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
대학교에서다. 어느 학생이 무심코 하품을 한다. 선생님은 나지막하면서도 엄하게 타이른다. “하품 할 때 입을 가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 분위기 냉랭해지고. 이런 예법 이탈하기와 가르치기 광경은 강의실만 일인가? 어른이, 스승이 말씀하시는 앞에다 대고 막 그냥 하품하게 만드는 부실한 인성은 또 어디 다른 곳에 숨어 있는가? 무엇이 우리나라 대한 사람 인성을 침몰시켜 왔는가? 망가진 인간의 조건. 이를 어찌 해야 할꼬?
경주 양동마을을 찾았다. 가면서도 내내 비통한 세월호 사건과 휘청댄 우리 언론, 미디어 문제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경주 출장 다음날 <미디어와 정책> 강의 시간에 이번 재난보도에서 드러난 한국 미디어산업 부실함을 다룰 참이어서 여러 언짢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기본이 무너진 언론산업 실상을 들춰보고 보도준칙과 윤리강령마저 무시하는 원인을 밝혀야 한다.
600년 지켜온 명당, 흙내음 꽃대궐 뒷동산 잔디밭 그대로
내 칼럼이 “한심한 언론, 인간도 아닌 기자들...” 제목을 달아 나간 후에도 나부터가 밑 모를 무기력함에 연일 지쳐가고 있었다. 자괴감에 뒷목을 부여잡고 있는데 어느새 형산강이 나타났다. 왼쪽으로 안강평야라 부르는 드넓은 양동마을 근거지가 풀 죽은 방문객을 맞아 주었다. 모내기 준비하시면서도 짬을 내준 고마운 이장님과 함께 탐사를 시작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져 현재 남아 있는 4개 고택을 위주로 안내해주셨다. 관가정부터 시작해서 무첨당, 서백당, 향단까지 돌아 나오는 양동마을 핵심루트는 왠지 사색하는 구도의 길만 같았다.
관가정 너른 마당 나와 설창산 오르막대로 맞춰 놓은 흙 담 감아 돌아가니 달걀 이마 같이 봉긋한 공터가 나왔다. 풀꽃 덮여 있는 뒷동산 놀이터 딱 그대로다. 올라서니 360도 전 방위로 온 마을이 보이고 마을 앞 안산 봉우리가 선연해 참 평안한 명당이구나 싶다. 이런 동산 마루 빈 터가 관가정 뒤, 향단 뒤 해서 양동마을에는 2개가 있다고 한다. 600년 역사를 지켜오면서 양동마을에 태를 묻은 뭇 사람들이 뛰 놀고 모이고 뒹굴며 자라난 큰 마당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리워할 흙 내음 꽃 대궐 뒷동산 잔디밭 그대로여서 그저 반나절이고 베어 눕고만 싶었다.
▲ 침몰하는 세월호. 600년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온 경주 양동마을은 항상 후대를 생각하는 좋은 인성교육과 경로사상, 충효정신 등 바른 인간의 조건등에 대해 가르치고, 공동체 가치를 공유하는 데 힘쓰고 있다.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과 부도덕, 책임감 실종 등 침몰한 인성들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해당된다. 양동마을의 공유가치를 국민 모두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
동네 도는 길은 가팔라지기도 해서 조심스러웠지만 이쪽저쪽 구비마다 만나는 초가지붕이며 연분홍 봄꽃, 연초록 나뭇잎들이 요 며칠 너무 억센 슬픔에 지친 가슴을 매만져주는 듯 했다. 해서 대화는 깊어져 갔다. 세월호 같은 정말 어이없는 사고에 대해 양동마을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말씀을 들어 본다. 전 현직 이장님들, 여강 이씨 종손 분 등이 들려준 귀한 이야기 골자는 이러하다.
