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서비스산업이 도입되면서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있었다. 소비자와 만나는 모든 산업군에는 '소비자 만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이러한 정책은 한국 서비스산업의 질적 성장을 가져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블랙컨슈머'라는 말이 나오고 소비자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기업과 직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비자 만족' 정책의 부작용이다. '갑과 을의 전도', '을의 갑질화'가 보다 노골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블랙컨슈머'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따져보고, 기업이나 직원들의 피해사례 등을 소개한다. 아울러 '블랙컨슈머'가 아닌 '화이트컨슈머'가 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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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기획-블랙컨슈머⑧]현장을 가다-아파트
[미디어펜=김병화 기자] 악성 민원을 고의적으로 제기하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는 주택시장에도 존재한다. 대부분 아파트 하자‧보수와 관련된 민원으로 시작돼 분양가 인하 등 무리한 요구로 이어지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해약 협박으로 마무리된다.
아파트 블랙 컨슈머의 특징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됐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부동산 침체로 집값이 하락하면 날카로워진 소비자들의 심리가 하자 민원과 불합리한 요구로 발전하는 구조다.
A건설사 관계자는 “집값이 오를 때는 그냥 넘어가던 문제가 (집값이) 떨어지면 계약 해지의 빌미가 된다”며 “블랙 컨슈머도 집값 하락 시 기승을 부린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다수 아파트가 이른 바 ‘선분양 후시공’ 방식으로 공급된다는 점도 블랙 컨슈머가 주택시장에서 활개를 칠 수 있는 이유다. 주택 착공 시점에 미리 분양을 하다 보니 다양한 하자 문제에 노출돼 있는 것. 실제로 지난 8월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내 A아파트 하자 문제는 정치권 이슈로 부상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한 아파트 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물론 하자‧보수에 대한 민원은 소비자의 권리다. 하지만 부실시공 등 중대한 하자가 아니거나 건설사가 신속한 조치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B건설사 관계자는 “사전점검 시 계단이나 가구 흠집 등 자잘한 문제를 트집 잡으며 이를 빌미로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거나 분양가 인하, 취등록세 지원, 발코니 확장, 시스템 에어컨 설치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하자‧보수 문제는 부실시공으로 비화되며 아파트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보니 건설사들의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블랙 컨슈머들은 건설사의 후속 분양 현장에서 하자‧보수 시위를 진행하기도 한다. 분양 대금으로 공사비를 조달해야 하는 현장에서 블랙 컨슈머들의 이같은 분양 방해는 건설사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중도금 미납으로 건설사에게 압력을 넣는 블랙 컨슈머도 있다. 중도금 2회 이상 연체는 계약 해지 대상이지만 다수의 블랙 컨슈머들을 단체로 계약 해지시키면 자칫 악성 미분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블랙 컨슈머들의 악의적인 행동들은 선량한 화이트 컨슈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자 민원 폭주에 따른 아파트 이미지 하락은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고, 입주민과 건설사간 소송전으로 치달을 경우 적잖은 금전적 손실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8‧2 부동산 대책 등 주택시장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강력한 규제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정부는 아파트 블랙 컨슈머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주택시장이 침체되고 블랙 컨슈머들까지 극성을 부리면 건설업계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병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