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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꼭 한반도기를 들어야 '평화올림픽'인가?

2018-01-18 15:1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평창올림픽 관련 남북협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점입가경이다. 그동안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를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때늦게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통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자 (김정은 신년사)"며 평창올림픽 참여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국론이 우왕좌왕 분분했다. UN안보리의 대북제재를 피해가며 북한팀을 지원하는 방안이나, 한반도기(旗) 게양과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문제 등으로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이런 와중에 17일 남북회담에서 평창올림픽 입장식에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이 공동입장하기로 합의하고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원칙에도 합의했다. 그뿐 아니라 우리측이 북한의 마식령 스키장 훈련과 올림픽 전야제 금강산 개최까지 제안하여 합의문에 반영시켰다고 한다. 게다가 북한의 응원단과 공연단 외에 조총련 응원단 250명의 참가까지 받아들여 평창올림픽에서 북한 선전요원들 약 500명이 허위 평화공세 쇼를 벌이게 생겼다.

단체경기는 개인의 기량 못지 않게 팀웍과 사기가 중요한 변수임은 기본상식이다. 그런데 남북단일팀 구성 문제를 놓고 이 나라 국무총리가 "(여자아이스하키는) 메달권에 있는 팀도 아니다"라며 선수들의 아픈 상처를 후벼 팠다. 대학팀, 실업팀 하나 없는 열악한 현실에서 우리 여자아이스하키팀이 이룬 기적을 남북 정치쇼의 제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김대중-김일성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가 비에 젖자 "우리 수령님께서 비를 맞으면 어떡하냐"며 광분하여 욕설을 퍼대던 그런 집단과 한 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주무장관의 수준도 문제다.

올림픽을 통한 남북간 화해 무드 조성은 백 번 바람직한 일이나, 근본적인 문제는 핵 문제에 관한 협상이나 양보의 의지가 전혀 없이 "민족의 위상" 운운하며 뒤늦게 평창올림픽에 참여하겠다는 북한의 태도와 이를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이 핵 문제에 관한 UN제재 결의 자체를 일체 묵살하면서 "(우리)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돌연 나선 것은 올림픽정신에도 합당하지 않다.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의 위상"은 "핵 강국"의 위협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참석해야만 '평화올림픽'이 된다는 통일부의 생각이 망상(妄想)인 이유다.

위와 같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체육인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스포츠의 기본 규칙까지 바꾸려고 한다"며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며, 자신의 모든 경력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외롭고 고된 훈련에 매진해왔던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상실감과 허탈감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보는 2030세대의 반감이 뜨겁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노력하고도 부당하게 자리를 빼앗기는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동년배 선수들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남북은 양측 선수단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공동입장할 때 한반도기를 들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남북이 1월1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세부사항을 논의하는 실무회담 전체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는 모습./사진=통일부 제공


이런 분위기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남북단일팀 구성은 대표선수들의 행복추구권과 직업행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진정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한국과 첫 경기를 치를 스위스가 '남·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한해 예외적으로 엔트리를 확대하는 방안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남북협상에 임하는 우리측 대표가 "북한도 참가하는 (명실공히) 평화올림픽" 운운하지만, 평화는커녕 핵무기를 들이대고 '민족의 위상'을 외치며 10명 안팎의 선수단에 수백 명의 응원단과 악단을 평창에 보내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한민국 땅에서 자신들의 잔치판을 벌이겠다는 북한의 저의(底意)를 우리 정부는 모른단 말인가. 우리 정부가 이런 북한의 속셈을 화해의 제스처로 착각하는 게 아니라면 과거 88올림픽 때나 월드컵 때 저질렀던 북한의 폭력 도발이라도 막자고 스스로 태극기도 내리겠다고 꼬리를 내리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올림픽 개회식에 한반도기가 아니라 태극기를 들어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냉전 올림픽" 운운하며 "한반도기를 색깔론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했다. 올림픽 주최국이 자국기(自國旗)를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북한의 '핵 위협'에 눌려 올림픽 주최국이 자국 국기를 들지 않는 사상 초유의 올림픽을 만드는 것이 '평화'란 말인가?

올림픽 참가와 관련하여 우리의 현실과 통일 전의 동서독의 상황을 간단히 비교해 보자. 우선, 동독(독일민주공화국)과 서독(독일연방공화국)이 1973년 9월 18일 동시에 UN에 가입했듯이 우리와 북한도 1991년 9월 17일 동시에 UN에 가입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분단된 별개의 국가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동서독이나 남북한이 마찬가지다.

1972년 서독 뮌헨에서 제20회 올림픽이 열렸을 때 동독과 서독은 각각 따로 참가하여 동독이 소련,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고 서독이 4위를 차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도 각각 참가하여 동독이 2위를 차지했으며 서독은 미국과 한국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서울올림픽이 동독과 서독이 각각의 국호로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이 되었으며 두 나라는 2년 후인 1990년에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되었다. 통일된 독일은 과거 서독의 국호(독일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와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가 전세계 국가가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핵 보유국'의 위세를 부리려는 북한의 억지에 이끌려 '평화', '통일'을 운운하며 '민족'을 거론할 것이 아니라 동서독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평창올림픽은 남북체전이 아니고 전세계 국가들이 참가하는 지구촌의 축제이다. '핵 폐기'에 대한 논의는 거부하고 때늦게 참가하겠다고 나선 북한의 억지를 백번 양보하고 받아들이더라도 올림픽에는 북한 선수단과 관계 임원들만 참가하면 될 일이다. 그들의 응원단과 공연단이 떼로 몰려와서 벌일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정부가 '남북 대화'라는 허상에 매달려 세계의 축제를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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