무역대표부가 동반성장위원회를 문제 삼은 것은 적합업종제도가 한·미 FTA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12장 '국경 간 서비스무역’은 정부로부터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비정부기관도 한미 FTA에서 약속한 '서비스 시장’ 개방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미국 기업의 한국 서비스 시장 접근을 제한한것은 한미 FTA 위반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민간기구가 아니라 사실상 정부기구로 판단한 듯하다.
형식적 논리에 따르면 적합업종제도는 '민간자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관련 대기업은 “진입자제, 확장자제, 사업축소, 사업이양” 등의 권고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를 지키지 않을 경우 위원회는 제재권한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청장에게 조정신청을 할 수 있다. 적합업종제도는 '권고’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명령’과 마찬가지이다.
그 동안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적합업종 지정에 대한 통상마찰 우려에 대해 "동반성장위원회는 '민간기구'이므로 적합업종 권고 역시 FTA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대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러나 동반성장위원회의 민간기구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규제를 민간자율로 숨긴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이다.
적합업종지정 로드맵에 따라 점차 폐지해야
동반성장위원회의 방어논리는 2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하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대·중소기업 간 합리적인 역할분담을 이끄는 제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적합업종 제도는 헌법과 상생법에 근거해 민간이 합의한 동반성장 방안으로, 초법적인 제도라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의 방어논리가 적합업종제도 유지의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적합업종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구체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의 이익에 부합되는가? 경쟁촉진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제고시켰는가? 그리고 보편적인 무역규범과의 충돌 가능성은 없는가?”이다.
적합업종제도는 어떤 명분을 붙인다 해도 '특수이익’을 보호하기 규제에 지나지 않는다. 로드맵에 따라 거둬내야 할 규제로 보는 것이 맞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신규로 적합업종지정을 추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존에 지정된 적합업종도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재지정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는 참여정부마저 제도가 갖는 반(反)시장성과 불충분한 실효성으로 폐기한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를 부활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한국경제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 국가전략으로 '규제개혁’에 국가적 역량을 모으고 있다. 적합업종 추가지정 및 재지정은 이 같은 방향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서는 안 된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