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7박8일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15일 귀국길에 오른 가운데 이번 순방외교는 한중관계를 정상화 궤도에 올리고, 아세안 국가들로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중국의 투톱과 연이어 정상회담을 가졌다.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13일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때 리커창 중국 총리와 회담을 이어갔다.
지난 일년동안 한반도 사드 배치를 놓고 갈등을 겪은 양국은 지난 10월31일 전격 관계 정상화를 선언하는 공동 발표를 가졌다. 당시 발표 때 이달 11일 베트남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것을 예고했고, 이번에 만나 내달 문 대통령의 방중과 세 번째 한중정상회담도 약속했다.
그런데 최근 한중간 ‘봉인’하기로 합의한 사드 문제가 이번 문 대통령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다시 언급되면서 다음 한중정상회담도 이 문제가 또 불거질 가능성이 열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봉인’ 또는 ‘봉합’이라는 말로 한반도에 이미 배치된 사드 6기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가 용인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과 리 총리의 회담 이후 중국 외교부는 “양국이 최근 단계적으로 사드 문제를 처리하는데 공동 인식을 달성했다”고 밝혀, 사드의 단계적 철폐 합의를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측은 여전히 시 주석과 리 총장의 사드 발언은 ‘사드 봉인에 대한 합의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 대통령은 14일 필리핀에서 귀국 전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사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봉인된 것으로 이해한다”며 “일단 사드 문제는 제쳐두고 그것과 별개로 양국간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발전시켜나가자는 데 양국이 크게 합의한 셈”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15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베트남 회담 때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사드 문제를 꺼낸 것에 대해 “앞서 실무 합의한 내용을 양 정상이 만나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이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다음 방중 때에는 사드 문제가 의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방중은 손님 입장으로 가는 것인데다가 한중관계 발전을 논의하는 계기인 만큼 시 주석이 사드 문제를 다시 거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측은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이 사드 문제를 꺼내고 중국 외교부가 “단계적 사드 철폐”를 밝힌 것 모두 ‘국내용 메시지’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PEC 정상회의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일 오후(현지시간) 베트남 다낭 크라운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반갑게 미소지으며 악수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하지만 사드 문제가 모두 끝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언급한 바 있는 인도‧태평양 라인 구축도 새로운 부담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필리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3자 회동을 가졌다. 일본과 호주는 인도‧태평양 라인에서 핵심 국가로 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 부담이 커진 것으로 동맹국인 미국과 새롭게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줄타기 외교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필리핀 기자 간담회에서 “인도‧태평양 협력이라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때 처음 듣는 제안이었다”며 “이 협력이 인도‧태평양의 경제와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이라면 우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가 없는데, 한미동맹을 인도‧태평양 협력의 한 축으로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처음 듣는 얘기여서 정확한 취지를 알기 어려웠고, 그래서 당장 입장을 밝히는 것은 유보하고 앞으로 정확히 파악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인도‧태평양 라인 구축에 속도를 낼 경우 문재인 정부는 진짜 균형외교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사용해온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을 대체해 사용한 것인 만큼 미국이 일본‧호주‧인도과 연합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적 개념이 좀 더 부각된다. 시진핑 주석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 건설 즉, 육상의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해상을 연결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합친 프로젝트와 전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 동남아 순방에서 아세안과의 미래공동체 발전 기반을 다지는 약속을 한 것은 성과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이 이 지역에서 끊임없이 대결구도를 확산해가는 것을 목도한 만큼 이에 대한 마땅한 전략과 대책 마련을 과제로 떠안은 셈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