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자동차산업이 50년 만에 후진을 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GM의 철수설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10월 위기설'이 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긴장감마저 돈다. 세계 1위 자동차 산업을 자랑하던 영국이 반세기 만에 몰락한 악몽이 오버랩 된다.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사방이 악재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보복 여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노조와의 갈등, 통상임금 등 인건비 상승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한국GM을 제외하고 9월 판매량이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반짝 효과에 불과하다는 평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9월 추석 명절 연휴, 파업 등에 따른 생산 차질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 기준이 낮은 '기저효과'일뿐이라며 긍적 신호를 경계한다.
그나마 쌍용차가 선전하고 있을 뿐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한국GM은 내수는 물론 수출에서도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 배경에는 양적성장에 집중하다 시장의 흐름을 놓쳤다는 지적도 있지만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강성노조다.
해마다 반복되는 파업과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는 결국 원가상승으로 이어졌다. 한국 자동차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던 '상대적으로 싸면서 성능이 좋다'는 최대 장점은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통상임금 폭탄까지 더해져 인건비 상승은 더욱 가팔라졌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기본급·성과급 인상 대립으로 지난 8월 이후 임단협이 중단된 상태다. /사진=현대자동차노동조합 제공
한때 한국은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이었다. 2005년부터 11년 동안 한 차례도 '톱5' 자리를 내준 적이 없었다. 지난해 인도에 5위 자리를 내주고 6위로 내려앉았다. 현재와 같은 위기가 이어지면 올해 한국은 멕시코에 6위 자리마저 넘겨주고 7위로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자동차는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의 13.6%, 고용의 11.8%, 수출의 13.4%를 담당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지난 50년간 전진해 오던 한국 자동차 산업이 브레이크 없는 후진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3분기 국내외시장에서 지난해보다 1.2% 줄어든 107만2000대를 판매했다. 기아차는 69만1000대로 0.9% 늘긴 했지만 현대기아차 전체로는 2014년 이후 3년째 내리막길이다. 올해 5개 자동차 업체의 9월까지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5.4% 줄었다. 생산량도 감소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8대 자동차 생산국 중 2년 연속 생산량이 줄어드는 유일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철수설이 불거진 한국GM은 내수시장 9월 판매량이 9000대를 넘지 못했다. 지난 2012년 1월 이후 68개월만이다. 한국GM은 부평·보령·군산·창원 등 4곳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전체 사업장에 1만6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포함하면 고용 규모는 30만여 명에 이른다. 철수하면 그들은 일자리를 잃고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친다.
한국GM의 위기와 철수설에는 강성노조가 있다. 한국GM은 아직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도 매듭짓지 못했으며 향후 일정도 잡지 못했다. 노조는 사측이 적극적인 자세로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며 향후 벌어지는 일들은 자신들이 아닌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부분파업과 철야농성을 무기로 한국GM을 압박하기도 했다.
노조의 행보는 기업의 생존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 배만 불리기에 급급하다. 회사를 살리고 한국에 붙잡아 놓기 위해서는 임금인상과 파업이 아니라 생산과 판매에 관해 머리를 맞대야한다. 노조가 파업이나 무리한 요구를 계속 내세울 경우 회사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 방안이 '철수'일 수도 있다.
GM 본사는 그동안 한국의 강성 노조에 여러 차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오죽했으면 미국 본사 메리 바라 회장은 지인에게 다른 나라보다 유독 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한국GM을 가리키며 "제발 노조 좀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을까.
방만한 경영과 강성 노조로 망해본 적 있는 GM은 한국 사업을 축소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노조는 해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통상임금 문제도 제기하면서 악수를 두어왔다. 노조 스스로가 '이기적 이익집단' 이미지를 더욱 고조시키는 듯한 행보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이미 한국GM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GM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심각성을 알 수 있다. GM의 소형차 전진 기지였던 한국GM 한때 완성차와 반조립품 합쳐 200만대 넘게 생산하고 수출했다. 지난해에는 125만대로 40%나 급감했다. 2014년부터 3년간 누적 적자가 2조원에 달한다. GM 본사가 한국GM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게 산업은행과 합의한 조항은 10월 16일 종료된다. 철수설이 증폭되는 이유다.
강성노조에 발목 잡힌 것은 한국GM만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기본급·성과급 인상 대립으로 지난 8월 이후 임단협이 중단된 상태다. 기아차 노사는 지난 8월 통상임금 관련 1심 소송에서 노조가 일부 승소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위기 상황에서도 노조의 입장은 상생이 아니라 자기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새로 선출된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임단협 관련 연내 타결에 연연한 졸속 합의를 하지 않겠다며 강경노선을 예고했다. 통상임금 3년치 4223억원을 인정받은 기아차 노조는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다시 판단을 받아보려 한다며 항소장을 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 5개 완성차 제조사의 차량 1대당 노동시간은 26.4시간이다. 포드는 21.3시간·GM은 23.4시간·도요타는 24.1시간으로 경쟁업체에 비해 높다. 반면 국내 완성차 5개사 근로자는 2016년 기준 임금은 9213만원이다. 폴크스바겐 8040만 원보다 1173만원이나 많다. 그래도 노조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보복 여파와 함께 미국 시장에서도 판매부진으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사진=현대차 제공
노사 갈등의 장기화와 사드여파 등 국내외 판매 부진까지 겹치면서 이번 달 국내 자동차 업종의 경기전망은 8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인 한미FTA는 아직 발도 떼지 않았다. 미국의 한국산 자동차 관세는 한미FTA 발효 뒤 4년간 2.5%가 적용됐다. 지난해 1월부터는 관세가 붙지 않는다. 수입 관세가 부활되면 수출 감소 폭은 더욱 확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경고등이 들어 온 한국자동차산업이 영국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롤스로이스·벤틀리·애스턴 마틴·로터스·재규어·랜드로버·미니 등은 모두 영국에서 탄생한 자동차 브랜드다. 영국은 50여 년 전만 해도 세계 1위 자동차 수출국이었다. 50년 후인 현재 영국 기업이 보유한 자동차 브랜드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독일·미국·중국·인도 기업으로 뿔뿔이 팔려갔다.
반세기만에 몰락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한국자동차 산업에 주는 의미는 되새겨야 한다. 영국 자동차 산업은 소량생산을 고집하고 공장을 쪼개면서 생산비가 급증했다. 노사관계도 똑 닮았다. 노사분규로 신모델 출시가 지연되는 일도 흔했다. 현대차도 지난 7월 노조 동의가 늦어지면서 코나 생산이 늦춰졌다.
당시 영국에선 한 자동차 사업장에서 10여 개 노조가 세력다툼을 벌였다. 현대차 노조도 10여 개 계파별로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 자동차 노조는 회사가 넘어가는 판에도 고용 보장을 요구했다. 현대차 노조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서면으로 고용을 보장하라고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위기의 한국자동차 시장이 50년 전 몰락한 영국의 자동차 산업 거울을 보는 듯하다.
한국자동차산업의 현주소는 생산성은 최하위권이고 임금은 최상위다. 현대차의 파업은 연례행사가 됐다. 기아차는 통상임금 소송으로 사측과 각을 세우고 있다. 2011년 465만 대를 기록했던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지난해 422만8000대로 줄어들었다.
노조는 성장이 아니라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50년 전진하던 한국자동차 산업이 후진하고 있다. 세계 1위였던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반세기만에 몰락했다. 한국경제와 고용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몰락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상생의 길이 무엇인지 노조는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기 바란다.
[미디어펜=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