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삼성전자가 연간 영업이익 50조원 시대를 열었다. 이 괄목할만한 기록은 삼성 창업 이래 최초인 것은 물론 대한민국 경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반도체’의 힘이 컸다. 모두 다 안 된다고 할 때 기어코 해낸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시작이 좋았다고 해서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대에서 이뤄놓은 사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같은 과제를 떠안은 이재용 부회장의 고뇌를 다 가늠할 순 없지만 하루도 편히 잠든 날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2월 27일 항소심 공판에서 “이병철 회장이나 이건희 회장 같이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며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제 실력과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강하고 가치 있게 삼성을 만들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해냈다.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다”는 이 부회장의 꿈은 영업이익 50조원 시대를 열며 현실화 돼가고 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다. 어쩌면 다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 지금 삼성이 처한 위기다.
누군가는 “이 부회장이 없어도 삼성이 잘 나간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삼성이 써내려간 기록은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감행한 ‘선택’이 뒷받침된 결과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1월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9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평택에 15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도 새로 지었다. 그 결과 ‘반도체’에 관한 한 삼성을 따라갈 수 있는 기업이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게 다다. 다른 것을 하고 싶어도 ‘정치 재판’에 발목이 잡혀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이에 윤부근 부회장은 지난해 8월 IFA 2017 개막을 앞두고 “선단장이 부재중이어서 미래를 위한 투자, 사업구조 재편에 애로사항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선단장 없이 고기를 잡으러 가는 게 외부에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며 “반도체 사업이 잘되고 있으나 부회장의 부재가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2~3년 전의 투자로 지금의 성과를 이뤄냈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CJ, SK 등 오너가 활발히 나서서 활동하는 것과 달리 삼성은 국내 네트워킹은 물론 글로벌 네트워킹이 끊길 위기까지 직면한 상태다.
삼성이 언제까지나 삼성일 수 없다. 이것은 삼성이라는 기업 자체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게 ‘정치’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다. 언제까지 ‘적폐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총수의 팔에 포승줄을 묶어놓을 생각인 걸까.
기업을 우습게 아는 나라치고 번영한 나라는 없다. 세상의 변화는 기업이 일으킨다. 기업의 창의성,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리더십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정치인들이 그 위에 올라서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오만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삼성의 역할이 중요하니 봐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잘못이 없다. 그가 ‘국정농단’ 사태의 피해자라는 것은 이 사건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은 “법적 책임, 도덕적 비난도 다 제가 지고 가겠다”고 했다.
괜한 고집으로 훌륭한 기업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실패의 역사를 써내려가선 안 된다. 상인을 우습게 안 조선의 끝은 ‘멸망’이었다. 대한민국 역사가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역사의 교훈을 허투루 생각해선 안 된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