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트럼프 행정부가 세탁기·태양광 패널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하고 한국산 철강 및 화학 제품에 반덤핑 과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정부와 산업계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제조업 일자리 창출과 '아메리카 퍼스트' 등을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 행정부가 WTO 탈퇴의사를 표명한 상황에서 양허정지 신청 등 WTO를 활용하는 전략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11건 중 8건에서 승소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지만, 판정이 나오기까지 평균 3~4년이 소요되고 미국이 판정을 불이행하는 등 실질적인 효과가 낮다고 업계는 설명했다.
앞서 우리 정부는 미국이 지난 2000년 2월 탄소강관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령한 것에 대해 같은 해 6월 WTO에 제소해 2002년 2월 세이프가드가 위법하다고 판정이 내려졌지만, 미국은 3년의 세이프가드 시한을 모두 채우고 조치를 해제한 바 있다.
2002년 3월에는 여러 철강 품목에 고율의 관세와 할당·수입허가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세이프가드를 발령했고, 정부는 유럽연합(EU)·일본·캐나다 등과 함께 미국을 제소했다. WTO는 2003년 11월 해당 조치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정, 미국은 같은해 12월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철회했다.
2013년 8월에는 제소한 세탁기 판덤핑·상계관세의 경우 2016년 9월 최종 승소했으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수출기지를 베트남 및 중국으로 이전했다.
삼성전자 '퀵드라이브' 세탁기·한화큐셀 태양광 패널/사진=각 사
산업부는 최근 미국이 산업 피해 및 수입 급증 등을 이유로 가정용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한 것에 대해 WTO 협정에 보장된 권리를 적극 행사한다는 입장이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조현수 한화큐셀코리아 대표이사는 지난 23일 열린 '2018 에너지업계 신년인사회'에서 WTO 제소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제소를 준비중이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업계가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방안은 미국 국내 법원에 직접 제소하는 것과 생산시설 이전이다.
세아제강의 경우 지난해 10월 미국 내 철강업체가 한국의 산업용 전기료가 특혜라며 미 무역법원(CIT)에 제소한 소송에서 승소했으며, 현대제철은 최근 미 상무부가 자료 제출 부족·지체 등을 이유로 적용한 '불리한 가용정보(AFA)' 관련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또한 베트남 동나이성에 제2공장을 설립해 미국 수출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왼쪽부터) 포스코·현대제철 현판/사진=각 사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7월 미 정부가 한국산 합성고무에 반덤핑 관세로 44.30%를 책정한 것과 관련해 지난해 11월 CIT에 제소했으며, 포스코도 2016년 열연·냉연강판에 60%를 넘는 반덤핑·상계관세가 부과된 것에 대해 제소했다.
미국에 유정용 강관을 수출하는 넥스틸의 경우 지난해 10월 미 상무부 2차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46.37%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국내 생산시설 일부를 미 휴스턴으로 옮기기로 했다.
한편 산업부는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와 관련해 태양광·세탁기 업체와 민관 합동회의를 각각 24일과 26일에 개최, 향후 대응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CIT 제소는 민간기업이 고율의 관세 부과를 비롯한 부당한 조치에 대해 법리적인 대응방안"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미국 정부와 협상하는 한편, 민간과 협력해 통상압박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