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주영 기자]'소훼난파(巢毁卵破)' 둥지(보금자리)가 깨어지면 알도 깨진다는 뜻이다. 이를 재계에 비유하면 '기업(둥지)'이 무너졌을때 그 속에 안전하게 근무하는 임직원(알)들은 불행을 당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한국지엠 말리부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차량을 검수하고 있다. /한국지엠 제공
한국지엠은 극심한 경영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사 갈등이 이어지면서 '악몽의 10월'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일 카허 카젬 사장 취임과 동시에 노조가 파업을 감행했고 지난 7월부터 결렬된 교섭은 현재까지 답보 상태다.
카젬 사장이 다시 한 번 노조와의 교섭을 재개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통역사 교체라는 변수가 작용해 협상이 무산됐다. 노조와의 갈등이 매듭되기도 전에 한국지엠은 본사 보유지분 매각제한 해제시점에 따라 '국내 철수설'이라는 위기에 다시 직면해 있다.
카젬 사장은 얼마 전 정무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뾰족한 대안이나 묘수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국지엠의 앞날을 두고 앞으로의 변수에 따라서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적인 업계의 의견이다.
한국지엠의 경영상태도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회사는 최근 3년간 2조원의 영업손실을 봤고, 이로 인해 올해 역시 최대 1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실적을 끌어올릴 신차 등이 부재한 상황에서, 최근에는 완성차 3위자리를 쌍용차에 내주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올해 임금교섭과 관련, 사측과 한달 넘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노조의 요구는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과 통상임금(424만7221원) 500% 성과급 지급 등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적자 누적으로 경영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에서도 기본급 5만원 인상과 성과급 1050만원 등 회사측 제시안으로는 만족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임금인상안과 함께 정기상여금을 통상 임금에 포함하기로 결정하면서 3년동안의 인건비 부담이 약 5000억원 수준으로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소급분 적용에 대한 노조의 소송을 법원에 게류중에 있다.
노조는 임금인상안을 제시하면서 ‘미래발전전망 확보’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회사의 경영상태를 생각한 처사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못한 한국지엠 생산공장이 위치해 있던 인천·군산·창원·보령 지자체가 팔을 걷었다. 한국지엠 협력업체, 중소기업 모임, 인천지역 쉐보레 대리점 관계자들은 26일 부평 공장 홍보관에서 ‘쉐보레 제품 판매 증진 및 지역경제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실적 부진과 경영악화로 ‘매각·철수설’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지엠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반면, 노조는 느긋하다. 사상 최대인 10일간의 황금연휴를 맞은데다 회사의 창립기념일이 겹치다 보니 영업일수도 절반 가량이 줄어든 탓이다. 공장 직원들은 일주일 중 닷새는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파업이 아니라 일감이 없어서다.
이러는 사이 공장 가동률은 바닥을 치고 있다. 공장별 가동률을 보면 군산공장 20%, 부평 엔진공장 30%, 부평 2공장 60%까지 떨어졌다. 군산공장은 GM의 글로벌 대표 차종인 '쉐보레 크루즈' 생산 기지였지만 지금은 그 위상이 많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글로벌 기업 GM은 미국 바깥에서 전체의 3분의 2를 만든다. 러시아·우즈베키스탄부터 미국까지 총 167개 공장과의 효율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국지엠 노조는 회사의 위기를 외면하고 위험한 길을 택한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가뜩이나 환율과 북핵 리스크를 거론하며 한국이 생산 기지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지엠 노조는 과격한 투쟁보다는 회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인건비 부담이라도 덜어줘야 한다. 무조건 카젬 사장에게 "회사를 정상화시키라"고 다그쳐도 회사 차량 등의 생산을 책임지고 돌아가게 만드는 구성원들의 힘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카젬 사장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카젬 사장과 한국지엠은 당초 "지속 가능한 회사로 나가는 과정에서 비용 절감 등 수익성 강화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임금협상에서 조금 더 높은 액수를 받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보다는 회사의 경영상황을 바로 알고 '비용절감' '수익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지자체, 협력사와 마찬가지로 차량 사주기 캠페인이라도 참여해야 한다.
노사 관계는 수레의 두바퀴와 같다는 말이 있다. 어느 한 쪽이라도 빠지면 수레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결국 굴러갈 수 없다. 어려울 때일 수록 노사가 이견과 갈등보다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