양동마을 어른들, 기본충실 도리다하는 인성교육에 힘써
인성 교육이다. 사람이 기본에 충실하고 도리를 다하기 위한 인성을 길러내는 것은 단박에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적 집안 밥상머리에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꾸중 듣고 몸에 배어 나오면서 서서히 자기 인성이 갖춰진다. 마을에서도 함께 놀고 협력하고 서로 도와가며 의지하는 가운데 개별 인성 결합이기도 한 튼튼한 사회성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양동마을에서는 어른들이 항상 후대를 먼저 생각하며 일 머리를 잡고 계획을 세운다. 자기 사는 당대에만 짧은 이익이 되는 호사나 행복은 관심을 갖지 않고 오로지 다음 세대에 이어줄 사업에 몰두하기 때문에 뭐든지 더더욱 단단하고 튼튼하게 일구어나갈 마음을 먹는다. 충효사상도 경로사상도 이런 자기희생과 공동체 미래를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양동마을 리더들은 넉넉한 경제를 좋은 인성 텃밭으로 꼽았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근대 들어서만 해도 한 때 1천명이 넘고 현재도 400명쯤 되는 마을 공동체를 큰 갈등 없이 조화롭게 유지하게 된 배경에는 종자가 된 안강평야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 더불어 응당한 보상으로 주어진 국록이 있었다고 한다. 잘 길러낸 후손들이 관직에 나아가서 멸사봉공 힘을 다해 업적을 이뤄 국가로부터 받은 녹봉이 600년 마을 발전의 양분이 되어주었다는 풀이다. 훌륭한 인성 교육이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의 부름을 받아 나아간 공무 직에서 청렴하고 존경 받을 위업을 이루어 국가와 사회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은 성과가 다시 낙향하여 귀속되는 황금 순환이 아닐 수 없다.
<1박2일> 촬영도 거부, 깃발꽂아 뛰고 웃기는 게임에 마을 내줄 수 없어
이야기는 더 파고들어 마을 공동체 운영과 수호의 원칙으로 옮아갔다. TV 예능 <1박 2일> 촬영 거부에 얽힌 일화가 답답했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대박이 났던 <1박 2일> 경주 편 제작 때다. 몇 년 전 당시 <1박 2일>은 국민 동생 이승기도 멤버로 건재했고 문화유산 답사 책 주인공이자 문화재청장 지낸 명사까지 출연시켜 경주 특집을 제작했다. 첨성대 오릉 경주 남산이나 유채꽃 핀 시내를 누비고 펼치는 리얼리티 쇼의 재미와 헉헉대던 생생한 맥박을 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이 기억할 정도다.
그랬건만 경주 양동마을은 거기에 없었다. 제작진이 강하게 거세게 간곡하게 촬영을 요청했지만 양동마을은 끝내 거절했다. 경박함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뻔한 것 아닙니까. 마을 향단 사당 앞에 깃발 꽂아 뛰고 쫓고 웃기며 게임하는 장면 넣자고 우리 마을을 사용할 수 없는 겁니다.” 양동마을 젊은 세대나 경주 시민들은 굉장히 낙담했다고도 한다.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인기 연예인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1박 2일>을 거절하는 마을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겠느냐면서.
바로 이 대목에 날아든 대답이 “우리나라에 이런 마을 하나쯤은 있어야 합니다”였다. 201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면서 양동마을에는 그 전보다 30만명 늘어난 50만명쯤 되는 방문객들이 매년 찾고 있다. 지난해만도 600건이 넘는 촬영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50만 방문객들이 들뜬 관광객으로 돌변하지 않도록 마을 주민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 600여 촬영 요청 가운데 EBS 같은 교양, 교육 우수콘텐츠만을 가려내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이 어려운 원칙 지키기가 양동마을 600년 전통을 살려 왔고 인간의 조건, 좋은 인성과 그 원형을 보듬어 왔으리라.
좋은 인성원형 보존 힘써,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후 연 50만명 방문
하품할 때 손을 가리고 한다. 지키기 어려워도 경박하거나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제안이나 유혹은 두말 않고 뿌리친다. 어른이 먼저 일어나시기 전에는 밥상에서 물러나 앉지 않는다. 비오는 날 진흙발로 500년 문화재 무첨당 마루에 올라 대원군 현판 글씨 근접 촬영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올라가지 마세요’가 두 군데나 세워져 있는 곳이다. 출입을 제한한 내당에 불쑥 들어가서도 아니 된다. 이를 못 지킨다면 양동마을 주인도 손님도 될 수 없다.
양동마을이 부릅뜨고 있어 인성 교육과 인간의 조건을 가늠할 수 있으니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선박 운항, 회사 운영, 가정사, 정부 업무 하나 하나에 불어넣을 양동마을 정신을 그려본다. 성숙한 인간이라면 자연히 그래야 하는 그대로 공무원답고 선생답고 언론인답고 시민답고 해야 대한민국이라는 큰 마을 하나 지켜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양동마을 정신, 대한민국에 확산시키자
그러기 위해 바로 된 인성을 기르고 참된 인간의 조건 갖추는 기본 과업을 처음부터 곧추 세워야 할 일이다. 너무 큰 말 ‘국가개조’ 같은 허상에 힘 뺄 때가 아니다. 다시 문화새마을운동이라도 시작해 양동마을 공유가치를 익혀 나가면 좋겠다. 양동마을 인성과 인간의 조건을 제대로 배움으로써 기어이 인간다움과 한국 사람다움을 일으켜 세워야 할 절체절명 시점이기 때문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