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경제 정치 연예 스포츠

'클린 수주전'과 임병용 GS건설 사장의 이유있는(?) 소신

2017-10-23 15:10 | 김영배 부장 | budongsan@mediapen.com

[미디어펜=김영배 기자] 지난 17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 건설사 임직원들이 모여 도시정비사업 공정경쟁 실천 결의대회를 가졌다.

한국주택협회 회원사(64개사) 중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등 내로라하는 25개 건설사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시공능력평가순위 6위의 GS건설은 빠졌다.

건설사들은 과도한 이사비와 이주비 지원 등 양적인 경쟁을 중단하고 주택 품질 향상 등 질적인 경쟁을 도모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 정비사업과 관련한 금품 수수나 향응 제공 등 일체의 불법행위와 과장 홍보, 상호 비방 같은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고 특정 회사 낙찰을 위한 사전담합 금지, 법령에 명시된 규정 준수 등을 다짐했다. 그리고 채택한 결의문을 정부에 전달했다. 

건설사들이 자정 결의에 나선 것은 최근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와 한신4지구, 송파구 미성·크로바 등 재건축 수주전이 과열되면서 조합원을 상대로 한 금품·향응 제공 등 혼탁함이 극에 달했다는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자정결의가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고, 결의문대로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결의대회를 보는 시각이 곱지 많은 않다. 

국토교통부는 시공사 선정총회 과정에서 반포1단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9월말 주요 건설사들을 불러 불법행위가 있을 경우 시공권을 박탈하겠다는 엄포(?)를 놓았고, 얼마 전에는 지자체 등과 합동회의를 열어 고강도 수사와 제재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비난 여론에 당국의 옥죄기가 가시화되자 허겁지겁 자정결의대회를 열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GS건설은 자정결의대회에 왜 빠졌을까? GS건설은 반포1단지 수주전에서 총회를 앞둔 전 날 '클린수주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서초 한신4지구와 송파 잠실 미성·크로바에서는 '불법 매표 시도 근절을 위한 신고센터'를 자체 운영했고, 한신4지구에서는 25건의 금품·향응을 제공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랬던 GS건설이 자정 결의대회에 불참한 것은 임병용 사장의 뜻이라고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비리 복마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대안 마련 없이는 결의대회 의미가 없기 때문에 불참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금품수수자에 대한 처벌 면제를 통한 신고 활성화, 금품·향응 제공 등 비리를 저지른 건설사에 대한 일정기간 입찰 제한 등을 결의문에 담을 것을 제안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참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재건축 수주전이 왜 비리의 온상으로 타락했는지 원점으로 되돌아 가보자. 핵심은 역시 시공사 선정 총회부터 출발한다. 총회는 현장투표와 부재자투표로 진행되는데, 주로 부재자 투표에서 발생한다.

부재자 투표는 총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조합원들을 위해 미리 투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엄밀히 말하면 사전투표다. 그런데 이 부재자 투표가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건설사에서 운용하는 홍보요원(현장에서는 OS요원이라고 부름)들이 조합원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투표소까지 따라다니며 득표활동을 하는 것이다. 말의 비밀선거이지 사실상 매표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부재자 투표를 했다고 해서 총회에 참석 못하는 것도 아니다. 총회 의결 정족수(50%)를 채우기 위해 부재자 투표를 한 조합원도 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재건축이나 재개발 등 정비사업 수주를 위한 영업비용도 만만치 않다. 공사비 2조6000원이 투입되는 반포1단지 수주전에서는 400억원 가까이 풀렸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다. 이 얘기가 맞는다면 공사비의 1.5% 정도가 수주비용으로 들어간 셈이다. 국내 주요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이 5% 수준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적지않은 비율이다. 원가절감과 품질을 높이는데 들어가야 할 돈이 엉뚱한 곳으로 세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규모에 따라서는 1000억원이 넘는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장사인데, 다소(?)의 불법이 있더라도 수주가 우선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적발이 된다고 해도 벌금만 되면 그만이다(관련법에 따르면 위반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벌금과 징역형을 병과하거나 가중처벌하고 해당 건설사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입찰제한 등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금품이냐 향응을 제공받는 조합원이 자진해서 신고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마련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금품수수는 뇌물죄이기 때문에 제공자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도 처벌받게 되기 때문에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다.

현재 관련법 개정을 통해 자진 신고자에 대해서는 벌금을 감해주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신변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자정 결의대회에 빠진 GS건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또 실제로 이와 비슷한 문제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도 있었고, 심지어 “배반자”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는 선언적인 의미보다 실제로 자신의 행동을 구속하면서 공정하게 수주경쟁에 나설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임 사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 진정성이 더해지고 나부터 솔선수범한다면 수주경쟁 환경도 바뀌지 않을까?

최근 정치권에서도 건설업계 적폐 청산을 위한 관련법 개정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자칫하다가는 건설업계 전체가 명문과 실리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미디어펜=김영배 기자]
종합 인기기사
©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