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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진의 런던아이]대처와 캐머런…영국 보수당서 읽는 보수 혁신

2017-11-04 09:21 | 온라인뉴스팀 기자 | office@mediapen.com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영국 보수당의 화려한 부활의 주역으로 전후 최장 기간 총리를 역임한 마가렛 대처. 지난 2013년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장례식에 참석한 젊은 재무부장관 조지 오스본이 흘린 굵은 눈물은 보수당과 대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만큼 대처는 여전히 보수당을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처가 없는 보수당, 대처가 없는 보수당 정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보수당은 물론 노동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들도, 적어도 대처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에 대해서만큼은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마가렛 대처 역시 한때는 처절한 외면과 경계의 대상이 되며 정치권을 쓸쓸히 떠나야만 했다. 이른바 '대처 이후'의 보수당은 계속되는 총선 패배와 지지율 폭락을 겪어야 했고, 대처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늘 갑론을박만 이어졌을 뿐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비틀거리기만 했다. 

대처가 제시한 뚜렷하고 견고한 정치-경제-사회 철학의 명쾌하고도 분명한 그 가치를 저버리기 힘듦과 동시에, 대처에게 너무나도 지쳐버린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분명 탈(脫)대처리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였던 셈이다. 반면 노동당에서는 토니 블레어라는 새로운 현상이 대두되면서 정권은 맥없이 넘어갔고, 그렇게 당분간은 노동당의 시대가 계속될 것만 같았다. 

이후 세 번의 총선에서의 연패, 그리고 네 번의 당수 교체라는 암흑의 터널을 통과하던 끝에 보수당이 찾은 해법은 젊고 참신한 정치인, 데이비드 캐머런이었다. 캐머런이 어떻게 보수당의 부활을 가능케 했는지는 여전히 학계에서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이념과 정책은 물론, 그의 마케팅 전략과 화술, 심지어 그의 부인이 어떻게 여론에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분명 캐머런은 세련된 전법을 구사해 대중적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내건 여러 슬로건들과 정치적 표현들은 진부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확실하게 보수당의 방향성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예컨대 영국에서 늘 정쟁의 이슈가 되고 하는 NHS(영국의 무상의료체게)에 대한 캐치프레이즈를 들 수 있겠다. 

마가렛 대처가 2005년 10월 13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호텔에서 80세 생일파티를 열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그녀의 남편 필립공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영국 국민들은 거대한 보건행정체계인 NHS가 개혁이 필요한 대상이라는 점은 폭넓게 공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무상의료라는 혜택이 줄어드는 것은 반대하는 이중적인 여론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캐머런은 "우리는 NHS를 축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적자만 축소할 것입니다" 라며 국민들을 안심시켰고, 오히려 NHS의 순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것은 정확히 국민들의 표심을 흔들었고, 보수당의 정권 창출에 큰 보탬이 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세련됨, 참신함, 마케팅만으로 캐머런의 성공을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다. 바로 그의 일관되면서도 분명한 철학이다. 

캐머런을 둘러싼 연구나 분석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질문이 있다. "과연 캐머런은 대처주의자(Thatcherite)인가?"이다.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대체적인 대답은 "그렇다"이다. 맞다, 그는 대처주의자인 것이다. 

그는 작은 정부와 감세를 지지하고, 자율적인 시장경제를 옹호하며, 경제성장과 규제개혁의 중요성을 늘 설파했다. 마거릿 대처에 대한 평가를 물을 때 캐머런은 주저 없이 그녀가 훌륭한 지도자였으며 영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곤 했다. 캐머런은 스스로가 대처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쳤다면, 비록 캐머런의 노선이 정의롭고 옳았을지는 몰라도, 보수당의 재건을 성공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민들은 분명 '대처 시즌2'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마가렛 대처가 훌륭한 경제 개혁가였듯, 나는 근본적인 '사회 개혁가'가 될 것이다…1980년대 무너진 경제를 바로 세운 이가 마거릿 대처였다면, 나는 '무너진 사회'를 고칠 것이다."

캐머런은 대처와의 결별이 아닌 '대처의 확장'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동안 보수당이 미처 돌보지 못한 영역들, 예컨대 소수자 문제나 환경, 노동, 문화 등에 있어서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캐머런의 혁신은 철저하게 이념과 가치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며 과거와의 결별도, 그렇다고 과거에 얽매이는 퇴보도 아닌 '우리가 가진 좋은 것과, 갖지 못한 좋은 것'의 융합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총선에서 이겨 다우닝가 10번지에 들어간 캐머런은 그 어느 정부보다도 과감한 친시장 경제정책을 펴서 영국 경제를 일으키는 데 기여했고, 보수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탄탄히 다질 수 있었다.

이쯤 되면 혹자는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머런이 설정한 대처와의 관계를, 과연 오늘날의 보수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적용해야 된다는 주장인가? 안타깝게도 대처와 박근혜 대통령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매우 무리가 있을 것이다. 탄핵과 검찰 기소라는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에서 정신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대처의 최후도 꽤나 쓸쓸하고 비참했지만, 어떻게 박 대통령의 그것에 비할 수 있으랴. 

다만, '정치인 박근혜'가 아닌 보다 넒은 의미의 지난 보수 세력의 정치적 유산을 대입해본다면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논의임에는 틀림없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국가의 건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기적처럼 성공한 경제성장, 민주화 이후 체제의 연착륙과 계속되는 사회 발전의 중심에는 늘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있었다. 그리고 역대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보수 세력은 이러한 화려한 과거와의 관계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캐머런이 추구한 방향성이 우리 보수 세력의 진정한 혁신과 회복에 시사하는 바가 많지 않을까? 우리는 과거와 결별할 수도 없고 또 과거에만 머무를 수도 없다. 과거를 어떻게 미래의 것으로 가공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그 중심에는 늘 이념과 가치에 대한 논쟁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어설픈 좌파 흉내내기도, 탈이념적인 공허한 논쟁도 결코 혁신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정당은 이념과 가치의 결사체이다. 그 본질로 들어가야 한다. 캐머런의 젊고 세련된 이미지 뒷면에는 그의 확고한 가치 체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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