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화려했던 영국을 상징하는 듯한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에서 출발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나 템즈강 유역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빅벤 시계탑에 이르기까지. 런던의 심장부에 위치한 옛 건물과 동상, 그리고 백 년은 훌쩍 넘겼을 법해 보이는 나무들 속을 걷다 보면, 내가 마치 과거 어느 역사의 한 장면으로 잠시 옮겨간 듯한 느낌이다.
과거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보존하고 또 오늘날의 것처럼 다시 쓴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 일인지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런던의 거리다. 세인트 폴 대성당 앞 광장에 앉아, 슈퍼마켓에서 산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는 런던 시민들의 삶에서 우리는 그들의 '역사 친화적' 삶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런던의 옛 정취를 한껏 마음에 담은 채 국회의사당을 지나면 웨스트민스터 다리 건너편에 서있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 있다. 런던의 랜드마크이자 대표 건축물인 '런던아이(London Eye)'다.
도시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런던의 고풍스러움과는 다소 거리가 먼 현대적이고 세련돼 보이는 이 건축물이 템즈강 남쪽 편에서 런던 시내를 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 런던이라는 한 오랜 중년 신사의 어렸을 적 일화들을 읽어 내려가는, 한 관찰자의 돋보기 같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런던아이는 이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도시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하나의 통로,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 '런던 아이' /사진=윤주진
가까이서 건물을 직접 매만져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를 느껴보는 도보 여행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마치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듯한 느낌을 가져보기도 하고, 도시가 움직이는 시간과 나의 생체 리듬을 동일하게 맞춰 보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멀리서 도시 전체를 바라보는 것 또한 남다른 의미를 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민들의 발걸음과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를 잠시 제쳐두고, 수십년 또는 수백년의 호흡으로 전체 도시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런던아이는 분명 런던을 찾은 전세계 손님들에게 후자에 가까운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필자의 영국 유학은 마치 런던아이 캡슐에 탑승한, 가슴 뛰는 어느 관광객의 여정과 같은 것이다. 런던에 왔지만 늘 필자의 눈은 한국을 바라본다. 매일 매일 분주한 일상에 시분침을 맞추고 살았던 지난 30여년의 한국생활이 길고 길게 이어지는 하나의 도보여행이었다면, 이번에 떠나온 유학은 잠시나마 지도를 접고 조금은 더 멀리서 내가 살던 곳, 내가 소속했던 곳을 바라보는 관람차를 타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이 관람차에서 내가 바라본 한국, 내가 바라본 한국 정치에 대해 부족하나마 글로 남겨볼까 하며 첫 발을 떼 보고자 한다.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윤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