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는 '김동길 인물 에세이-100년의 사람들'을 요즘 즐겨 읽는다. 올해 구순(九旬)인 그의 연륜과 균형감각을 믿기 때문이다. 이 나라 지식인이 온통 좌익에 봉사하는 위선적 리버럴리스트 그룹으로 전락했는데 그만은 딱 중심 잡고 있으니 그 점 다행이다.
그런 김 교수는 정주영, 김대중, 황장엽에 이어 네 번째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다뤘다(12월9일자 B2면). 역시 흥미로웠다. 두 분의 호방한 교유(交遊)의 내력부터 멋졌다. 그는 신군부 압력으로 대학 부총장직을 내놓고 10년간 해직교수 생활을 했던 아픔이 있다. 그럼에도 5공과 전두환의 역사적 공(功)을 과(過)보다 훨씬 높이 평가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5공이라면 부르르 떨고, 광주사태의 살인마라고 손가락질하는 세태에 비춰 그는 단연 돋보인다. 한국사회에서 김 교수처럼 발언하는 건 숫제 용기에 속한다. 더구나 그는 전 대통령의 인간미에 매력을 느낀다고까지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어느 때부턴가 둘은 자별한 우정을 쌓아왔고, 지금도 전 대통령이 3년 연상인 자기에게 매년 생일에 축하 화분을 보내온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두환 재평가가 모두 개운한 건 아니었다.
전두환-김동길의 멋진 사나이 우정
전두환 옹호가 미흡할뿐더러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인데, 두 가지가 걸린다. 첫째 광주5.18과 관련한 책임 추궁에 문제 있다. "설령 그(전두환)가 발포 명령자가 아니라 해도 그 일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그는 신문에 썼지만, 그건 잘못이다.
그건 운동권 논리에 불과하다. 광주5.18은 정권욕에 사로잡힌 신군부가 저지른 학살극이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근거 없다. 당시 전두환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계엄사령관도 아니었다. 합수본부장이자 정보책임자 신분이라서 발포 명령과 전혀 무관하며 광주사태 당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건 오래 전 12.12 검찰 수사 등에서 확인된 얘기다.
도덕적 책임을 질 순 있어도 단지 실력자였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다. 차제에 진실을 말하자. 전두환의 집권을 도운 것은 역설이지만 김대중이었다. 서울의 봄 당시 대권에 눈 멀었던 그는 김영삼에게 밀리자 호남을 등에 업은 채 민중봉기 방식의 뒤집기에 올인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는 '김동길 인물 에세이-100년의 사람들'에서 다룬 전두환 전 대통령 관련 지면. /사진=조선일보 캡처.
그게 광주사태 직전 서울역 앞 운동권의 대규모 시위로 표출됐고, 그 일환으로 최규하 정부를 협박했다. 5월 22일까지 정권을 넘기지 않을 경우 민중봉기를 일으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오래전 정치학자 노재봉 교수가 "광주사태 본질은 김대중의 외곽을 때리는 기술"이라고 지적했던 것이 그래서 설득력 높다.
그런 노골적 협박에 최규하 정부가 5.17 시국수습안을 꺼내든 것도 국가보위 차원의 대응이다. 광주사태는 이 과정에서 빚어진 지역폭동이고, 때문에 김대중을 내란음모의 수괴로 지목했던 첫 재판(1981년 1월 대법원)이 맞다. 바로 이 대목에서 김 교수의 전두환 비판에 두 번째 오류가 등장한다.
즉 하필 그 시기에 전두환이 집권하는 바람에 "민주화 훈풍을 기대하던 온 국민에게 찬바람이 불게 했다"는 주장을 그는 반복했는데, 납득하기 어렵다. 천하의 김동길도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시야가 좁다는 게 한 눈에 드러나는 대목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우선 12.12 문제.
80년대는 '악마의 시기' 아닌 '축복'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와 한통속이었던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를 체포한 12.12를 두고 지금도 운동권은 그걸 항명-하극상으로 표현하지만, 택도 아닌 소리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일 정승화 체포가 없고, 김재규 사형집행도 안 이뤄졌을 경우 어찌됐을까? 박정희 제거가 궁정쿠데타로 이어지면서 김재규-정승화 일당이 집권했을 것이 뻔하다.
그게 또 다른 역(逆)쿠데타를 부를 경우 대한민국은 중남미형 쿠데타 빈발 국가로 전락했다. 여차여차 해서 3김 씨가 차례로 집권했다 해도 IMF 외환위기를 포함해 1990년대의 혼란은 10년 이상 앞당겨 대한민국을 덮쳤을 것이다. 물론 80년대 3저 호황과 연 10% 경제성장의 신화는 없었다.
실은 김 교수가 운동권과 좌익들이 늘어놓는 민주화 타령에 동조했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다. 그런 걸 두루 염두에 두자면 김 교수는 1970년대 박정희에 반대했던 무책임한 리버럴리스트의 체취가 여전하고, 그게 그의 한계다. 오해 마시라. 김 교수를 비판하자는 게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그는 연세 많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번 전두환 옹호는 용기 있는 지식인상을 보여준다. 다만 그의 1980년대에 대한 인식이 과연 올바르냐가 문제다. 현대사의 분기점이던 이 시기를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시기로 보느냐, 반대로 박정희의 패러다임이 유지-연장됐던 시기로 보느냐에 따라 인식이 확 갈린다.
80년대를 '악마의 시기'로 규정하는 운동권 인식이야말로 지금 이 이 나라를 불행에 빠뜨리고 있는 핵심 요인이다. 반미 운동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오늘 내 글의 핵심은 80년대 재인식 없이 올바른 현대사 인식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전두환과 5공 재평가는 그래서 절실하다. 80년대는 현대사의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질 것을 나는 기대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전두환 회고록>이 나온 2017년이 현대사 재인식의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김동길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그에 대한 비판의 이 글은 실은 애정과 존경의 표현이다. 부디 그의 '인물 에세이' 연재를 통해 이 나라 현대사 인식이 균형 잡히길 기원한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