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지난 13일 프로야구 연말 최대 시상식인 '2017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로 호명된 선수들은 각자 기쁨의 소감 한마디씩을 전했다. 그 가운데 두 번 '울컥'하는 장면이 있었다.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양현종(KIA 타이거즈)은 소감 말미에 "하늘에 있는 내 친구 두환이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라고 말했다. 말을 하면서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잠긴 양현종은 서둘러 소감을 마무리지었다. '하늘에 있는 양현종의 친구'는 지난 201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이두환 선수였다.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은 강민호(삼성 라이온즈)는 "롯데 팬들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받은 사랑 은퇴할 때까지 가슴에 새기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소감을 밝히면서 도중에 울먹였다. 강민호는 올 시즌까지 14년간 롯데에 몸담고 있다가 시즌 후 삼성으로 FA(자유계약선수) 이적을 했다. 현 소속팀 삼성이 아닌 전 소속팀 롯데의 팬들에게 인사를 전한 것이다.
양현종은 친구 이두환이 세상을 떠난 뒤 모자 챙에 그의 영문 이름 이니셜 'DH'를 늘 새기고 공을 던졌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야구계 동료들이나 팬들에게 양현종의 이번 소감은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양현종은 올 시즌을 누구보다 열심히 보냈고, 20승을 올리며 개인적으로 빼어난 성적을 냈다. 소속팀 KIA를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고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MVP, 그리고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최고 선수나 투수상을 휩쓸었다. 시즌 마지막 시상식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후 그는 가슴 속에 오래 담아뒀던 말, "두환이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라고 했다.
강민호는 지금은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10년 넘게 롯데의 안방마님으로 롯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팬들은 "롯데의 강민호~"라는 개인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며 응원해줬다. 비록 삼성으로 이적하긴 했지만 강민호는 이런 팬들의 성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다가, 골든글러브 수상을 하자 정든 팀을 떠난 소회를 밝힌 것이다.
양현종과 강민호의 이번 수상 소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인 사연이 가미되긴 했지만, 감동을 더한 것은 '진정성이 담긴'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는 배우 진선규의 수상 소감이 큰 화제가 됐다. 진선규는 '범죄도시'에서의 개성있는 연기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제의 꽃인 주연상도 아니고, 조연상이었지만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내며 배우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는 너무나 값진 상이었고 감격적이었을 것이다.
진선규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떨려서 청심환 먹고 왔다. 상을 받을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먹었어야 했다"면서 "40년 동안 도움만 받고 살아서 이야기할 사람이 많다.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아내 박보경, 사랑합니다. 애 둘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의 진정성은 아내도 울리고 청중, 시청자들도 울렸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나문희의 소감도 감동적이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열연한 나문희는 "나의 친구 할머니들. 늙은 나문희가 이렇게 큰 상을 받았어요. 다들 열심히 해서 상 받으세요"라고 인사했다. 76세의 노배우가 던진 이 말은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늙은'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로 전해졌다.
연말 시상식 시즌이다. 어느 분야든 열심히 노력해 본받을 만한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 각종 상이 주어진다. 기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선 수상자들은 이런저런 소감을 밝힌다. 대체로 비슷비슷한 소감들이 많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이 떠오를테고 여건이 되는 한 일일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것이다.
두루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의례적인 소감보다는 진정성이 담긴 말을 한마디라도 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팬들의 소중함을 잘 아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은 "팬들에게 고맙다" "팬들 덕분에 이런 영광을 차지했다"는 말을 흔히 한다. 말한 사람에 따라 그 진정성이 다른 것은 아니겠지만,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개인적인 일탈로 사회적 물의를 빚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런 '언행불일치'를 볼 때면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시상식을 앞두고 후보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만약 내가 수상한다면 어떤 소감을 말할까'를 진심을 담아 고민하기 바란다. "수상할 줄 몰랐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영예롭게 생각할 일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많은 고마운 분들, 지지해준 팬들에게 전할 말을 고민해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무엇을 위해 어떤 노력을 더 할 것인지 자기 성찰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배우 황정민의 수상 소감이 있다. 2005년 청룡영화상에서 '너는 내 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다. "다른 배우들 스태프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거거든요. 근데 스포트라이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다시 들어봐도 참 멋진, 진정성이 느껴지는 수상 소감이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