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탐험]5- 왜 여인처럼 다루어야 하는가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녹음이 짙어지는 골프시즌이 돌아왔다. 겨울동안 '밭'을 열심히 갈아온 주말 골퍼들을 설레게 하는 골프 시즌을 맞아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준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골퍼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가다듬기 바란다. [편집자주] |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싱글 플레이어도 잘 쳐야 한 라운드에 6~7개의 나이스 샷을 할 뿐 나머지는 모두 나이스 미스 샷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영국의 명 프로 토미 아머(Tommy Armour)는 그의 저서에서 “골프코스는 여인을 닮았다.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잘 알고 있는가 여하에 따라 여인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고, 아니면 손대지 못할 정도로 거칠어지게도 할 수도 있다. 골프코스도 마찬가지다.”고 썼다. 토미 아머는 1930~1950년대에 활약한 미국의 프로선수로 US오픈과 디 오픈, PGA투어 챔피언십을 쟁취했고 그의 손자 토미 아머3세는 54세의 나이에도 정교한 아이언 샷으로 PGA투어와 챔피언스투어에서 맹활약, 할아버지의 명성을 잇고 있다.
토미 아머의 말대로 골프코스를 일방적으로 공략하려 들다가 많은 골퍼들이 어김없이 실패의 쓴맛을 본다. 여인을 욕심대로 대하려 들면 십중팔구는 실패를 경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랑하고픈 여인을 만났을 때 이 여인을 어떻게 달래어 나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를 곰곰이 궁리하듯 골프코스도 사랑을 구하는 진지한 자세를 갖춘 골퍼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마치 난공불락인 것처럼 보이던 콧대 높은 여인이 끈질기고 진솔한 구애에 무릎을 꿇듯.
여인을 강제로 겁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강제로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 겁탈에는 교감이 있을 수 없다. 교감이 없는 관계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관계가 아니다. 관계란 항상 둘 이상의 교감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더욱 아니다.
코스 곳곳에 도사린 벙커와 러프는 한번 빠지면 쉽게 벗어나기 힘든데 이는 한번 탐닉하기 시작하면 쉽게 헤어나기 힘든 여체와 비슷하지 않은가. 골프코스에서 가장 여성적인 곳은 바로 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린이다. 매끈하고 보드라운 그린과 쉽게 공을 받아들이지 않는 좁은 홀은 영락없이 여성을 떠 올린다.
라운드하는 과정 역시 매우 성적이다. 우선 골퍼라면 누구나 강력한 드라이브 샷을 원한다. 남성에게 롱 드라이브는 곧 파워의 상징이고 성기의 상징이다.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far and sure)'가 모든 골퍼의 희망이자 소원이듯, 모든 남성들의 소망 역시 강력하고 장대한 물건이다.
▲ 골프는 아름다운 여성을 다루듯해야 한다. 코스자체가 여체와 닮았다. 여인을 성급하고 거칠게 다루면 마음과 육체의 문을 공략할 수 없다. 골프코스도 사랑을 구하는 진지한 자세를 갖춘 골퍼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일방적인 공략을 하려는 골퍼들은 어김없이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된다. /방민준 삽화 |
티샷을 한 뒤 홀에 이르는 과정은 마치 마음에 드는 여성을 사랑의 파트너로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해서 쉽사리 옆자리를 내주지 않는 게 여성이다. 쉬 꺾일 것 같은 여성도 결정적인 순간에 철조망을 칠 수 있고 평소 철조망을 칭칭 감고 다니는 듯한 여성도 지극정성을 들이면 가시 옷을 벗게 할 수 있다. 여성이 경계심을 풀고 내 곁으로 다가오도록 하려면 평소 믿음을 심어주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강제로 윽박지르듯 덤벼서는 실패하고 만다.
격정의 순간에 다다랐다고 여성과의 사랑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후가 더 중요하다. 격렬한 불꽃이 사그라지면 부드럽고 달콤한 포옹과 말로 여성을 평온하게 해주어야 한다. 정성이 담긴 피날레는 둘 사이의 사랑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프로치나 퍼팅 등 홀 주변에서의 뒷마무리가 골프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과 너무나 닮지 않았는가.
골프클럽도 여성을 다루듯 끈기를 가지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한번 손에 익은 클럽은 조강지처처럼 좀처럼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면서도 멋진 여성이 지나가면 눈을 주지 않을 수 없듯, 새로운 브랜드의 클럽이 나오면 한눈을 팔지 않을 수 없다.
골프의 감도 여성과 같다. 조금만 한눈을 팔고 제대로 사랑을 쏟지 않으면 집을 나가려 하고 뭇 사내에 눈을 돌리듯 골프의 감도 부지런히 갈고 닦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 달아나 버린다. 집나간 여자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달아난 골프의 감을 다시 잡는 것도 집나간 여자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여자가 집을 나가지 않도록 평소에 정성과 사랑을 쏟듯 골프도 감이 달아나지 않도록 평소에 끊임없이 연습을 하는 게 정도다. 싱글 핸디캐퍼들은 바람 끼 있는 미인과 사는 남자나 다름없다. 남이 눈독 들일 정도로 바람나기 쉬운 미인을 붙들어두기 위해 사랑을 쏟고 관심을 기울이듯 싱글 핸디캐퍼들도 골프 감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골프 자체의 속성은 너무나 여성적이지만 골프역사에서 여성과 골프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하다.
최초의 여성골퍼는 스코틀랜드의 매리 여왕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처음 골프를 쳤다고 한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골프광인 매리 여왕은 부군인 당리 경(卿)이 암살당한 지 3일도 안 돼 젊은 무장인 보스월 백작과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이 경박한 행동을 두고 의회가 규탄하기 시작했고 ‘여왕이 백작과 공모해서 남편을 죽였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결국 그녀는 1587년 골프 역사상 가장 무거운 벌타를 받았다. 남편이 암살된 지 3일 만에 젊은 백작과 친 골프가 화근이 되어 기어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그녀의 비참한 운명은 여성골퍼의 불행을 예고한 것으로, 이후 200년간 여성은 골프장에 얼씬도 할 수 없게 됐다. 최근 여성골퍼가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골프클럽은 금녀(禁女)의 낙원, 즉 ‘이브리스 패러다이스(Eveless Paradise)’로 남아있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