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이 연초부터 요동치고 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1월은 계절적 요인 등으로 주택시장에서는 비수기로 통한다.
해도 바뀌었으니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또 달라진 환경을 살펴보면서 신년 계획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지난 연말부터 집값 흐름이 심상치 않더니 새해들어서는 상승폭이 더 커지는 모습이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새해들어 2주만에 서울 아파트 값은 0.54% 올랐다. 반면, 지방은 0.12% 떨어져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계속되고 있는 약세행진을 이어갔고, 수도권인 경기와 인천도 별다른 가격변화가 없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서울 집값 움직임 밑바닥에는 요동치고 있는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가 있다.
송파(1.95%)가 불과 2주일 만에 2%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강남이 1.68% 올랐고, 서초(0.66%)와 강동(0.59%)도 0.5% 넘게 올랐다. 심상치 않은 아파트값 오름세다.
잠실과 반포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빌리면 "하룻밤에 호가를 1억원 올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올린 호가에 거래가 이뤄지다보니 시세도 덩달아 오르면서 말 그대로 '억, 억!'이라는 소리가 일상이 되는 모습이고, 2~3년 전 유행했던 "전셋값이 미쳤다"는 말 대신 "강남 집값이 다시 미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유독 강남에서만 연초부터 집값이 요동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바닥민심'에 밝은 중개업소 관계자들과 전문가의 말을 종합하면 규제의 역설과 학습효과, 강남8학군을 지목한다.
서울 서초구 반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사진=미디어펜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고강도 규제정책이 오히려 집값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는 출범 한 달여 만에 발표한 '6·19 부동산대책'을 시작으로 '8·2 부동산대책', '9·5조치', '10·24 가계부책 대책', '11·3 후속대책', '12·13 임대사업 활성화 방안' 등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대책을 쏟아냈다.
내놓은 대책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제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활, 분양가상한제 부활 등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강남 집값은 정부 정책을 비웃기나 하듯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규제의 역설이다. 강남권이 부동산 규제 타겟(Target)이 되자 팔려고 내놓았던 집주인들도 오히려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며 매물을 거둬들였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희소성만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남 집값 움직임과 관련해서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강남 집값을 잡기위해 쏟아낸 고강도 대책이 일시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듯 했지만 결국에는 폭등으로 이어졌던 경험을 말한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 입성은 누구나 꿈꾸는 '로망'일 정도로 수요는 늘 있다"면서 "강남에 살고 있거나 강남 입성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규제 때문에 강남 집값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강남이 말 그대로 '강남특구'일 수 있지만 공급을 웃도는 수요가 존재하는 한, 단순한 규제 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사실 강남은 지금도 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은 지역이면서 개발과 관련된 재료도 가장 많다.
롯데제2월드가 완공된데 이어 잠실운동장과 삼성역을 아우르는 일대가 국제교류복합지구로 개발되고 있다. 삼성동 옛 한국전력부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지상 105층 높이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로 건설하고 있다.
서울의 명물인 한강(漢江)을 옆에 두고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부동산 가격만 제자리걸음을 할리 만무한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인 '강남8학군'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 정부가 내년부터 자립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의 학생 우선선발권을 폐지키로 한 것도 강남 집값에 기름에 붙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요를 충족할 정도로 공급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강남권은 지역 특성상 새 아파트가 들어설 곳이 별로 없다. 대부분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해 공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최고 높이 35층으로 제한되고 있다.
이처럼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보유세(재산세·종부세)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보유세를 올리면 다주택자들이 세 부담을 견디지 못해 집을 팔 것이고, 이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맞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보유세를 올려도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 보유세 부담만큼 집값을 올려서 판다면?
시장을 이기려는 정책으로는 절대 승산이 없다. 대신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 시장의 특성을 이해할 때 제대로 된 해법이 도출될 것이다. 그게 경제활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요과 공급의 균형이다. 문재인 정부가 자주 쓰는 용어 중의 하나가 '맞춤형 정책'이다. 그런데 맞춤형이라는게 시장을 인정하고 이해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미디어펜=김영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