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헌법 제119조 1항에 명시된 구절이다.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는 해당 조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는 119조 2항 덕에 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지난 해 12월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이재용 부회장 얼굴에 '재벌해체'라고 쓰여 있는 공을 굴리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면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규제가 많아지면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기는커녕 그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다.
헌법의 허점 때문인지 정부의 시장정책 역시 엇박자의 연속이다. 기업에 '일자리 창출'을 강요하면서 규제를 강화해 기업 활동을 옥죄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본질이 아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가가치일 뿐이다.
이 말은 곧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려면 기업이 '잘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거리가 많아야 일할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 점을 간과한다. 기업 성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일자리를 만들라"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연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을 시작으로 김상조 공정거래 위원장의 막말, 법인세 인상, 정부 주도의 통신비 인하 시도 등의 '사건'이 줄줄이 발생했다. 그야말로 반(反)시장, 반(反)기업정책의 향연이다. 정부는 기업을 옥죄며 이득만 취하려고 한다.
지난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혐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다. 받았다는 사람은 받은 게 없고, 준 사람도 준 게 없다. 심지어 결정적인 증거도 없다. 단지 '포괄적 현안'이라는 추상적 판결만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재진들 사이에 둘러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때문에 판결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1심 결과는 '법'에 따르면 무죄, '국민정서법'에 따르면 유죄일 수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반기업정서가 팽배한 시국에서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억울한 건 이 부회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기업이 처한 현실이 그렇다.
지난 4일, 법인세를 25%로 인상하는 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이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정 반대의 결정이다. 현진권 경제평론가(전 자유경제원 원장)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줘도 모자란 상황인데 정부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막말'도 '반기업정서'에 정점을 찍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달 지난 2일 숭실대에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 늦게 도착한 뒤 "재벌들 혼내 주고 오느라고요"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장 시절 '재벌 저격수'라 불리며 '반기업정서'의 상징으로 꼽혔던 그였지만 공직의 자리에서까지 '막말'을 한 것은 경솔했다는 비판이다. 당시 자리에 함께 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 정부가 주도하는 '통신비 인하' 정책 역시 부끄러운 처사다. 정부는 통신비를 내려주겠다며 선택약정할인율 인상, 보편요금제 추진, 단말기완전자급제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만 놓고 보면 후진국의 이야기 같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정부가 민간 기업에 어떤 상품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제도는 없다"며 "다른 나라 같으면 위헌 소지가 다분한 법"이라고 진단했다.
더 큰 문제는 본질을 상실한 이 같은 경제정책이 '헌법'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법인세 인상, 통신비 인하는 '경제력 남용 방지'에 해당된다. 또 이 부회장 구속에 대한 국민정서와 김 위원장의 태도는 시장 지배를 방지하는 것에 기인한다.
이쯤 되니 헌법 119조 2항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순되는 두 조항이 나란히 명시돼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경제의 비극이다. 언제쯤이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현실화될까. 이런 걱정도 하루 이틀이지, 기업들이 포기하고 싶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연말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