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주영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3대 노동공약으로 제시한 '근무시간 단축'을 강조한 가운데 완성차 업계가 고민에 빠졌다. 단축된 근무시간 만큼 생산량도 줄어들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돼서다. 무조건적 근무시간 단축은 경직된 노동유연성과 노사 갈등도 유발할 수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전경 /사진=현대차 제공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현대·기아차·한국지엠·쌍용차·르노삼성) 5개사는 근로시간 단축 법 개정에 대비해 향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특별연장근무나 계좌제 등 새 근무제도 도입이 주요 골자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 통과때를 대비해 기업 내부에서도 근무패턴 조정과 새 제도 도입 등 여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과로 사회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며 '노동시간 단축'을 정부의 역점 사업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관련 법안의 국회 처리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일단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큰 혼선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쌍용차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4개 업체들의 평균 근무시간이 주간과 주말을 합쳐도 '주 52시간'을 초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2016년 잔업이 폐지되면서 하루 8시간씩 2교대 근무를 유지하고 있다. 주말근무도 이틀중 하루만 허용한다. 최근 노조와 8+8 주간연속 2교대제 근무에 합의한 한국지엠도 주간 근무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는다.
르노삼성도 하루 9시간씩 연속 2교대제 근무로 잔업이나 주말 특근을 실시하지 않는다.
쌍용차는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내부 조정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생산 근로자들은 하루 8시간 근무에 잔업 3시간을 포함해 주당 총 52시간(평택공장 기준)을 일하고 있다. 최종식 쌍용차 사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언급하며 "노동조합과 근무시간 단축을 앞두고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생산량 감소는 우려되는 대목이다. 제조업의 특성상 계절적 수요나 통상 리스크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생산량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사드 보복 당시 판매량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생산량도 감소했다"며 "신차는 주문량에 따라 평균 2배 이상으로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어 탄력적 근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생산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완성차 생산대수는 411만4913대로 전년보다 2.7% 줄었고 올해 또한 3% 가량 감소세가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근무시간을 단축하면 생산량 또한 자연스럽게 줄어들며 장기적으로 경영악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노사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주말특근을 없앨 경우 추가 근무를 희망하는 근로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특근 수당이 통상임금의 150% 수준이라는 점에서 특근 미실시에 따른 반발이 예상된다.
완성차 협력업체나 중소부품업체 등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인건비 부담이 12조원으로 그 중 70%는 중소기업이 부담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는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면 인건비 부담이 23.5%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인건비 부담 등 기업들이 겪을 문제에 대한 대비책 없이 확산될 경우 우리 경제에 자칫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대안은 있다. 독일 등 유럽 완성차들이 실시중인 특별연장근로, 근로시간 계좌제 등을 국내에서도 시행하는 것이다.
특별연장근로는 일감이 많아질 경우 노사가 합의 하에 주당 8시간 추가 근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근로시간 계좌제는 생산량이 많을 때 일한 연장·주말 근로 등 초과 근로시간을 계좌에 적립해 일감이 없을 때 휴가로 쓸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임금 및 단체협상을 통한 합의 외에는 현실적으로 근무시간 조정에 대한 제도가 미비한 실정이다. 또 근로시간 계좌제는 2012년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에 의해 발의됐지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국회 통과가 무산됐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현 정권에서 시행하는 근무시간 단축은 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결국 자동차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며 "자동차 기업 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들에게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